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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내 Aug 24. 2020

악몽이 될뻔 했던 호주의 썸머 크리스마스!

호주에서 썸머크리스마스를 즐기다 익사할뻔...

호주 가면 가장 해보고 싶은 게 뭐야?라고 물어보면 주저 없이 대답했다. 바로 한여름의 썸머 크리스마스!

호주에 가기 전 읽었던 호주 가이드북에서는 이색적인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건 호주에서 꼭 해봐야 할 일 중의 하나라고 쓰여있었는데 그때 책 모퉁이 한구석을 꾹 접어놓았다. 12월의 뜨거운 썸머 크리스마스라니! 정말 생각만 해도 굉장히 낭만적이었다. 워낙 추운 걸 싫어하는 나는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있으면 참 좋겠다!라는 상상은 하곤 했었지만 정말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는 날이 올 줄이야! 내가 도착한 10월의 시드니는 가을 날씨처럼 선선했는데 12월을 향해 갈수록 점점 뜨거워져 갔고 12월에 들어서자 정말 한여름이 시작되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온몸으로 즐기는 짧은 옷차림의 호주 사람들 사이로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이었다.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거리 곳곳에 세워지고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졌다. 반팔에 선글라스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는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이런 산뜻한 조합도 그것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페북에 머플러를 꽁꽁 싸매고 셀카를 올리는 친구들 사이로 나도 선글라스를 멋지게 걸친 셀카를 하나 올렸다. '무지하게 더운 12월의 오늘'이 컨셉이었던 사진과 함께 한 문장도 넣었다. 'Summer Christmas is Coming!'


한 여름의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그렇게 고대하던 크리스마스날이 다가올 즈음 크리스마스이브날에는 친구들과 교회에 가기로 했다. 내가 다녔던 힐송교회에서 이브날엔 크리스마스 뮤직컬을 한다고 했는데 그래봤자 매년 봐왔던 식상한 예수님의 탄생스토리겠지 뭐! 정도로 생각하고 별 기대는 없었다. 그냥 어린 날의 나에게 그리고 물론 지금도 크리스마스는 교회 가서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그런 날이었으니까- 그래도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라 그런지 크리스마스 날이 되니 역시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크리스마스 캐롤이 그리고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웃으며 건네는 인사가 후덥지근한 12월에도 크리스마스임이 마음 따뜻하게 느껴져 왔다.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예수님 탄생 뮤직컬은 역시나 내가 알고 있는 식상한 스토리였다. 물론 한국 교회에서 보던 그런 식상한 무대와는 달리 엄청난 호주 스케일에 살짝 놀라긴 했지만! 동방박사 아저씨들이 등장하는 그 타이밍에 동방박사들이 진짜 낙타를 타고 등장했거든.. 늘 허리춤에 이상한 낙타 인형 같은 걸 끼고 등장했던 한국에서의 뮤직컬과는 확실히 다르구나..를 느껴서 입을 떡 벌리고 뮤직컬을 감상했다. 

다시 한번 웅장했던 호주 스케일에 박수를...!!


낙타를 타고 등장한 동방박사 오빠들과 공연 후 기념사진!

크리스마스이브날에는 뮤직컬을 보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꼭 해보고 싶었던 해변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해변으로 향했다. 학원에서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친구들과 모여서 바비큐 파티를 하기로 해서 며칠 전부터 얼마나 설렜던지! 가이드북에 비키니에 산타 모자를 뒤집어쓰고 해변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언니들이 생각이 나서 며칠 전에 차이나타운에서 구매를 한 산타 머리띠도 챙기고는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으로 나오니 너도나도 수영복에 산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얼른 비키니에 선글라스 그리고 산타 얼굴이 귀엽게 달랑거리는 산타 머리띠까지 장착! 매일 해변에 오면 수영보다는 늘 내가 좋아하는 태닝만 하곤 했는데 오랜만에 다 같이 놀러 왔으니 간만에 수영을 좀 해볼까? 해서 친구들과 다 같이 바다로 향했다. 호주의 파도는 워낙 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수영할 수 있는 구간에서 어린이들도 첨벙첨벙 수영을 하고 있길래 안심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메리 썸머 크리스마스에 신났던 소내찡!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은 첨벙첨벙 물장구만 쳐도 전혀 위험하지 않은 곳이었다. 나름 수영에 자신 있었던 나와 친구들은 더 깊이 들어가서 놀기로 했는데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정말 파도가 강하구나라는 걸 느꼈다. 아! 이거 좀 위험한데? 싶은 곳 즈음에 오니 다시 돌아가야겠다 싶어서 왔던 길로 다시 돌아 나왔다. 분명 같은 길로 나왔다고 생각했고 발도 땅에 닿기 시작해서 무사히 돌아왔구나- 싶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들어오는 파도에 내 몸이 빨려 들어갔다. 어라? 분명 발이 땅에 닿는데 바로 앞에 해변가가 보이는데 이상하게 내 몸은 계속 바다 안쪽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서 주위를 바라보니 열심히 수영을 하며 놀다가 나도 모르게 수영할 수 있는 구간을 훨씬 넘어서 바다 한가운데에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 정말 심장이 덜컹 그리고 얼마 전에 영어공부한다며 읽었던 신문에서 호주 해변에서 익사하는 사람들의 20% 이상이 외국인이라는 기사가 떠올랐다.


엄청나게 물을 먹고 저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릴 때 즈음 갑자기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았다. 옆에서 서핑하던 호주 오빠가 서핑보드를 잡으라며 내 손을 잡아서 서핑보드 위로 나를 올렸다. 겨우 서핑보드 위로 몸을 올리고 켁켁 거리며 기침을 하고 있으니 그 호주 오빠는 연신 '아유오케이?'만 외쳐댔고 해변가까지 나를 데리고 와서도 '아유오케이'를 외쳤다. 나는 물을 조금 먹었고 놀랐다 뿐이지 괜찮다며 고맙다고 했더니 너는 그래도 다행이라며 저 멀리 바닷가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호주 파도에 떠내려갈뻔했던 그 심각한 상황에 푸핫 하고 웃음이 나왔다. 파도가 무섭지 않아!라며 나와 함께 자신 있게 수영을 하러 간 언니가 수상보트를 탄 구조 대원에게 다리 한 짝이 붙잡혀 끌려오고 있었다.


비키니에 멋진 몸매 뽐내던 호주 오빠들 ㅋㅋ

구조 대원에게 끌려 나온 언니는 나 정말 죽을뻔했어!! 하며 바닷물에 흠뻑 빠져 갓 나온 얼굴을 하고 웃고 있었다. 그 상황에 웃고 있는 언니가 웃겼던 건지 한바탕 절은 얼굴이 웃겼는지 나도 모르게 나도 같이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보며 하염없이 웃고 있었는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구조 대원 오빠가 다가왔다. 그리고 앞으로는 호주에서 수영할 땐 조심해야 한다며 주의를 줬다. 고맙다고 진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니 자기한테 사과할 필요 없다며 그냥 네가 죽을뻔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앞으로 조심하라고 했다. 자긴 여기서 그 누구도 다시 죽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순간 진지한 얼굴의 호주 오빠의 얼굴을 보자 그 상황이 웃기다며 깔깔대며 웃었던 내 자신이 창피해졌다.


구조 대원 오빠에게 한바탕 혼이 난 후 살짝 풀이 죽었지만 정말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정말 한순간도 조심성을 갖지 않고 앞만 보고 놀고 깔깔대는 내가 좀 철이 없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물론 그 당시는 정말 어렸기에 철이 많이 없긴 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랬듯 참 단순한 나는 바베큐 파티를 하며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다 보니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역시 저기압일 땐 고기앞으로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진리임에 분명하다.



나에게 길이길이 기억에 남을 호주에서의 썸머 크리스마스! 산타 머리띠를 쓰고 해변가를 누비고 다니던 왁자지껄했던 그날은 잊지 못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였지만 역시나 가장 떠오르는 건 죽을뻔했던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아있던 나를 발견한 그 순간이지 않을까. 정말 그 아찔했던 순간에 서핑하던 오빠가 나를 데리러 와주지 않았다면? 파도에 휩쓸려서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순간이 왔다면 어땠을까? 늘 사건사고가 많았던 내 인생에서 엄마는 늘 네가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며 말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다시 돌아본 내 호주 라이프의 한순간에도 살아있음에 감사했던 순간이 있었을 줄이야. 


크리스마스의 악몽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음에 감사.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글을 쓰고 있음에도 감사. 이런 사건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도 감사하다. 성경에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이 있는데 간만에 교회에서 암송처럼 외웠던 이 구절이 생각이 났다. 이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는 좋은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오늘도 무사히 살아있음에 감사! Thanks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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