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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Jul 21. 2023

친한 친구와 머리 하나 차이가 나는 내 아들

대학 병원 성장 클리닉에 갔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에게 드디어 친한 친구가 생겼다. 어릴 때 다니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선 여자 아이들이 월등히 많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딱히 단짝을 만들지 않고 두루두루 잘 놀던 아이였다. 지금까진 내가 먼저 친해진 엄마들과 연락해 만났는데, 이제는 아이가 친구와 약속을 잡고 허락을 구했다. 아이는 하교 후 책가방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지후랑 놀고 와도 돼?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친한 친구'라는 말이 대견하면서도 뭉클했다. 내 아이는 어떤 친구와 어울릴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구나. 지후는 부모님께 허락받았대? '친한 친구'라는 건 어떤 친구를 말하는 거야?"

  아이가 내뱉는 말과 내가 받아들이는 뜻이 다를 수 있기에 아이가 느끼는 '친한 친구'가 무엇인지 물었다.


  "지후는 착해. 같이 놀면 재밌고.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예의 있게 말하고 나랑 잘 통해."

  아이가 좋은 친구를 사귄 것 같아 기쁘고 고마웠다.


  "그렇구나. 너도 지후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줘. 집 앞 놀이터에서 벗어나지 말고 조금만 놀다가 들어와. 엄마가 걱정되니까 베란다로 보고 있을게."

  아직까진 놀이터에 따라 나가지만, 집 앞에서 잠깐 노는 정도는 아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아 아이만 보내기로 했다. 아이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작두콩 차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곤, 좋아하는 무선 조종 장난감 차를 집어 들며 말한다.


  "당연하지. 어차피 지후도 학원 가야 해서 20분 밖에 못 논대. 서로 집에 가서 허락받고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어."


  엘리베이터에 낮아지는 층수를 지켜보다 놀이터가 보이는 베란다로 향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장난감 차를 무선으로 조종하며 지후를 기다렸다. 곧 옆 동에 사는 지후가 나왔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멀리서 봐도 선연히 보이는 키 차이. 그 아이는 내 아이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동생이라고 여길지도 모를 만큼 아들은 그 친구 옆에서 아기 같아 보였다. 두 아이는 같이 노는 게 기쁜지 손뼉을 마주대고 치면서 콩콩 뛰었다. 내 머리는 온갖 고민으로 뒤엉켜 혈류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쿵쿵 솟았다.

엄마가 끓여주셨던 물을 이젠 내가 끓인다. 스테인리스 망 안에 작두콩과 결명자 등이 들어있다.


  마침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전에 말한 아이 성장 주사를 알아보았느냐고 물으셨다. 시어머니 주변에 계신 분들이 다들 주사 맞혀서 애들 키 키우느라 난리라고 하셨다. 한약이든 주사든 맘카페를 통해 알아보고 아이 생일 전에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나도 알아본 적이 있다. 주변에 주사를 맞히는 사람도 있다. 시어머니의 걱정과 염려도 잘 안다. 어머니의 말씀은 성장 호르몬 주사와 성 조숙증 주사가 혼합된 이야기이다.


  성장 호르몬 주사는 키가 전체 평균의 하위 2% 일 때 맞는 주사인데 보험 적용이 되려면 요건이 까다로운 데다가, 일주일에 6일을 맞아야 한다고 한다. 건강보험이나 실비 보험 적용을 받지 않고 개인의 돈으로 맞는 경우도 있다. 성장판이 닫히거나 평균 키에 도달할 때까지 몇 년을 맞히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아이 키가 클 때가 되어서 큰 것인지, 정말 주사의 효과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성 조숙증 주사는 나이에 비해 뼈 나이가 빨리 성장해 조기에 성장판이 닫히거나 어린 나이에 생리가 시작되는 것을 늦추기 위해 맞는다고 한다. 3학년 생일 전에 진단을 받으면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고 한 달에 한번 주사를 맞는데 키 성장 주사에 비해 부작용은 거의 없다고 한다. 어쨌든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투여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두 주사를 한꺼번에 맞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잘 몰라서 주변에 대학병원에 다니며 교수님께 주사를 맞고 있는 지인이나 대형 병원에서 제공하는 의학 상식 사전, 전문가의 인터뷰 등을 참조해서 혼자서 정리한 내용이라 사실과 다를 수 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렇다.


  아이의 키가 반에서 두 번째로 작다는 것, 친한 친구와 머리 하나 차이가 난다는 것, 시어머니에게 아이 키 주사를 맞히라고 계속 전화가 온다는 것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정리하고 이해한 내용을 설명했다. 세상만사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남편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시댁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뼈 나이 검사는 한 번 받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돕고, 지금 아이가 부족함 없이 잘 자라고 있는지 한 번쯤 확인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가 건강검진을 하는 것처럼 너도 때가 되어서 한 번 해보는 거라고 말해두었다.


  뼈 나이 검사는 보통 왼쪽 손 x-ray를 통해 판별한다. 진단의 마다 견해 차이가 조금씩 있어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판별을 받아 보라는 조언이 많았다. 나는 성장클리닉이 있는 대학 병원에 예약을 했는데 가장 빠른 진료일이 6개월 뒤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 상담을 받고 왔다.


  대학 병원 성장 클리닉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이 많았다. 예약을 하고 갔음에도 서류 작성과 수납, 대기 등으로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아이를 진료한 교수님은 젊은 분이셨는데 마스크 속에서 크고 정확한 발음으로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다. 뒤돌아서면 까먹는 까마귀 기억력 상태라 해주시는 말씀을 빠지지 않고 받아 적기 위해 노력했다. 앞에서는 긴장하고 내 멋대로 판단하다 보면 나중에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기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 조숙증의 경우 여아는 가슴의 몽우리, 남아는 고환의 크기로 판단한다. 내 아이의 경우, 사춘기가 오지 않았으며 나이에 맞는 상태라고 하셨다. 아이의 성장 기록과 상태를 보시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잘 자라고 있다고 하셨다. 평균이란 건 말 그대로 평균이라, 절반은 평균 이하이고 절반은 평균 이상이라 별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뼈 나이에 따라, 뼈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어리면 아빠 보다 더 크고, 같으면 아빠만큼 자라고, 많으면 아빠 키 보다 조금 작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정도는 아이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전혀 지장이 없다고 했다. 오늘 하는 검사들은 아이의 뼈 나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정확히 측정해 보고 건강 상태를 확인해 보는 건강 검진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정상 발육 중인 우리 아이는 건강 보험도, 실비 보험도 되지 않는 말 그대로 엑스레이, 피검사, 소변 검사라는 건강 검진으로 적지 않은 금액과 시간을 쏟고 왔다.


  아이가 특별히 아프지 않고 즐겁게 자라고 있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늘 아이를 향한 고민과 걱정이 멈추지 않고 그 예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병원 검진으로 고생한 아이를 위해 끝나고 키즈 카페에 갔다. 아이는 신나서 대형 트램펄린을 한 시간 넘게 뛰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옆돌기를 스무 바퀴도 넘게 연달아 돌고, 집라인을 타며 날아다니고, 자석 낚시놀이로 장난감 물고기를 두 바구니나 잡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 골대에 공을 넣고, 실내 암벽을 타고 오르며 열정을 쏟았다. 얼굴이 벌게져 물을 들이켜는 아이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잘 뛰고 잘 노는 아이가 뭐가 걱정이라고 가서 피를 세 통이나 뽑게 했을까? 의사의 말대로 골고루 잘 먹고 밤에 깨지 않고 잘 자고 햇빛을 쬐며 뛰어놀면 아이는 자라는 걸 텐데. 오늘의 검진은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내 불안의 불씨를 잠재우는 행위였단 걸 깨달았다. 내가 걱정에 눈이 멀어 엄한 데를 짚을 때마다 아이는 맑은 눈을 말똥말똥 뜨며 내 손을 잡아 끈다. 엄마 내가 여기 있어요, 엄마 걱정하지 말아요. 키즈 카페를 나오며 아이에게 마음을 전했다.


  "동동아. 네가 이렇게 잘 자라고 있는데 엄마가 걱정되는 마음에 괜히 하루종일 병원에서 검사받게 해서 미안해. 의사 선생님 말대로 지금처럼 잘 먹고 잘 자고 잘 먹으면서 지내자."


  아이는 피곤한지 벽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피 뽑는 건 처음 해봐서 너무 무섭긴 했는데, 하루종일 엄마랑 둘이 있어서 좋았어. 키즈카페도 진짜 재밌었어. 젤리도 두 개나 받았으니까 하나는 엄마 아빠가 먹고, 하나는 나랑 동생이랑 나눠 먹을게. 동생이랑 여기 꼭 다시 오자. 엄청 좋아할 거 같아. 친구들한테 나 피 세 통이나 뽑았다고 말해줘야겠다."

  아들은 수다쟁이가 되어 조잘거리며 말을 잇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키즈카페

  아직 검진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큰 걱정이 되지 않는 마음이 대부분이다. 간혹 조금씩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 때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왜 자꾸 사서 걱정하는 엄마가 되려 하는 걸까? 아이가 오늘 방학식을 하며 한 학기 생활기록부를 가지고 왔다. 선생님이 써주신 아이의 학교 생활 기록을 보며 고마움과 뭉클함이 피어난다.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인 토마스 고든(Thomas Gordon)은 부모 역할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방을 메고 늦지 않게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사귀고, 선생님의 지도에 따르고, 학습을 하고, 방과 후 수업을 듣고, 사범님께 태권도까지 배우고 집에 오는 대견한 아이. 삶을 건실하게 쌓아 올리며 성장하는 너처럼, 나도 엄마의 삶을 짊어지고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고 싶다.


아이의 한 학기 생활기록부. 좋은 말만 써주셨겠지만 엄마가 없는 곳에서 아이가 애면글면 자기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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