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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 Mar 20. 2024

축의금 아까워하지 않는 바보


올해는 주변에서 결혼을 많이 한다. 길고도 길었던 코로나 기간 동안 결혼식을 포함한 모든 행사가 차질을 빚으며 웨딩 문화도 바뀌는가 싶더니, 마스크를 벗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으로 돌아온 모습이다. 아니, 어쩌면 더 드라마틱해졌나? 결혼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의 험난한 웨딩 분투기를 듣다 보면 아, 한국에서 결혼하는 거 참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다. 식장이고 드레스고 스튜디오고 하여튼 가격 거품이 많이 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구체적인 숫자를 알게 되니 입이 떡 벌어진다. 일이백만 원이면 성능 좋은 노트북을 한 대 살 수 있는데, 그런 돈이 웨딩 업계에선 식장에 꽃 몇 송이 추가하는 정도의 푼돈이구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으로 지켜본 바로 한국에서의 소위 ‘평범한’ 결혼식 준비란 이렇다. 각종 취향과 이해관계와 일정 조율, 거기에 다각도의 서운함 및 분노 한두 스푼, 마지막으로 조급함과 해탈이 버무려진 1년여간의 대서사시. 그리고 기승전 다이어트. 가까운 지인들이 그 행사를 준비하며 볼이 푹 패이는 걸 지켜보니 결혼식 당일의 감동은 너무 짧고 허무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아니, 엄청나게 투입된 자본과 노력에 비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는 거 아니야? 이게 무슨 여의도 불꽃축제나 KBS 가요대축제도 아니고.


사실 나는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진행되는 K-결혼식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져본 적은 없다. 당연히 로망도 없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남의 인생 항로에 말을 얹는 게 점점 조심스러워지면서 그냥 입을 다물게 되었다. 뭐, 화려한 결혼식 로망을 가진 사람도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지. 남의 경사에는 그냥 축하만 한다. 박수도 열심히 치고. 요즘 결혼식에 참석할 때 내 마음가짐이 그렇다. 가끔은 신랑신부가 부모님과 포옹할 때 예고 없이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형제자매 혹은 소꿉친구가 감동적인 깜짝 편지라도 준비하면 진짜 위기다. 어머, 주접스럽게 왜 이러지. 매번 어디서 본 듯한 결혼식장에다가 눈 감고도 예측 가능한 식순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벅찬 감정이 흘러넘치긴 하나 보다. 자연스럽게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며 애꿎은 사진이나 한 장 찍어본다. 주인공에게 보내 줘야지. 아마 같은 각도의 사진을 다른 지인들로부터 수백 장은 받겠지만 말이다.


지난 주말에도 결혼식에 다녀왔다. 솔직히 결혼식 참석은 매번 고역이다. 원래 아침형 인간으로 생겨먹지를 못한 나는 주말마다 늦잠을 자는데, 친구들에게 “내가 주말 오전에 일어나는 경우는 친한 사람 결혼식에 참석할 때뿐이다.”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 백 퍼센트의 진담이다. 어쨌거나 알람 5개를 꺼버린 뒤에 겨우 기상에 성공한 나는 숨을 헉헉대며 식장에 들어서서, 늘 그렇듯 맨 뒤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선 채 열심히 박수를 치고, 살짝 찡해진 코끝을 감싸고 재채기를 몇 번 한 뒤 따뜻한 뷔페 음식을 먹고, 오랜만에 얼굴 보는 지인들과 엄청나게 밀린 근황을 나누었다.


솔직히 아직도 누구누구의 결혼식장이 얼마나 넓었는지, 홀에 꽃이 얼마나 많았는지, 드레스가 얼마나 비싸고 반짝였는지, 신부와 신랑이 얼마나 살을 많이 뺐는지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눈에도 안 들어오고. 대신 평소보다 한껏 힘준 머리 모양을 한 예비부부의 환한 미소, 양가 부모님의 긴장한 얼굴, 말끔하게 차려입은 하객들의 박수소리 같은 게 더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면 ‘아직 사회생활을 덜 해봐서 순진하구나’ 같은 답변이 돌아오려나. 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축하할 만한 일에는 악의 없이 축하해 주고, 슬퍼할 만한 일에 가식 없이 슬퍼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에게 얼마의 축의금을 했는지 같은 건 일일이 기억하지 않는다. 설령 지금은 그 사람과 멀어졌더라도, 그때의 우리는 어련히 가까웠겠지. 또 나는 그 상황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거겠지. 말을 보태거나 손익을 계산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건 지금 나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단 말이다.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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