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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 Feb 28. 2024

우리 집으로 놀러 와


술 취해 기분 좋아진 사람들은 몇 가지 특징적인 행동을 보인다. 울거나, 웃거나, 젓가락을 떨어뜨리거나, 인형 뽑기를 하거나, 아이스크림을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 주거나… 나는 최근에 이 목록에 추가될만한 새로운 행동 패턴 하나를 발견했고 이를 '동물의 숲 주민 유형'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이들은 술기운이 왕창 올랐다 싶으면 자기 집으로 초대장을 날리는 유형의 취객이다. 알코올 덕에 마음의 벽이 사르르 녹으면 집 현관문까지 사르르 녹아버리는 건지, 이 사람들은 술자리의 아쉬운 끝 무렵마다 다음엔 자기 집에 놀러 오라며 신신당부한다. (사실 나는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이 정확히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른다. 어쨌거나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 서로를 집에 초대하고 마당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무해한 환상의 섬 정도의 인상을 갖고 있을 뿐이다.)


처음 초대를 받았을 때는 그저 술기운에 하는 빈말인 줄 알고 무심히 넘겼더랬다. 내향인인 내게 집이란 성스러운 공간,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라서 남들도 어느 정도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집 밖에서 온몸을 불살라 쾌활함을 소진하곤 집안에서 입을 꾹 닫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타입이므로 누구를 섣불리 초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물의 숲 주민들로부터 날아온 초대장이 점점 쌓여 가면서, 나는 내향인과 외향인이 각각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이 매우 다르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전자는 '나만의 공간이니 아무나 들어올 수 없음', 후자의 경우는 '나만의 공간이니 눈치 볼 필요 없이 누구든 들어와도 돼' 정도랄까?


어린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덜 부담스럽게 친구 집에 놀러 가곤 했다. 우리 집은 너무 좁았기 때문에 나는 그때도 주로 집주인보다는 손님의 입장이었다. 생각해 보면 공간을 깨끗하게 사용한다는 보장도 없는 산만한 어린이 손님들이 귀찮았을 법도 한데 어른들은 항상 반갑고 편안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정도의 인사말 한두 마디면 그 모든 친절에 충분한 값을 지불할 수 있었기에 우리 모두 어린이답게 해맑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어느덧 어린이보단 그 부모님과 공감대를 형성할 일이 많아진 지금에서야 그때의 배려를 새삼 소중히 느낀다.


가끔은 초대장 하나를 덥석 집어 들고 친구의 집에 놀러 간다. 직접 재배한 사과는 아니지만 충분히 맛있고 예쁜 것들을 양손 가득 들고서. 냉장고를 털어 음식을 대접하고, 좋은 음악을 선곡하고, 최적의 조명을 설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집주인은 꼭 내게 간식을 내어 주시던 어린 시절 친구 부모님을 닮았다. 가만히 앉아 있기가 미안해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손사래를 치며 나를 도로 앉히는, 친절하고 귀여운 동물의 숲 주민. 이젠 어린 시절만큼 자주 남의 집에 놀러 가지는 못하지만 낯선 지하철역에서 내린 후 낯선 길을 걸어 낯선 현관문 앞에 도착하면 예외 없이 마음이 설렌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 들고 온 선물과 함께 건네는 그 말도 모두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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