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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Feb 07. 2023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골병든다

꼬맹이 턱이 찢어져 응급실에 갔다.

 중요한 모임을 마치고 뒷정리를 하려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둘째 꼬맹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턱이 찢어졌다는 거다. 생각보다 심각한지 턱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외투가 피로 물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데 순간 머리가 빙글 돌면서 손끝이 차가워졌다. 소리 없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내가 울고불고 주저앉는다고 해결될 일은 하나도 없다. 119에 전화를 걸어 일요일인 오늘 현재 어린아이 진료가 가능하고 성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응급실을 물었다. 119에서는 내 위치를 조회해 문자로 몇 군데의 대학병원 이름을 보내주었다. 직접 전화해서 진료 가능 여부를 꼭 물어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몇 차례의 통화 끝에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성형외과 전문의가 있고 어린아이도 진료 가능하다는 응답을 받았다. 대기가 4~5시간이라는 다른 병원보다 예상 대기 시간도 짧았다. 가는 길에 만나는 빨간 신호등과 방지턱들이 마음을 휘저었다.


  턱이 찢어져 피가 흐르는 아이를 안고 대기실에서 접수를 했다. 지난주에 기습 예방주사를 두 방이나 맞은 꼬맹이는 주사 맞기 싫다며 발버둥 쳤다. 턱이 찢어진 고통보다 주사에 대한 두려움이 더할 나이였다. 주사는 안 맞고 달콤한 딸기 약만 받을 거다, 끝나고 아이스크림과 사탕을 사주겠다고 살살 꼬셔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떡 진 머리와 수면 잠옷, 슬리퍼만 신은 채 다급하게 응급환자의 보호자로 왔을 대기실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뉴스 소리만 공허하게 윙윙대는 대기실에서 아이의 울음과 분노는 압도적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주사 맞는 게 무서워 병원에서 도망친 적이 있었다. 계주 하듯 나를 뒤쫓던 엄마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예진 간호사와의 응답은 아이의 울음 때문에 고함치듯 이루어졌다. 계단은 나무였는지 시멘트였는지, 올라가다 넘어졌는지 내려오다 넘어졌는지, 아이가 어지러워하거나 기억을 잃었는지, 사고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 사고가 일어난 지 얼마나 지났는지 등을 물어봤다. 아이가 좋아하는 나무 놀이터에서, 모양은 나무지만 소재는 모두 시멘트인 조형물에서 흥분한 채 오도도도 뛰어다니던 아이는 순식간에 사고가 났다.


  응급실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아이는 응급 딱지를 받았지만 꽤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첫째의 몸은 대기실 의자에서 점차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눈물 콧물 핏물 섞어가며 울던 둘째는 <꼬마버스 타요>에 빠져들었다. 예진 의사를 만나고, 머리 엑스레이를 찍고, 그때마다 주사 맞기 싫다며 두려워하던 둘째는 점차 주사는 없다는 말에 속기 시작했다. 둘째의 턱 상처는 누가 봐도 꿰매야 할 것처럼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전문의와의 치료가 이루어졌다. 초록 쿠션이 달린 작은 침대에 누워 미라처럼 벨크로 테이프로 몸을 꽁꽁 감쌌다. 둘째는 “엄마 손 잡아 줘!” 외치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파란 천으로 아이의 턱을 제외한 얼굴을 감싸고, 상처가 벌어진 부분에 마취 주사를 여러 번 나누어 주입했다. 이미 몸이 묶이고 파란 천으로 시야를 제한당하자 두려움에 발버둥 치던 아이는 벌어진 피부 안에 주사기를 꽂자 기절할 듯 울어댔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존댓말까지 하며 살려달라고 외쳐댔다. 부분 마취가 듣지 않는 건지, 아이가 예민한 건지 뾰족하게 끝이 구부러진 쇠바늘로 의사가 턱을 꿰매는 내내 아이는 숨도 잘 못 쉬며 애원하고 절규했다. 아이 손을 꼭 붙잡고 아무리 달래도 아이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아마 응급실에 있던 모두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성형외과 전문의 이름표가 달린 젊은 의사가 나와 함께 아이를 달래다가도 지쳐서 한 번씩 깊은 한숨과 짜증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엄마인 나도 힘든데, 일요일 당직에 어린아이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들어가며 근무하는 의사는 오죽할까. 시술이 끝난 후 아이는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눈을 포함해 얼굴의 실핏줄이 다 터져 있었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이는 진통제를 먹고 깊이 잠들었다. 자다 깨서 울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 번도 깨지 않았다. 두꺼운 밤을 갉아먹는 소리가 내 안에서 자꾸 번져갔다. “살려주세요. 내보내 주세요. 이것 좀 치워주세요. 집에 가고 싶어요. 제발요.” 낮에 외치던 아이의 소리와 몸동작, 아이를 붙잡았던 내 팔과 근육의 감각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그 선택을 아이도 언젠가는 이해해 줄 것이다. 지금은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그럼에도 너는 날 안아주고 좋아해 주고 용서해 주겠지. 날이 밝아오도록 심장 박동이 거세게 요동쳤다.


  주말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월요일을 맞았다. 지난주엔 행사 준비로 동동거렸고, 토요일엔 온 가족이 결혼식을 다녀왔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주었다. 집에서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달래 소아 상처를 치료해 주는 성형외과에 갔다. 대부분의 성형외과가 피부 관리나 성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이런 곳은 매우 귀하다. 주변 지역에서 다친 아이들이 모두 몰려오는 병원이다. 나는 운 좋게 주말에 성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응급실에 가서 아이 턱을 봉합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소아의 상처를 봉합할 곳을 찾지 못해 월요일까지 기다려 이 병원에 오기도 한다. 전문의가 없는 곳에서 꿰맸다가 여기에서 다시 풀고 네 번이나 재 봉합한 사례도 들어봤다.


  예약이 되지 않아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깨지고 다친 아이들이 다들 어딘가에 붕대를 감고 대기실 의자가 부족할 정도로 가득 모여있었다. 유튜브로 잠재워지지 않는 무한 에너지를 어쩌지 못해 바닥을 기고 소파를 구르고 엄마를 잡아끌며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중에 우리가 있었다. 미리 준비해 간 종이 접기와 스티커로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또다시 주사 맞기 싫다며 우리 차례가 되어서도 진료를 거부했다. 이미 두 번이나 거짓말을 했기에 주사 안 맞는다는 말은 먹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간호사에게 아이 몰래 사과맛 캐러멜을 건넸다. 아이가 좋아하는 캐러멜을 주는 병원이라는 인식을 위해서. 아이는 한 손에 캐러멜을 쥐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다행히 예쁘게 잘 꿰맸다는 단 한마디 말을 듣고 진료는 끝났다. 이곳은 아이의 상처 치료를 해주지만, 진료는 한순간에 끝난다. 준비해 간 질문들이 있었지만 꺼내 보지도 못했다. 대기실에 아이들이 넘쳐나고, 이렇게 짧게 진료해도 대기가 기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제 매일 소독과 드레싱, 적외선 치료를 위해 이 일을 당분간 계속해야 한다. 실밥을 뽑을 땐 또 얼마나 난리가 날까.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골병든다. 지인에게 요즘 체력이 너무 없고 밤에 잠을 잘 수 없다고 어떤 운동을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무조건 쉬라는 대답을 했다. 엄마의 삶에 무조건 쉴 수 있는 날은 언제 오는 걸까?


아이를 안고 목에 걸고 있던 명찰에 '보호자 caregiver'라고 적혀있다. 이건 응급실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내 이름이다. 관심을 갖고 돌봄을 베푸는 사람.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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