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쓰는 글은 독후활동이긴 한 데 책을 한 권 정해서 읽고 한 독후활동을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2022년부터 아이와 함께 쓰고 있는 독서교환노트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물이 쏟아져서 얼룩져버린 독서교환노트 표지
아이가 2학년이 되던 해였어요. 당시 아이가 피아노학원을 다녔는데, 학원에서 알게 된 3학년 언니의 권유로 교환일기를 쓰게 되었어요. 아이는 처음으로 교환일기를 쓰게 되어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어요. 그렇게 몇 주 정도 서로 교환일기를 주고받았지만 안타깝게도 계속 쓰지는 못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매 번 쓸 주제를 찾는 게 힘들다.
할 말이 딱히 있는 게 아니었나 봐요. 항상 시작은 "언니 안녕?"으로 시작해서 "나는 오늘 학교 갔다가, 학원 갔다 놀이터를 갔어. 언니는 뭐 했어?"시간순서로 나열했어요. 아이의 동선은 거의 같다 보니 비슷한 내용만 적게 되었죠.
2. 만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두 아이의 학년이 다르다 보니, 끝나는 시간도 달랐어요. 스케줄이 달라서 만나는 시간이 일정치 못했어요.띄엄띄엄 만나게 되었고 결국 쓰는 횟수도 줄어들게 되었죠.
3. 글을 길게 쓰기 힘들어했다.
세 줄 정도 쓰는 것만으로도 쓸 말이 없다고 했어요. 긴 문장을 쓰기도 어려워했죠. (글쓰기 경험의 부족)
팔도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재미는 있었는데,,"
교환일기가 끝이 났지만 아이는 그래도 재미있었다며 종종 아쉬워했어요.
생각 끝에 제가 먼저 아이에게 우리 둘만의 교환일기를 쓰는 것을 제안했죠.
엄마랑 교환일기 쓸래? 주제를 정하기 쉽게 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쓰면 어때? 엄마랑은 매일 만나니까 시간 맞출 필요도 없고, 길게 안 써도 돼. 생각나는 대로 써보자. 한 번 해볼래?
다행히 아이가 좋아했어요. 둘만의 독서교환노트를 아이는 특별하게 생각해서 흔쾌히 수락했죠.아직 어려서인지 엄마랑 둘이 무언가 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독서교환노트를 쓴다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흥미를 보였어요. 시작은 수월했습니다.
어떤 책이 좋을지 아이에게 골라보라고 했어요. 아이는 '책 읽는 강아지 몽몽'을 선택했어요. 아이가 먼저 읽어본 책이었는데 재미있었는지 바로 골랐어요. 저는 아이가 골라준책을 읽고 노트에 몇 자 적었어요.
다음 날 아이가 글을 읽더니 옆 페이지에 답장을 썼어요. 떠오르는 대로 쓰더니 나에게 읽어보라며 들고 왔어요.
저도 아이가 쓴 글을 읽은 후 답해주고 싶은 게 있으면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 밑에 답 글을 썼어요. 아이는 제가 하는 걸 보고자기도 엄마가 쓴 글에 밑줄을 긋고 생각나는 것을 썼어요. 그렇게 두어 번 아이가 고른 책을 읽고 내가 먼저 글을 쓰면, 아이는 답장을 하는 형식으로 썼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 꼭 읽어봐요."
김규아 작가의 '밤의 교실'이라는 책이었어요. 아이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읽고 떠오르는 생각이 많았다며 글을 쓰고 싶었다고 합니다. 엄마가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 지도궁금했고요.
이 날 처음으로 아이가 먼저 독서교환노트를 가져와서 글을 썼어요.
"생각을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니, 엄마도 꼭 읽어보고 싶네."
아이는 자기의 생각을 적고, 저에게도 써달라고 했어요.저도 답장을 썼죠.
오늘 브런치(brunch) 주제로 '독서교환노트'를 쓰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에요. 처음 시작은 제가 제안해서 시작했지만아이가 스스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먼저 글을 썼다는 점을 기록하고 싶어서예요.
그날 이후 아이는 도서관에 들러 책을 보다 괜찮은 책이 보이면(정확하게는 자기 마음에 드는 책) 그 책을 들고 와서 독서교환노트에 적기 시작했죠.
아이는 독서교환노트를 쓰기 시작하면서 저에게 추천해 주는 책이 늘었어요. 꼭 독서교환노트를 쓰지 않더라도 좋은 책을 보여준다며 대출해 오곤 했죠. 글도 거의 아이가 먼저 썼어요.
일주일에 몇 번씩 써야 한다거나, 분량이 얼마가 돼야 한다거나 하는 형식이 없다 보니 일주일에 두 번을 쓴 적도 있고, 한 달에 한 번을 쓰기도 했어요. 한동안 안 써서 잊고 있나 했는데 읽던 책이 재미있다며 노트를 꺼내는 아이가 기특했죠.
아이는 쓰고 싶을 때 썼고, 쓰고 싶은 만큼 썼어요.
위의 사진처럼 3~4줄 정도만 쓰기도 하고,
글보다 그림이 페이지의 반 이상을차지하기도 했어요.
어떤 날은 한쪽 가득 쓰기도 했죠. 이 정도 쓰려면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요. 2학년 아이에게 한 시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에요. 정성 들여서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갔다는 건 그만큼 마음에 남는 부분이 많았다는 이야기겠죠. 물론 한 두줄만 썼다고 해서 대충본 책이고, 그림만 그렸다고 가볍게 본 책이라고 할 수 없어요. 글을 많이 썼다고 해서 아이의 인생책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고요. 아이의 마음에 어떤 책이 얼마큼 자리 잡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강제성이 없이 자발적으로 글쓰기를 했다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도 노트를 펼치기까지 사실 쉽지는 않다고 해요. 글을 쓰는 과정이 아직은 어렵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면 쓸까 말까 몇 번 고민하다가 노트를 펼친다고 해요. 글이 마음에 들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고도 했어요. 그런데 가끔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이 생각을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아이가 책을 읽다가 스스로 독서교환노트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내가 오늘을 기록하는 이유입니다. - 솔바람 휘-
부모라면 아이가 스스로 하려는 그때를 기다리며 살지 싶어요. 저도 부모인지라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할 때를 보면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만의 공간을 만든다며 책상밑에 텐트를 치기도 하고, 만들기를 한다며 벌려놓고 색종이, 테이프 등이 바닥에 돌아다니기도 하죠. 친구가 한 옆돌기를 따라 한다고 거실에서 계속 연습하며 쿵쿵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아래층에 죄송한 마음에 도가니탕을 가져다 드리기도..)
순간 어이가 없기도 하고, 치울 생각이 망막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웃으며 말하는 추억이 됩니다.
제가 이 활동들을 기록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아이의 노력이 기특하고, 우리가 이야기 나눌 추억이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함도 있습니다.
책을 보고, 독후활동을 하고, 자기의 생각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 상태 이대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대로만 자라다오. 싶죠.
그런데 저도 사람인지라 감사한 마음, 아이에 잠재력은 잊어버리고 불안감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나도 모르게 공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때가 있습니다.조급증이생기기도 했고요.
한글은 학교 입학하기 전에 떼야하지 않을까, 어린이집 친구 누구누구는 원래 영어 방문 선생님만 했었는데 이번에 한자도 한다더라. 나도 시켜야 하지 않을까. 나의 부족함이 내 아이까지 부족하게 하지 않을까? 하지만 불안하다고 무턱대고 따라 하는 건 또 아니지. 아이를 믿어주라고 했잖아. 그래. 나는 내 아이의 속도에 맞추자.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아이마다 맞는 때가 있을 거야.
하며 마음을 붙잡았어요. 하지만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것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가 언제지?내가 그때를 어떻게 알 수 있지?
아이가 신호를 보냈지만 내가 알아채지 못하면 어쩌지? 아직 때가 아닌데 내가 밀어붙이는 건 아닐까?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하지만 그 불안함도 잠시, 두 아이를 돌보다 보면 체력이 금방 바닥이 나고, 아이들 학습에 대한 걱정보단 이 상황만 버티자로 바뀝니다.
그렇다고 불안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불안함은 예고 없이 또찾아옵니다.조급증까지 같이 데려옵니다. 무한 반복입니다.
고민하던 문제로 돌아가면
그때는 언제지?
이에 대해 제가 찾은 답입니다. 그때는 바로 아이가 스스로 할 때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할 때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정확하게는 스스로 할 때를 알게 되는 그 시점은 바로 알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하며 의젓한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스스로 진지하게 책을 빼들고 읽기 시작하는 게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책이 주변에 널려있고, 가지고 놀고, 엄마가 읽어주기도 하고, 자기가 떠들어 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물들어 가는 거였죠. 그러다 책을 한 권 보기 시작하고, 한 권이 두 권이 되고, 두 권이 세 권이 되는 거죠. 제가 기다렸던 '때'는 아주 서서히 오는 것이었어요. 이 시점을 발견하는 눈은 익숙함에 가려져 당연한 일상으로 보기 일수예요.
재활용 쓰레기를 다 끄집어내곤 무언가를 만든다며 바닥을 어지럽혀서 혼낸 적이 있어요.
달걀을 깨는데 아이가 자기도 하고 싶다고 하길래 가만히 있는 게 엄마 도와주는 거라면서 못하게 한 적도 있어요. 이유는 내 몸이 힘들어서, 내가 귀찮아서, 내가 하기 싫어서였죠.
경험해 보고, 실수 해보고, 그러다 재미도 찾고 하는 과정이 있었을 때 더 업그레이드된 자발성이 나오는 걸 잊고, 아이의 미숙함을 핑계 삼아 나의 한계를 숨기고 아이 탓만 하며 뭐든 못하게 하던 때가 있었어요.
다행히 몸이 좀 살만해지면서부터 제 태도가 바뀌었어요. 아이의 시도에 너그러워지는 저를 발견했어요. 재활용을 끄집어 내도 '금방 치우는 거니까'하며 놀 게 두기도 하고, 제가 먼저 계란을 깨 보라고 그릇과 계란을 준비해 주기도 했어요.
아이의 때는 매일매일 오고 있어요.
그때를 발견하냐 못하냐는 엄마가 살만 하냐, 아니냐에 따라 많이 좌우한다고 생각돼요. 엄마의 불안함도 한 몫하고요. 내가 체력이 되고, 좋은 글을 읽어 마음의 그릇을 넓혀 아이에게 더 너그럽게 할 때그때가 보입니다.
잘 자고, 잘 놀고, 잘 먹고, 정해진 시간에 학교를 가고, 학원을 가고, 숙제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아이가 이 틀을 벗어나면 "평소답지 않게 왜 그러지?"라고 생각한 다면 이 또한 그때를 놓치게 합니다.
평소 하던 대로 유지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아이의 일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이 최상의 상태를 평균치로 놓고 8살이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9살이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하며, 때가 돼서 당연히 하는 것으로 간주한 적이 있었어요.
당연한 것은 사실 없는데 말이죠. 이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가장 최고의 상태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인내심이 있었다는 걸 잊고 아이가 최상의 상태가 아닐 때 혼을 내고, 화를 냈어요.
처음부터 잘 자고, 잘 놀고, 잘 먹고 하지 않았다는 걸 잊고 있었어요. 아이가 먹놀잠 패턴이 맞춰지기까지 나도 아이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걸잊고 있었어요. 어린이집 갈 때마다 옷 가지고 실랑이하던 때를 잊고 있었죠. 한 여름에 기모 원피스를 입겠다는 아이는 결국 입고 가더니 하원하는 길에 "엄마 덥다. 벗고 싶어" 했던 날을 잊고 있었어요. 어린이집에서 내준 숙제를 하기 싫어서 버티다 버티다 억지로 하던 아이가, 학교선생님과의 약속이라며 매일 하루 한 권이상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던 모습을 잊고 있었어요. 이제는 하루에 몇 권 이상씩 읽는 아이의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아이의 '평상시'를 당연하게 보면, 아이가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했을 때 왜 그랬냐고 다그치게 됩니다. 아이가 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귀찮음으로 대하게 되고, 아이가 해야 할 to do list를 방해하는 행동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또 "그때'를 놓치게 됩니다.
아이가 잘할 때를 평균값으로 놓고 이를 기준으로 더 잘하면 감탄하지만 그보다 못하면 왜 평소와 다르냐며 질책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현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한 것임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일상을 유지하는 아이를 응원해 주고, 그 자체만으로 대견하게 생각하고 감사해야 하는데 말이죠.
저 같은 어른도 나의 일상이 유지되는 것에 사실 많은 공력이 필요한데, 아이는 오죽할까요. 그런 아이가 평소와 다르다고 질책한다면 아이는 정말 억울할 것 같아요. 어제 설거지를 하다 음식물쓰레기통 뚜껑을 열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데, 세탁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세탁실로 갔어요. 세탁기를 멈추고 그 안을 살펴봤는데 별 일은 없었어요. 간 김에 눈에 보이는 일 몇 개를 하느라 세탁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음식물쓰레기통 뚜껑 닫는 걸 잊어버렸죠. 퇴근한 남편이 보더니 왜 자꾸 음식물쓰레기통 뚜껑을 안 닫냐고 했어요. 이번이 두 번째이긴 한데, 지난번과 오늘 두 번을 빼고 평소에는 늘 닫았어요. 이번 실수로 뚜껑을 항상 안 닫는 사람이 돼 버렸죠. 평소에는 설거지를 다 하면 음식물 쓰레기를 통에 버리고, 뚜껑을 닫고, 독한 세제를 풀어 싱크대를 닦고 정리를 한다고 나름 노력을 했는데 그 노력은 당연한 것이고 오늘 뚜껑 안 닫은 거로 타박 들으니 허탈하더라고요. 다 큰 어른인 저도 이렇게 속상한데 아이는 더 그렇겠죠.
아이가 스스로 하기까지 늘 너그럽고 좋은 엄마의 모습만 보일 수는 없습니다. 엄마도 사람이니까요. 그렇다고 엄마의 기분에 따라, 체력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도 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만 시키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해야 할 것들을 미루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아이가 싫더라도 살아가면서 꼭 해야 하는 것들도 있고, 아직 아이는 기회가 없어 경험해보지 못해 생각지도 못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아이에게 어른이 기회를 만들어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아이와 실랑이가 일어날 수도 있고요.
그런 부분을 다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아이를 수용해주기만 하고, 아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도록 다 우쭈쭈 하며 받아주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내 불안함이, 나의 부족한 체력이 아이의 '때'를 보지 못하게 방해할 수 있으니 '나'를 먼저 챙기자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이가 정하는 거니까요.
한글, 수학, 한자, 영어, 체육, 음악, 미술 등등 해야 할 것들이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 답이 아닙니다. 다 할 수도 없고요. 안 하는 것도 답이 아닙니다.
나 혼자 계획해서 해야 할 것들을 정하고, 모든 것을 to do list로 여긴다면 아이도 스트레스지만, 나는 더 큰 스트레스일 거예요. 내 의지도 다루기 힘든 데 아이는 어떻게 하겠어요.
아이가 좋아서 하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해야 할 것이 많아지더라도 아이가 좋아서 스스로 원해서 한다면 아이도 기꺼이 합니다. 내 아이가 무엇을 재미있어하고, 그것을 위해 얼마큼 시간을 쓰고, 힘들어도 기꺼이 그 힘듦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한다고 해서 힘들지 않고,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아이가 원해서 스스로 하는 그때가 분명 올 거예요. 그때는 아이가 정하겠지만 분명 오긴 올 거예요. 서서히.. 아주 서서히 말이죠^^
때가 올 동안 저도 마냥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거예요.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 수 있도록 나를 챙기겠습니다. 책도 읽고, 글쓰기도 하고 오늘처럼 평상시에서 의미를 찾고 기록도 하고요.
저에게는 분명 또 불안함이 찾아올 거예요. 조급증도 같이 오겠죠. 그렇지만 잘 버텨보겠습니다.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