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음악으로 기억하는 법
2007년 여름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워킹 비자는 당시 경쟁률이 굉장히 높았고 한 번에 통과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운 좋게 단번에 워킹 비자가 붙었다.
일본에 가야 하는 사유서를 너무 절절하게 썼나?
내 간절함이 통했나 보다.
워킹 비자는 아르바이트를 제한 없이 할 수도 있고 어학교 비용도 저렴해서 젊은이의 무적의 비자라고 할 수 있다.
일본어를 못하는 내가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다. 떠나기 전 몇 달 동안 '일본어 무작정 따라 하기'라는 책으로 mp3를 반복해서 들었다.
말을 못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알아 들어야 분위기 파악은 할 것 같아서 남은 시간 듣기 공부에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히라가나 가타카나만 외우고 난 호기롭게 일본 생활을 시작했다.
운 좋게도 집 근처에 슈퍼마켓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었다. 그 슈퍼는 한국에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점장이 있었다.
일본어 못해도 한국인이라면 오케이.
겨울연가 덕분에 가게에서 나는 최지우 얼굴이 아닌데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지우히메'라고 불리곤 했다.
(아... 이 얼굴로 지우히메였던 옛날이여.....)
내 담당은 과일과 야채 코너였다.
나는 그곳에서 일본어가 필요 없는 일을 도맡아 했다. 과일 랩핑을 하거나 과일을 썰거나 야채 진열을 했다. 그렇게 바쁘지도 않고 일은 단순하고 재미있었다.
매장 특성상 하루 종일 제이팝이 흘러나온다. 일주일에 하루를 쉬고 6일 근무하니 노래는 흥얼거릴 정도로 귀에 익었다.
[아르바이트에서 발견한 곡들]
FUNKY MONKEY BABYS- 旅立ち
Greeen-キセキ
嵐-love so sweet
Smap-そなまま
당시 나는 일본음악에 굉장히 무지했는데 생각보다 제이팝은 내 취향에 맞는 노래가 많았다.
가사는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멜로디만으로 외롭고 가난한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듯했다.
노래의 제목과 가수가 궁금해졌다.
제목을 알아야 내 mp3에 넣을 수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써보는 단어. 엠피 뜨리)
아르바이트 내내 노래의 구절과 단어를 기억했다가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펴고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 타자로 더듬더듬 노래 제목을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잘 나오지 않는 곡은 다음날 더 집중해서 들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은 이런 수고스러움이 너무나 당연했다.
이때부터였을까?
나는 제이팝에 눈을 뜨게 됐다.
작년에 남편과 삿포로에 갔다.
오타루 오르골당 시계탑 앞에서 거리의 마술사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마술쇼가 끝날 때쯤 우리 둘은 한번 들으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감동적인 노래를 만나게 됐다.
가만히 듣던 남편이 말했다.
".. 아.. 이 노래 너무 좋다.. 이거 무슨 노래지?"
나는 예전 실력을 발휘해 그 곡을 찾아냈다.
숙소로 돌아가는 렌터카에서 우린 그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요즘도 이 노래를 들으면 홋카이도에서 드라이브하며 행복했던 그때 기억을 떠올린다.
추억은 종종 음악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오타루의 시계탑을 기억하게 하는 그 음악은 指田郁也 [사시다 후미야]의 花になれ [하나니니레]라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