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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 Jan 24. 2024

4월에는 자전거 타지마


4월에 자전거 타지마. 넘어져서 크게 다칠 수 있어.


작년 말, 직장 동료로부터 추천받은 점집에 갔다가 들은 말이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조언과 경고들이 날카로운 방울소리와 함께 내게 쏟아졌다. 이 달엔 계단을 오르다가 넘어질 수 있으니 신발끈이 없는 신을 신어라. 삼 개월 후에는 뜨거운 것 먹다가 탈이 나니 조심해라. 또 다른 달에는 술 먹고 지각할 수 있으니 섞어먹지 말아라! 뭔가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술은 원래 섞어 먹으면 안 좋은 거 아닌가? 그보다 신년 운세라는 게 원래 이렇게… ‘월간 업무 계획표’같이 촘촘한 거였나?


서울에는 ‘따릉이’라는 공공 자전거가 있다. 정류장도 곳곳에 꽤 많이 있어서 길을 지나가다 보면 따릉이를 타고 가는 사람을 적어도 한 명 이상은 마주친다. 나 역시 일 년 이용권을 미리 결제해 둘 정도로 따릉이를 애용하는 편이다. 아주 덥거나 춥지 않은 날씨라면 따릉이를 타고 한강길을 따라 퇴근할 때도 많다. 4월이면? 날씨가 많이 풀리고 나무가 초록빛을 띠기 시작해 따릉이 퇴근 하기 좋은 날씨가 된다. 4월에 자전거 타다가 넘어질 확률이 아주 추운 12월이나 아주 더운 8월에 넘어질 확률에 비해선 큰 것이다. 그러니 올해 4월에 자전거를 타다가 정말로 넘어진다고 해도 내가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 아주 확실한 사유는 될 수 없다. 게다가 그녀가 덧붙이길, 어떤 사건에 대해 미리 경고를 듣는 순간 일종의 액땜을 한 셈이라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조금 낮아진다고 한다. 아니, 그러면 4월에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지 않더라도 미리 들은 경고 덕분에 사고를 피해 간 건지 아니면 예언이 틀린 건지 알 수 없는 거잖아? 다시 원점이다.


얼마 전에는 오르막길에서 낑낑대며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남자아이를 보고 별안간 생각에 잠겼다. 너는 일 년 내내 맘 편히 자전거를 탈 수 있겠지. 좋겠다. 이모는 4월에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몸이란다. 아니, 정확히는 탈지 말지 고민하는 몸이란다. 다친다는 소리에 신경 쓰지 않을 강심장이 얼마나 있을까. 아무리 안 좋은 말은 흘려듣는 성격이라 해도 말이다. 이곳은 따릉이의 도시.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어떻게든 자전거를 볼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자동적으로 자전거를 타다가 다칠(지도 모르는) 나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운명이란 게 진짜로 있는지, 있다면 어디까지 정해져 있는 건지 하는 철학적 질문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기를 여러 날. 아아, 점 괜히 봤다. 나는 그저 연말 분위기도 낼 겸 가벼운 마음으로 간 거였는데 되레 마음의 짐을 얹어 오다니.


남의 입에서 나온 나의 운명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내 생각에 운세라는 건 “앗, 그럼 선녀님 말씀대로 4월에는 절대로 자전거 타지 말아야겠다!” 혹은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조심만 하면 되지!”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보러 가야 한다. 나처럼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해 의문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람에겐 미래를 알려줘 봤자 소용이 없다. 마음만 한껏 불편해질 뿐. 어쨌거나 불편한 마음을 안고 며칠간 고민해 본 결과, 운명이란 게 있다 해도 나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영역이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남이 켜 놓은 가로등으로 환한 길을 걷는 것보다는 막연한 희망과 호기심을 등불 삼아 캄캄한 길을 밝히며 걷는 편이 역시 좀 더 내 맘에 드는 것 같다. 혹시나 넘어지더라도 내 탓으로 훌훌 넘겨 버리는 게 낫지, 남 탓 하는 건 좀 멋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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