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nd of silence(사운드오브사일렌스) 사막의 야외 레스토랑
사막에서 일을 하는 하루는 참 길었다. 아마 너무 힘들었기에 그랬을터. 겨우 테이블 세팅을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그 시간이 나에겐 가장 꿀 같은 시간이었다. 대낮의 사막은 태양이 무지하게 뜨거웠지만 햇빛을 피해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제법 시원했다. 잔뜩 흘렸던 땀을 닦아내고 아이스박스에서 갓꺼낸 시원한 콜라를 한잔 마시면 그 모든 힘듬이 톡 쏘는 탄산과 함께 사라지곤 했다. 이건 여담인데.. 사막에서 일하면서 평생 먹을 탄산음료를 다 마신듯하다. 그리고 매일 1일 1 콜라를 한 결과는 엄청난 충치와 늘어난 체중이었다고...(탄산음료는 몸에 정말 안 좋습니다.)
그렇게 탄산음료를 시원하게 원샷하고 드디어 본식이 시작되었다. 꼬질꼬질 해 보이는 작업복은 벗어던지고 깔끔한 블랙 와이셔츠를 입었다. 그리고는 디너가 시작되는 선셋 포인트(Sunset point)로 이동을 했다. 우리는 그곳을 듄톱(Dune top, 사구 모래언덕)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선셋 포인트가 사막의 언덕에 위치한 곳이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이름 한번 거창하게 멋있었지만 모래언덕은 정말 높디높았다. 그리고 음료 샴페인 등 다양한 음료가 들어있는 아이스박스를 그 모래 언덕까지 밀어 올리는 건 참 쉽지 않았다. 끙끙거리며 아이스박스를 밀어 올리다 보면 시원한 콜라가 다시 땡기곤 했다.(다시 강조. 탄산음료는 정말 몸에 안 좋습니다.)
고진감래로 비유할 수 있을까? 아이스박스를 밀어 올리는 그 순간은 참 힘들었지만 그 무거운걸 모래언덕에 올려놓고 난 후 보이는 풍경이 참 달콤했다. 이 곳의 시그니처인 울룰루가 저 멀리서 방긋 웃으며 나를 반겨주고 있었으니깐. 나도 모르게 우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해주던 언니가 '넌 정말 멋진 곳에서 일하게 될 거야'라고 했던 그 말이 바로 이걸 말하는 거였구나. 어두워져 가는 태양과 함께 알록달록 색이 변하는 울룰루를 바라보고 있으니 눈시울이 시큰해지며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고 있으니 옆에 있던 리더가 쿡쿡 웃으면서 써니는 첫날이니깐 맘껏 구경하게 해주자! 라며 처음 온 나에게 포토타임을 가질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처음 올라갔던 그 날 멋진 선셋 포인트에서 울룰루와 함께 사진을 남겼다. 같이 일했던 친구들도 함께!
"자 써니야 사진 열심히 찍었으니 이제 일해야지?" 라며 리더 언니는 사진 촬영 삼매경이던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곤 아이스박스에서 막 꺼낸 샴페인을 꺼내 샴페인 잔에 노오란 액체를 따라주며 나에게 첫 임무를 주었다. 이곳에 올라오는 손님들에게 샴페인 잔을 건네주는 일이 나의 첫 업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샴페인 잔을 통해 울룰루를 보고 있으니 그곳의 풍경이 더 멋져 보였다. 그리곤 시간이 되자 저 밑에서 손님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함박웃음을 얼굴에 장착하곤 반짝반짝 빛나는 샴페인을 손님들에게 건네며 인사를 나눴다.
"Welcome to Sound of Silence!"
(*Sound of silence: 사운드오브사일렌스, 내가 일했던 레스토랑의 이름)
그렇게 손님들이 선셋 포인트에 모두 도착하고 나의 두 번째 업무가 시작되었다. 샴페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카나페를 들고 다니면서 손님들에게 하나둘씩 나눠주는 일이었는데 이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어렵다기보다 오히려 재밌었다. 카나페 설명을 해주면 손님들이 으악 소리를 내며 경악을 했었으니깐! "이건 캥거루 고기고, 이건 악어 고기야!" 특이한 안주 메뉴에 손님들은 다 눈이 휘둥그레지곤 했었다. 내가 처음 카나페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응..? 악어랑 캥거루라고...?
오히려 좋아하는 손님들도 계셨다. 악어는 내가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며 악어 고기 카나페를 한입에 털어 넣고는 아주 맛있다고 엄지 척을 해 보이는 손님도 있었다. 나도 나중에 한번 먹어봤는데 캥거루는 그냥 정말 소고기 같았고 (특유의 냄새가 있긴 했지만) 악어 고기는 그냥 치킨 같았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굉장히 특별한 경험 이리라! 언제 호주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캥거루와 악어를 먹어볼 수 있겠뇨!
그렇게 악어와 캥거루 그리고 상큼한 샴페인과 함께한 선셋 타임이 흘러가고 사막의 밤은 점점 어둑어둑 해졌다. 태양이 울룰루 너머로 사라질 즈음 우리는 손님들을 데리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셋팅해 놓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캄캄해진 레스토랑에 불을 밝혀주는 건 테이블 위에 놓인 랜턴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참 로맨틱했다. 깜깜한 사막의 밤에서 맞이하는 디너타임이라니! 이거만큼 로맨틱한 디너가 어딨을꼬! 그렇게 리더의 웰컴 멘트가 이어졌고 사운드 오브 사일렌스의 디너타임이 시작되었다.
음식은 뷔페 형식이었고 술과 음료는 무제한으로 주문 가능했다. 그리고 나의 주된 업무는 손님들 와인 따라주기 그리고 주문한 음료를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일은 그리 어렵진 않았지만 내 테이블을 첫 지정받은 날, 손님들에게 내 소개를 하고 와인 소개를 하는 일이 조금 떨렸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손님들 사이에서 "Hello my name is Sunny" 이 한마디를 내뱉는 그 순간 얼마나 긴장되던지.. 첫날에는 얼떨떨해서 영어도 어버버 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그렇지만 역시 처음만 힘들 뿐! 이것도 적응이 되고 나니 자기소개 즈음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중에는 소개 멘트도 달달하게 바꿔서 하곤 했다. "Hello my name is Sunny like here beautiful sunshine!"
그리고 저녁 타임이 끝나고 디저트를 즐기면서 우리 디너 레스토랑의 마지막 순서가 시작되었다. 바로 'Star Talker(스타 토커)'타임! 깜깜한 사막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보는 밤하늘은 정말 멋있었는데 그 밤하늘을 보면서 별자리를 소개해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스타 토커가 시작되기 전, 레스토랑에 있는 불을 다 끄고 자연의 조용한 소리를 듣는 시간이 있었다. 그걸 모티브로 우리 레스토랑의 이름을 Sound of Silence(침묵의 소리)로 지었다고 리더는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내가 여기서 일하는 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보이는 건 깜깜한 밤하늘에 수놓아진 은하수 그리고 들려오는 건 자연의 소리가 전부였지만 그 침묵의 소리를 듣는 그 순간은 내가 우주 한가운데에 놓인 느낌이었으니깐.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자연의 소리를 듣는 멋진 순간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디너타임이 마무리가 되었다. 돌아가는 손님들 마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매일 일하는 너희들이 부럽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이곳에 있음에 참 감사함을 느꼈다. 사막 한가운데서 땀을 뻘뻘 흘리는 순간엔 '호주까지 와서 이게 무슨 고생이지?' 싶은 마음도 많이 들었지만 붉게 빛나는 울룰루를 볼 때면 이런 고생 즈음은 사서 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Once in a Lifetime"
매일 출근하는 내 일터는 사막, 참 웃긴 상황이긴 했지만 뭐 인생에 한번 즈음은 이런 곳에서 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렇게 나는 사막에서의 첫 직장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생에 한번 즈음은 사막에서 일해보는 것도 괜찮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