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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 Mar 06. 2024

길 위의 친구들


퇴근 후 운동복을 주워 입고 헬스장으로 향하는 길. 신난 걸음걸이의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앞질러 걸어갔다. 강아지는 전체적으로 밝은 커피색이었지만 발에서부터 무릎 위로 3cm까지만 마치 축구 양말을 신은 것처럼 새하얀 털이 감싸고 있었다. 흰 양말 신은 길고양이는 많이 봤지만 축구 양말 신은 강아지라니, 이건 정말 충격적으로 귀여운 광경이다! 골 넣고 세레모니 하는 강아지 축구팀 같은 걸 상상하며 나도 모르게 헤벌레 미소를 짓는 순간, 강아지의 주인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속으로만 웃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놈의 입꼬리가 언제 올라갔지. 안 본 척하며 황급히 눈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저분도 분명 당황하셨을 거야. 통화하는 척이라도 할 걸 그랬나? 후회하는 모습조차 여러모로 멋없는 순간이었다.


혼자 길을 걷다 웃음이라도 터지면 은근슬쩍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건 나뿐일까. 길 위에 있을 때는 유독 튀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른 자세로 걷고, 표정은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눈은 최소한으로 마주치도록. 흉흉한 세상에 괜히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싫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떤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거라고 예전부터 막연히 추측해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남의 시선에 잘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닌데. 혼밥도 혼술도 잘하고, 헬스장에서 요상한 자세로 운동하는 것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매번 지적받는 요상한 자세로 어깨 운동을 하며 생각해본 결과, 그 근본적인 원인은 ‘낯섦’인 것 같다. 길 위에서 나는 늘 어딘가로 향하고 있으며 발걸음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풍경은 계속해서 바뀐다. 그렇게 변화무쌍한 공간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내게 개개인의 인물보다는 덩어리로, 흐릿한 안개 너머의 잔상 정도로 애매하게 인식될 뿐이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행인은 영원히 ‘낯선 사람’으로 남는다. 그리고 낯선 사람들 앞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떤 면에서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서 “도를 믿으십니까?” 하며 말을 거는 이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담한 것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이 낯설지 않아지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버스킹의 성지라는 아일랜드 골웨이에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연주하는 신촌역 피아노 앞에서, 경복궁 지하철역 출구 계단의 바이올린 케이스 앞에서 나는 행운처럼 그런 순간들을 마주치곤 했다. 길 위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면 잠시 멈춰 귀를 기울이다가도, 옆에 서 있는 관객들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자주 돌렸다. 거의 100년 동안 문이 열리지 않았던 회색 성문이 마침내 열리고 노란 봄이 찾아오는 상상을 하며. 차분한 온기 같은 것이 퍼져나간 군중의 미소는 늘 나를 안심시킨다. 서로를 낯선 존재로 느끼게 하는 차가운 안개를 서슴없이 걷어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안개 너머에는 온기가 있다. 차가워 보이는 길 건너편의 저들에게도 퇴근 후 반겨주는 가족, 강아지, 고양이, 식물, 침대가 있다. 자기 전에 샤워하는 걸 가끔은 귀찮아하고, 기상 알람을 2분 단위로 맞추고, “하루만 더 신고 버려야지” 하며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출근했는데 하필 그날의 식사 장소가 신발을 벗어야 하는 식당이고, 이런저런 일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거나 포기하고, 오늘과 내일의 고민 사이를 헤매다 간신히 잠이 든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차가운 겨울의 길거리도 그렇게 차갑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이다. 아,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나처럼 모르는 강아지를 보고 헤벌레 웃고 다녀도 된다는 건 아니다. 자칫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을만한 행동은 공공 장소에서 안 하는 게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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