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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Aug 15. 2021

성냥 공장 소녀, 김순덕

#17.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추운 겨울날, 소녀는 치마 앞자락에 여남은 개의 성냥을 담아 집을 나섰다. 치맛자락을 움켜쥔 손과 슬리퍼를 꿰어 신은 맨발은 추위로 인해 금 새 빨개졌다.      

소녀는 집 근처 성냥공장에 다녔다. 하루 13시간 동안 만개의 성냥개비에 인을 붙이거나 성냥갑에 담는 일을 했다. 그렇게 일하고 받는 돈은 고작 60전이었다. 여직공들은 퇴근할 때마다 치마 밑에 성냥을 숨겨 가지고 나왔다. 성냥 한 통이 쌀 한 되 값이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여직공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소녀는 살 길이 망막했다. 집에 쌀도 떨어졌는데 돈 한 푼 없었다.  아버지는 풀칠한 성냥갑을 널러 지붕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쳤다. 그 후로는 집에서 술만 마셨고 술이 떨어지면 술 사 오라고 소녀를 때렸다. 소녀는 그런 아버지를 피해 거리로 나섰다. 아버지의 매질보다 거리의 찬바람이 덜 아플 것 같았다.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찬바람이 소녀의 목소리를 잡아먹었다. 며칠 째 풀죽만 먹은 탓에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소녀가 들고 있는 성냥에 관심이 없었다. 소녀가 사는 동네는 지천으로 널린 게 성냥이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성냥갑에 풀칠하는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소녀는 성냥이 팔릴 만한 곳을 찾아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생전 처음 와 본 동네였다.

‘여기가 어디지? 길을 잃은 건가?’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아버지한테 매를 맞아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다. 하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몸에 온기가 돌았다. 다들 저녁 준비를 하는지 여기저기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소녀는 냄새를 따라 동네를 돌기 시작했다. 이 집선 구수한 된장 내가, 저 집선 고소한 고등어 내가, 요 집선 감자 찐 내가 났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땐 종종 먹던 것들이었다.  녀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한 입만 먹을 수 있다면... 딱 한 입만!'

소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만 아계신다면 풀죽만 먹어도 찬바람에 쓰러져도 행복할 것 같았다.

소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데 저 중에 어떤 별이 어머니일까? 소녀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 어디 계세요... 어머니...'

그때였다. 어디선가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말은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소녀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다.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소녀는 벌떡 일어나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찬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조금도 휘청이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몸에서 힘이 절로  났다.

몇 발자국 걸어가자 조그만 회색빛의 예배당이 나왔다. 소녀는 창문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보았다. 열댓 명의 아이들이 마룻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 목소리가 칠판에 써진 글을 읽으면 아이들이 따라 읽었다.

“가갸거겨고교구규가.”

“가갸거겨고교구규가.”

소녀도 작지만 힘찬 목소리로 따라 읽었다.

‘가갸거겨고교구규가...'

리가 몸속에 퍼져나갔다. 얼었던 몸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가갸거겨고교구규가...'

소녀는 읽고 또 읽었다.

어머니 목소리가 말했다.

“자, 이제 자기 이름을 공책에 써 보세요.”

소녀는 쭈그려 앉아 성냥 한통을 뜯었다. 어머니랑 글공부할 때는 부러진 성냥개비를 썼었다. 소녀는 성냥개비로 자기 이름 쓰기 시작했다. 녀의 이름은 김순덕이었다. 다 쓴 후에는 천천히 소리 내어 읽보았다.

"기이임...수우우운...더어어억..."

소녀는 얼굴을 붉혔다. 자기가 자기 이름을 말하려니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도 듣기에 참 좋다. 소녀는 몇 번이고 자기 이름을 불렀다. 기이임수우운더어억...기임수운더억...

“네 이름이 순덕이구나...”

머리 위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 심장이 멎는  알았다. 진짜 어머니가 살아오신  같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어머니 목소리 뒤로 휘영청  달이 보였다. 너무  부셔 눈을 제대로   없었다.   

“순덕아."

"..."

"안에 들어가서 같이 공부하지 않을래?”

 소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까만 밤하늘에서 솜털 같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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