날이 춥다. 부산의 아침 기온은 영하 4도였다. 놀랍게도 체감온도는 영하 16도였다. 어플에서는 버스가 2분 뒤에 도착한다고 했지만 2분이 지나도 3분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칼바람이 매서운 추위를 버텨가며 버스를 기다렸다. 나뿐만 아니라 정류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 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 날씨에 폰을 꺼내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추운 날이면 군 시절을 생각하게 된다. 내포리 소초의 4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설 때였다. 4월 말에 대대장이 순찰을 돌면서 4 초소에 올라와서 한마디 한다.
[여기 창문이 깨져서 너무 춥네. 당장 수리하도록.]
칼바람이 매서운 임진강의 겨울은 그냥 내버려 두고, 4월 말에 춥다며 창문을 수리하던 곳이었다. 군대가 매번 그런 건 아니겠지만, 4월에도 추위를 버티기 힘든 곳에서 22살 청춘을 버틴 것이다. 발가락이 잘릴 것 같은 추위에 비하면 영하 4도는 추운 것이 아니었다. 온도계가 초소 안에 있었지만, 하나같이 겨울만 되면 깨지곤 했다. 영하 15도에서 바람까지 불던 임진강이 떠오른다. 강이 얼면 북한군이 걸어서 임진강을 따라 침투할 수 있단다. 그래서 밤이면 순찰도 돌고 근무도 추가로 서곤 했다.
결국 버스는 왔다. 서둘러 탑승하고 따뜻함을 느끼며 직장으로 향한다. 추위를 몸으로 느끼는 것은 고작 출퇴근이 전부다. 예전처럼 강바람과 싸우고 산에서 벌벌 떨지 않지만 오히려 추위에 더 예민해진다. 밖에서 잘 일도 없고 강을 보며 밤새울일도 없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며 산다. 나는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영하 15도의 추위에서 살던 사람과 지금의 나는 다르다. 20년의 세월만큼이나 환경이 달라졌고 나 또한 바뀌었다.
자유로를 지나는 차들을 보며 얼마나 부러웠던지. 철문을 나가면 자유가 있건만, 나는 그 철문 앞에서 얼마니 서성 거렸던가. 귀가 에일듯한 추위가 나타날 때마다 22살의 나를 떠올린다. 실탄과 수류탄을 몸에 들고 임진강을 보던 나. 과거를 살아가기보단, 젊었던 내가 그립다.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 당시의 나로 돌아갈 수 없건만 그리워하다니. 군대 시절로 돌아가도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든다. 천금을 줘도 파주 근처는 보지도 않을 거라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왜 이리 보고 싶을까. 추위도, 환경도,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던 선임과 후임들도. 모두 잘 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