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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Jun 22. 2023

멀고도 가까운, 아이 친구 엄마

익숙한 관계가 깨어지는 상실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익숙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오전 열시도 되지 않았건만 등줄기를 타고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앞 쪽으로 챙이 긴 모자를 썼지만 등 뒤로 창처럼 꽂히는 따가운 햇발은 어쩔 도리가 없다. 통이 넓은 하얀 바지에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큰 티셔츠를 입고 팔에는 하얀 팔토시를 꼈다. 챙이 짧은 모자로는 햇볕을 당해낼 수 없어서 얼굴을 덮고도 남는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모자가 커서 자꾸 눈 아래로 흘러내리는 바람에 이마에 휴지 하나를 덧댔더니 제자리를 잡았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이들 친구 엄마 밖에 없는, 여전히 낯선 도시이기에 가능한 패션이다. 친한 친구나 오래 사귄 사람들이 본다면 밭에 김매러 가냐고 깔깔대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모자의 챙을 머리 위로 까 올려서 "나야. 나 맞아"하고 먼저 인사하지 않는다면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할 미라 패션이다.


  아파트 단지를 따라 오래된 산책로가 있다. 아파트 7층 높이를 웃도는 큰 나무들이 직선거리로 2km 정도 되는 길고 넓은 보행로를 감싼다. 육교를 따라 이 단지에서 저 단지로 이동하기도 하고, 산책로를 벗어나 큰길을 따라 걸으며 크고 작은 상점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산책로 끝에는 얼마 전 공식 개장한 수목원과 큰 공원이 있다. 보통 수목원이나 공원을 따라 하루에 만 보 걷기를 하는데, 오늘은 햇발에 갇혀 산책로를 벗어나고 싶지 않다. 목발을 하고 엉거주춤 걷는 장년 남성, 나보다 더 꽁꽁 싸매고 팔을 앞뒤로 힘차게 휘두르며 빠른 속도로 걷는 장년 여성, 하얀색 몰티즈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는 젊은 여성, 벌써 등산을 마치고 하산하는 듯한 중년 남성, 손에 아이스커피 한 잔씩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엄마들 사이에 자칭 '이 동네 외톨이'인 내가 있다. 걸음도 느리고 체력도 약한데 운동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생존 걷기를 하는 내겐 혼자서 걸어야 할 이유들이 분명한 것이다. 얼른 걷기를 마치고 내가 사랑하는 집에 가서 몸뚱이를 풀어놓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푸른 엄마? 푸른 엄마!"


  이곳은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곳도, 대학을 다닌 동네도, 직장을 다녔던 지역도 아니어서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이들 친구의 양육자뿐이다. 내 이름이 아닌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는 게 일주일에 5일쯤 되니 엄마들의 관계가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다. 이렇게 꽁꽁 싸맸는데도, 내 뒷모습을 보고 단번에 나를 알아본 사람은 단연 아이 친구의 엄마이자, 나와도 친한 사이다.


  "어머. 안녕하세요.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으신 거 보니 어디 가시나 봐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노랑 엄마다. 이 엄마도 평소엔 나처럼 편하게 입고 다니는 사람인데, 오늘은 아침부터 특별한 외출복을 입고 있다.


  "네. 우주 엄마 만나러 가고 있어요."

  간단한 안부를 전하고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되돌아온다. 사귀다 헤어진 남자친구도 아니고, 20년 정을 나눈 오랜 친구도 아닌데 묘한 감정이 인다. 허전하고 찝찝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


  노랑 엄마를 처음 만난 건 둘째 아이가 세 살 때였다. 두 돌이 지난 푸른이의 손을 잡고 첫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오는데 노랑이와 그 엄마를 만났다. 노란색 탈색한 머리에 팔과 다리에 조그만 문신이 있는 젊은 엄마였다. 아이들끼리 같은 반인 데다 잘 놀고, 나도 노랑 엄마와 나이도 비슷하고 대화도 잘 통해서 금방 친해졌다. 노랑 엄마는 나와는 다른 환경과 문화를 접하며 자랐는데,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눠 먹고, 육아 용품도 주면서 내 마음을 표현했다. 아이들이 좀 더 자라 더 큰 어린이집으로 옮길 때도 같은 곳으로 갔다.


  옮긴 어린이집에서 푸른이와 노랑이는 다른 반이 되었다. 어린이집 하원 후, 노랑이는 반 친구들과 매일 같이 어울려 놀았고 푸른이는 형아의 일정 때문에 곧장 집으로 올 때가 많았다. 노랑이 엄마도 이 동네가 타지인 데다가 다른 엄마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는데, 노랑이와 같은 반인 우주 엄마와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우주 엄마는 아이 둘을 키우는 젊은 엄마인데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이였다. 그런데도 아기를 아기띠에 메고 활발하게 이곳저곳을 다녔고 에너지가 넘쳤다. 쾌활하고 재미있는 우주 엄마와 조용하고 민감한 노랑이 엄마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따로 노랑이 엄마를 만나도 자주 우주 엄마의 이름이 카톡창에 울렸다. 같이 놀자고 연락해도 우주와 만나기로 했다고 거절당할 때가 많았다. 우연히 놀이터에서 다 같이 만나도 노랑이 엄마와 우주 엄마는 따로 붙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와는 존댓말을 사용하지만, 둘은 말을 놓았다. 어느새 노랑 엄마는 나와 만나면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나와 할 말이 별로 없어 보였다. 어느 날, 푸른이가 집에 와서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엄마 오늘 왜 이렇게 늦게 데리러 왔어? 노랑이랑 놀고 싶은데 오늘 우주랑 둘이 키즈카페 간대. 일찍 갔어. 나도 키즈카페 가고 싶단 말이야."


  푸른이를 꼭 안아주며 달래는데 마음에 서운한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 3년 동안 친하게 지냈던 시간들이 너무 쉽게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노랑이 외에도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노랑 엄마 외에도 아는 엄마들이 있지만 가장 깊이 마음을 나누고 친하게 지내던 관계가 일방적으로 끊기는 상황은 이전에 겪어왔던 관계들과는 또 다른 감정을 안겨주었다. 처음엔 우주 엄마의 흠을 찾게 되었고 다음엔 노랑 엄마에 대한 실망감이 밀려왔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나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내 탓을 했다. 이름을 알기 힘든 우울감에 신체의 힘이 빠져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먼저 이 길을 걸어갔거나 걸어가고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 친구 엄마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연대와 상실감이 엄마들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관계의 상실감과 실패에 대한 망연함은 자아존중감을 좀먹었다. 세상과 부딪히는 게 괴롭고 혼자 단절된 삶이 평안함이라는 거짓 안위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어떻게든 결론을 내지 않으면 결코 이 우울함에 끝이 없으리란 걸 알았다. 하버드 심리학자인 에드 트로닉과 소아정신건강전문의 클로디아 M. 골드는 공동저서 <관계의 불안은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독을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타인과 부딪쳐 다시 연결될 용기"라고 말한다. 인간은 '안전한 혼자'가 아니라, "갈등과 불일치를 겪고 복구와 회복을 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이러한 순간들이 쌓여야만 단단한 자기감각과 인간관계를 형성해나갈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관계에서 고립되어 혼자 지내는 것이 우리에게 더 나은 대안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고 타인과 연결되어 상처를 이길 힘을 기르는 것이 우리를 생존케 하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노랑 엄마는 우주 엄마를 만나러 가며 나에게 말했다.

"다음 주에 같이 밥 먹어요."

  노랑 엄마의 작별인사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다음 주 시간이 되는지 떠올려 보았다. 이미 두 명의 엄마와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자칭 '이 동네 외톨이'는 많은 엄마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인기 있는 엄마일지도 몰랐다. 우주 엄마처럼 쾌활하고 재미있진 않지만 나는 나대로의 모습을 지닌 사람이다. 다른 아이도 내 아이 같은 마음으로 챙겨주고 싶고 다른 엄마들이 한 사람의 인격으로 잘 지내는지 궁금하고 비싸고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지 않아도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위로해주고 싶어 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노랑 엄마가 지금은 내가 아닌 우주 엄마랑 더 친하고, 다른 사람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관계의 유동성은 또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이러한 거리감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할 수도 있다. 나 스스로에게도 실망하는데 타인을 향한 기대감은 당연히 실패하게 되고 내 마음에 언제나 들지만은 않는 게 정상이다. 그러니 노랑 엄마와 나는 제대로 관계를 정립하며 만나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관계를 접거나 폄하하지 말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놔둔 채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의 삶을 영위하고 싶다. 기대감과 아쉬운 마음이 남더라도 이걸 복수 심리로 되갚진 말아야겠다. 노랑 엄마를 향해 언제나 열려있던 문은 어쩔 수 없이 닫히겠지만, 문 자체를 없애버리진 않을 것이다.


  "실현되지 않은 계획에, 이루지 못한 목표에, 실패한 관계에 절망하지 말 것. 대신 거기에서 배우라. 그리고 다음에는 조금 다른 것을 시도해보자. 삶이 나아지는 과정은 느리고 점진적이라는 인간의 필연성을 받아들이자. ...(중략)... 상황이 좋아지기 전에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괜찮다. 실패하는 실험을 즐기라. 혼자서 해내는 과정을 누리라. 그리고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나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고, 지금도 그럴 생각은 없다"

  여덟 살에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진단받고, 오랜 시간 ADHD, 범불안장애, 강박장애, 감각처리장애와 함께 살아온 영국의 여성 과학자 카밀라 팡은 그의 저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에서 실패한 관계에 절망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은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실패하는 관계도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 관계를 망친 게 내 부족함 혹은 누군가의 부주의함 때문이라는 비난을 멈추고 내 존재를,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길 원한다. 삶과 사랑, 그리고 관계는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닿게 되어 있으므로. 나와 맞닿고 있고, 맞닿게 될 누군가를 위해 내 마음 한편을 깨끗이 청소해 둔다.

맛있는 게 있으면 노랑이네에게 나눠주던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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