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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 Feb 07. 2024

어때? 진짜 맛있지?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밥을 해 먹는 자와 사 먹는 자. 밥을 사 먹는 자는 또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무던 파와 미식가 파. 전자는 딱히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평점보다는 거리가 더 중요하다. 누군가 추천하는 식당으로 이끌려가길 좋아하며 입맛도 무던하다. 후자에 속하는 이들은 지도 어플에 온갖 맛집이 빼곡히 즐겨찾기 되어 있으며 그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모두에게 맛집을 추천하고 전파하는 걸 사명처럼 여기는 사람들이다.


나는 집에서 뭔가를 만들어 먹긴 하지만 요리라고 하기엔 좀 부끄러운 수준이고 메뉴도 한정적이므로 '밥을 사 먹는 자' 쪽에 가깝다. 그러나 무던 파와 미식가 파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조금 애매한 포지션이다. 맛집에 많이 가보긴 했는데 그걸 기억을 못 해서다. 내 즐겨찾기 목록은 모임이 있을 때 선택지로 부끄럽지 않게 내놓을 만한 지역별 장소 몇 개만 추려 놓는 정도라서 몹시 초라하다. 그런 주제에 맛집은 어떻게 많이 가봤냐고? 신기하게도 주변에 항상 '미식가 파'에 속하는 맛집 사냥꾼들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입가에 점이 있으면 먹을 복이 많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입술 위쪽에 작은 점이 4개나 있는 난 이 고마운 사람들로부터 맛집 정보를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 온 것이다.


맛집 사냥꾼 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유형은 '스토리텔러'들이다. 한 번은 이 유형에 속하는 친구의 동네에서 함께 밥 먹을 일이 있었다. 원래도 뛰어난 정보력에 동네 주민이라는 이점까지 더해졌으니 이건 실패할 수가 없는 식사. 친구는 한껏 높아진 기대치만큼의 아우라를 가진 식당이 있다며 자신 있게 나를 안내했다. 식당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 집이 왜 내 취향에도 꼭 맞을 것 같은지, 어떤 메뉴를 꼭 먹어봐야 하는지, 사장님의 응대 방식과 식당의 룰은 어떠한지 등을 브리핑하며 이야기의 도입부를 탄탄하게 다진 친구는 자리를 잡고 나서 본격적으로 입을 풀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가게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주로 누구와 몇 살 때부터 즐겨 찾았는지,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방문은 언제였고 또 어떤 메뉴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퇴근 후 이곳을 찾아 술 한 잔 기울이던 그 시절에 대한 약간의 향수로 여운을 남기며 이야기를 깔끔히 마무리하자, 이윽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음식이 등장했다.


음식의 맛은 역시 훌륭했다. 또한 그 맛 위에 켜켜이 쌓아 올린 친구의 추억 이야기는 감칠맛을 위해 마지막에 한 꼬집 추가하는 조미료 같은 역할까지 해 주었다. 아마 혼자 왔으면 조금 덜 인상 깊은 맛이었을지도 모르지. 몇 년치 추억이 깃든 소중한 맛집에 나를 데려가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신나게 풀고, 마침내 첫술을 드는 나를 은근히 기대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 오지랖이 귀엽고 고마워서 일부러 더 과장된 맛표현을 했다. “국물이 깔끔하고 김치가 맛있네!” 그리고 내가 청양고추에 환장하는 것을 알고는 미리 반찬을 리필 중인 친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이 식당을 소개할 일이 있다면, "국물이 깔끔하고 김치가 맛있어." 보다는 "내 친구 A가 10년 동안 다니던 집이래."라는 말을 먼저 하게 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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