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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Dec 02. 2020

효녀 흥청

#13.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새벽이에요. 효녀 흥청이 아빠 변기 물 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요. 눈 뜨자마자 머리맡에 둔 태블릿 PC와 스마트 폰부터 확인해요. 휴, ‘메롱’ 스밍이 끊기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네요. 아, 근데 울 오빠들 노래가 4위로 떨어졌어요. 새벽 3시만 해도 2위였는데. 흥청인 무척 속이 상해요. 어떻게 하면 울 오빠들 1위 만들 수 있을까. 그리만 된다면 인당수에라도 빠질 기세예요.      



그 시각 밖에선 흥청아빠가 집을 나서요. 한 손에는 흥청이 먹다 남긴 가래떡을, 다른 한 손에는 액정 깨진 폰을 들고서요. 얼마 전까지 흥청이 쓰던 폰이에요. 흥청이는 눈알 세 개 달린 애뿔폰으로 바꿔줬어요. 액정 깨진 폰은 스밍이 잘 안된다나. 애뿔폰 사주고 흥청엄마한테 욕 한 바가지 얻어먹었어요. 딸바보가 바보딸 만들고 있대요. 우리 딸이 왜 바보냐고 대들었다가 용돈만 깎였어요. 그래서 맨 날 가던 복다방도 못 가요. 에이, 그깐 복다방 커피 못 마시면 좀 어때요, 우리 흥청이만 행복하다면 자판기 커피도 복다방 커피 못 지 않아요. 


    

째깍째깍. 온라인 수업시간이 다가와요. 흥청엄마, 흥청이 방문에 귀를 대봐요. 방에선 하이틴인지 마운틴인지 하는 것들 노랫소리만 들려요. 순간 속에서 열불이 나요. 방문 열고 수업준비 하라고 소리치고 싶은데 문 앞에 써 붙인 ‘출입금지’라는 글씨가 눈에 거슬려요. 열까, 말까. 열까, 말까. 흥청아빤 절대 딸 방에 들어가지 말래요. 사춘기 소녀 사생활을 존중해주래요. 남편이라는 인간이 갱년기 마누라는 안중에도 없어요. ‘흥청이 년은 복도 많지. 사생활 존중해주는 아버지도 있으니. 울 아버진 내가 딸이라고 거들떠도 안 봤는데. 젠장, 수업을 듣든지 말든지!’ 흥청엄마,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벌렁 누워요.     



흥청엄마, 경제관념 없는 흥청이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에요. 흥청인 용돈을 덕질하는데 몽땅 다 써요. 얼마 전엔 4만 원이나 주고 산 걸그룹 앨범을 산 지 한 달도 안 돼 친구 줘버렸어요. 그새 탈덕했대요. 며칠 전엔 하이틴 3집 앨범을 열 세장이나 샀어요. 앨범 안에 든 포토카드가 랜덤이어서 13명 멤버 전원의 카드를 모으려면 그렇게 사야 한대요. 흥청엄마, 그 순간 열 받아서 쥐고 있던 주걱으로 흥청이 머리통을 후려쳤어요. 지 엄만 전기 값 아끼려고 압력솥에 밥하고 마트 전단지 색칠해가며 장 보러 다니는데 딸년은 책갈피만 한 사진 갖겠다고 십만 원 넘는 돈을 쓰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요. 흥청이 아빠한테 전화해 엄마가 때렸다고 고자질해요. 전화기 너머로 ‘우리 딸을 왜 때려!’ 하는 흥청아빠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요, 흥청엄마 그 소리에 열 받아 하마터면 그 비싼 애뿔폰을 망치로 깨부술 뻔했어요.  



흥청엄만 말 안 듣는 흥청이 보다 그런 흥청이를 싸고도는 흥청아빠가 더 꼴 보기 싫어요. 흥청아빤 흥청이 덕질에 폰질만 해도 예쁘대요. 우리 흥청이가 행복하다는데 그깐 돈이 뭔 대수냐, 덕질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질려서 공부할 거다, 이래요. 자기는 우리 딸을 믿는다나. 그 말에 흥청엄마 한마디 해요. ‘어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봐라. 정신이 번쩍 들 거다.’ 흥청아빠 발끈해요. 무슨 엄마가 딸한테 악담만 하녜요. 아이들은 부모 칭찬을 먹고 자란다고 칭찬 좀 많이 해주래요. 흥청엄마 콧방귀 뀌어요. ‘칭찬 좋아하시네. 애들은 부모 돈 먹고 자라는 거야.’     


  

수업을 듣긴 듣나 봐요. 흥청이 방에서 노랫소리 대신 여자 목소리가 들려요. 솰라솰라솰라. 흥청엄마, 눈을 감고 생각해요. ‘그래, 어디 한번 믿어보자. 내가 저 나이 땐 공부 잘해서 효녀 소리 들었는데 우리 딸도 날 닮아서 분명 그럴 거야. 아, 근데 왜 또 졸렵지?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갱년기도 사춘기처럼 잠이 많아지나 봐요. 막 눈이 감기려는데 흥청이 목소리가 들려요.

“뭐야, 또 자는 거야?”

흥청엄마, 괜히 민망해서 안 잔 척 눈을 부릅떠요. 흥청이 한심한 얼굴로 보며 투명 유리컵을 내밀어요. 

“이거 마셔.”

“뭔데!”

“꼰대라떼.”

 흥청엄마, 눈을 흘겨요. ‘꼰대’ ‘라떼’라는 말을 싫어해요. 요즘 것들은 무슨 말만 하면 ‘꼰대’래요. ‘응답하라, 1988’은 재밌다고 보면서 엄마가 ‘나 때는 말이야‘ 하고 옛날 얘기 좀 할라치면 듣기 싫대요. 나의 추억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벌컥벌컥. 흥청엄마 꼰대라떼를 맥주 마시듯 마셔요. 뭔지 뭐를 달달함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요. 맛있어요. 울 딸이 엄말 위해 이런 것도 만들어주다니 역시 날 닮아 효녀예요. 아, 근데 뭔가 이상해요. 지금 분명 수업시간인데. 흥청엄마 빽 소리 질러요.

“야, 지금 수업시간 아니야?” 

흥청이 못마땅한 투로 한마디 해요. 

“에효, 요새 온라인 수업 듣는 애가 어디 있다고. 누가 꼰대 아니랄까 봐…….” 

흥청이 투실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자기 방으로 가요. 흥청엄마 그 모습에 또 화가 나요. 어휴, 저건 사춘기가 아니라 싸춘기예요. 싸가지 없는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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