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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 Mar 13. 2024

이 이모티콘 진짜 귀엽죠

이모티콘이 없던 시절에 글자로 나누던 대화는 어떤 모양이었나?


제일 처음 꾹꾹 눌러쓴 글씨로 소통을 시도했던 건 아마 부모님에게 쓴 편지였을 것이다. 어린이의 생활 반경 안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종이, 예를 들면 다 쓴 달력 뒷면, 전단, A4용지, 신문지, 색종이 등은 어김없이 편지지로 활용되었다. 내용은 글쎄, 편지라기보다는 차라리 읍소문이라고 부르고 싶다.


'오늘은 친구 명진이랑 싸웠어요. 사랑해요'

'용돈 더 필요해요. 떡볶이 사 먹고 싶은데 돈이 모자라요. 사랑해요'

'주말에 늦잠 자고 싶어요. 깨우지 마세요. 사랑해요'



왜인지 모르겠으나 당시 나는 편지라면 무조건 '사랑해요'라는 문장으로 끝나야 한다고 단단히 오해했던 것 같다. 또는 요구 사항을 편지로 쓰면 좀 더 진정성 있어 보인다는 걸 아는 영악한 어린이였을지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엄마는 사랑으로 포장된 어이없는 요구사항은 가볍게 무시했지만, 찌그러진 빨간 하트가 그려진 쪽지는 잘 챙겨서 앨범에 끼워 넣곤 했다.


한글을 완벽히 익히고 나서부터는, 매 시각 다양하게 바뀌는 내 마음을 표현할 좀 더 정교한 문자가 필요했다. 메신저 채팅이 주요 소통 수단이었던 학창시절에는 키보드 자판으로 입력하는 표정 이모티콘 (예: ^_^, ㅡㅡ, +_+)을 자주 사용했지만 이젠 옛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으니 자제하고, 대부분의 대화가 카카오톡으로 이루어지는 요즘엔 귀여운 캐릭터 이모티콘이 주류다. 카톡 이모티콘은 표현도 훨씬 다양한 데다 심지어 움직이고 소리까지 난다. 그걸 만든 사람은 '^_^'을 처음 고안해 낸 사람과 달리 수익 창출까지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놀랍고도 새로운 시장인가.


주변 사람들이 즐겨 쓰는 이모티콘에는 각자의 성격과 취향이 조금씩 녹아 있다. 어떤 이모티콘은 그걸 쓰는 사람과 너무 잘 어울리는 나머지 거의 디지털 분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대 차이도 물론 있다. 20대 후반의 직장 후배가 즐겨 쓰는 하찮고 삐뚤빼뚤한 이모티콘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너는 그게.. 귀엽냐?" 물음을 던지던 50대 부장님의 혼란스러운 얼굴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엄마는 내가 보내는 이모티콘을 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게으른 다람쥐 이모티콘을 보내면 "얼씨구, 바닥 청소는 네 뱃살로 다 하고 있네."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식이다.


화려하고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는 것도 받는 것도 이제는 습관적이다. 웃긴 상황을 좀 더 웃기게, 슬픈 상황을 좀 더 슬프게 만들어주고, 대답할 말이 애매할 때 티 안 나게 얼버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유용하다. 그러나 이모티콘 때문에 정작 중요한 대화의 본질이 흐려지는 경우도 있다. 본래 더 무겁게 여겨져야 했을 단어, 더 신중하게 곱씹어봐야 했을 문장들이 자칫 방심하면 귀여운 이모티콘들과 함께 떠내려가 버린다. 가끔 이모티콘을 쓸 수 없는 기본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면, 내 말풍선 속 단어들이 새삼 눈에 더 잘 들어온다는 걸 깨닫고 놀라기도 한다. 또 그 말투는 어찌나 딱딱하고 어색해 보이는지. 나는 휴대폰을 붙잡고선 말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몇 번씩 문자를 고친다. 고작 바닥을 굴러다니거나 제자리에서 점프하는 동물 이모티콘 몇 개 없을 뿐인데.


하트를 뿅뿅 날리는 이모티콘은 많이 보냈어도 어린 시절처럼 꾹꾹 눌러쓴 '사랑해요' 한 문장을 마지막으로 건넸던 건 언제였나. 생각해 보면 부모님에게 손 편지를 쓴 것도 이십 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어본 이라면 알 것이다. 종이에 쓰인 문장들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의 말풍선들처럼 흘리듯이 읽을 수가 없다. 책도 마찬가지다. 단어 하나하나 정성으로 골라 썼으므로 자연스레 정성 담아 읽게 된다. 방금 나는 매년 초 적어 내려가는 <작년의 내가 안 해봤던 일 해보기> 리스트에 추가할 만한 목표를 발견한 것 같다. 가까운 이들에게 손 편지를 써보기. 아무 날에 쓰기엔 좀 계면쩍으니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꾹꾹 눌러쓴 진심을 전달해 보는 걸로. 편지 쓰기에 그다지 자신은 없지만, 어린 시절의 읍소문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실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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