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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 Feb 14. 2024

진심 담긴 빈말

그건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것은 “감기 조심하세요! (웃는 이모티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가 “이미 걸렸다”는 답변을 받고 나서 ‘빈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며 쓰는 글이다.


우리는 업무 관련 짤막한 메시지를 주고받은 후였고 상대는 나보다 한참 윗사람이었다. 예의 있게 대화를 마무리해야겠다고 판단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주제인 ‘날씨’를 선택했고, 시기적으로 적절한 데다 상대의 안부를 신경 쓰고 있는 뉘앙스까지 팍팍 풍겨주는 ‘감기’ 키워드를 덧붙였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미 감기를 얻으셨다는 소식이 되돌아온 것이다. 나는 왠지 모를 낯섦을 느끼며 잠시동안 말풍선을 들여다보았다. 뭐지? 이 사실에 기반한 이성적인 답변은?


그러니까 그의 말이 진심인 게 낯섦의 원인이었다. 내 말은 진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감기 조심하세요 :)”는 “용건이 끝났으니 이제 그만 얘기합시다”를 예의 바르게 돌려 말한 거였다. 사실 나는 그분이 감기에 걸리든 말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친분 있는 사이도 아니고 심지어 일하는 사무실도 달라서 얼굴을 마주할 일이 없었으므로. 가볍기 그지없는 탱탱볼을 던졌는데 묵직한 배구공이 되돌아온 느낌, “언제 한 번 밥 먹자”에 곧바로 “이번주 토요일 2시 어때?”가 되돌아온 느낌이었다고 할까. 아니 그게, 내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데. 그런데 그게 또 그렇게까지 진심은 아니었는데.


이미 감기에 걸렸다는 대답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적절했을까? 그래도 사람이 아프다는데 안타깝지 않은가. 게다가 아랫사람 된 도리로 메시지를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공들여 작성한 답변은 “이런,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이모티콘) 몸 따뜻하게 하시고 푹 쉬세요!”였고 답장은 없었다. 나는 말풍선과 함께 덩그러니 남아 ”푹 쉬세요”에는 과연 몇 퍼센트의 진심이 담겼는지 5초 정도 고민하다가 채팅방을 떠났다. 기껏 걱정해 줬더니… 하며 삐죽 튀어나올 뻔한 모난 마음은 그냥 말풍선과 함께 날려 버리기로 했다.


속마음은 더러워도 말만은 예쁘게 하는 사람에게 그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말이라도 예쁘게 하는 게 어디야, 살다 보면 그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데. 따뜻하고 친절한 말들은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필요하다. 속 빈 강정 같은 말풍선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진심을 1퍼센트만이라도 담아 봐야겠다 싶었다. 오늘처럼 내가 뱉은 말이 빈말인지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가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살면서 직접 얼굴 마주할 일 없는 사람일지라도 추운 겨울 무탈히 잘 지내기를 한 번쯤은, 메시지를 작성하는 10초쯤은 진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하면 될 뿐 돈 드는 일도 아니니까. 빈말은 빈말로 끝날 뿐이겠지만 진심은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은은하게 불을 지피겠지. 그러면 결국 따뜻해지는 건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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