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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Oct 20. 2023

아이가 다쳤다

친구가 밀어서 다친 아이의 입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아이가 다쳤다. 퍼렇게 부은 입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잇자국을 따라 입술이 찢겨나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처에선 물티슈를 붉게 물들이는 액체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아이의 눈물과 땀, 콧물은 내 품속에서 범벅이 되고 아이의 입술에선 내 심장처럼 빨간 액체가 고통을 토해낸다. 물티슈 한 장으로 모자라 물티슈 한 장을 더 꺼내든다. 아이는 내 눈을 바라보며 울분을 발산한다. 꺼이꺼이 숨찬 울음을 내뱉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한다.


  둘째 꽃동이네 반에는 외국 아이들이 절반이다. 인근 대기업에 근무하는 아빠를 따라 한국에 온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국적을 떠나 성향대로 놀이를 하고 또래 집단을 형성한다. 외국 아이들 중에는 한국말을 잘하는 아이도 있고 전혀 못하는 아이도 있는데 별 상관은 없어 보인다. 그 아이들은 모국어와 한국어 이중 언어를 사용하고, 부모의 국적이 다를 경우 3개 국어를 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하원 후에도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 삼삼오오 모여 논다. 오늘은 네 살 반 아이들이 여섯 명 모였다. 그중 세 명이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아이들인데 국적이 큰 의미는 없다. 모래와 나뭇잎으로 소꿉놀이를 하고, 그네와 미끄럼틀을 타고 괴물놀이를 하며 뛰어다닌다. 엄마가 가져온 간식을 다 같이 나눠먹고 찬바람이 부는 시간이 와도 엄마들만 오들오들 떨 뿐,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얼굴이 빨갛게 익는다.


  평소와 다름없는 이 그림에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오늘은 새로운 아이가 왔다는 사실이다. 몇 달 전부터 등원을 시작한 재외 동포의 자녀인데 부모는 한국말을 잘했지만, 아이는 전혀 하지 못했다. 이전에도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아이가 있었지만 스스럼없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고 그러면서 한국말을 배웠기에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달랐다. 처음 온 날부터 다른 아이들의 장난감을 힘으로 빼앗았고 화가 나면 자신의 무릎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큰 소리를 지르며 교실 안 장난감이나 교구들을 마구 집어던졌다. 그 아이가 던진 장난감 자동차에 맞아 이마가 패인 여자 아이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체격과 목소리도 커서 아이들은 그 친구가 오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내주고 자리를 피했다. 이 사실에 대해 담임교사와 원장님은 어머니께 전달하고 가정에서도 교육을 해달라 요청했지만, 이 어머니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소리 지르며 복도에서 뛰어다녀서 선생님이 큰 소리로 하지 말라고 하고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는데 아동 학대 아닌가요? 우리 아이가 외국인이라고 다른 친구들이 잘 놀아주지도 않고 다른 어머니들이 놀이터에서 우리를 환영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어린이집을 그만둘까 고민 중입니다."


  세상엔 다양한 성격과 국적의 사람들이 있지만, 국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 소양의 문제도 문화마다 다른 것일까? 나도 다른 나라에 가면 외국인이기에 그런 피해의식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아이가 너무 귀해서 도저히 훈육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재외동포긴 해도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스트레스가 크지 않을까 여러 추측을 해보았다. 하지만 내 작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두가 동등한 놀이터에서 웃는 얼굴로 서로 인사하고 먹을 것을 나눠 먹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것이 환대가 아니면 무엇일까? 그분이 다른 부모들에게 어떠한 환영을 바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바로 내 아이에게도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동안은 장난감을 뺏기거나 밀치거나 놀이를 방해받는 수준이었는데 크게 다치고 만 것이다. 꽃을 좋아해서 꽃만 보면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하는 내 아이, 꽃동이를 주먹을 쥔 그 아이가 쫓아다녔다. 주먹 아이는 꽃동이를 잡아당기거나 밀었고, 꽃동이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꽃동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괴물놀이를 하는 거라며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주먹아이는 한국말로 소통이 전혀 안 됐고 정말 놀이인지 의문이 들었다.

  꽃동이는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계단을 올라 구름다리를 지났다. 그때, 뒤에서 쫓아오던 주먹 아이가 꽃동이를 밀었고 꽃동이는 그대로 넘어졌다. 당시 구름다리에는 주먹 아이의 동생이 있었는데 꽃동이가 넘어지면서 동생도 넘어졌다. 다시 일어난 꽃동이를 주먹 아이가 또다시 잡아당기며 밀었고 꽃동이는 그대로 머리부터 미끄럼틀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꽃동이 위에는 주먹 아이가 엉덩이를 댄 채 함께 밀려 내려왔다. 미끄럼틀과 자신의 치아에 부딪히며 쓸린 꽃동이 입술이 찢어졌다. 찢어진 입술은 퉁퉁 부어오르며 피가 철철 흘렀다. 얼른 꽃동이를 안고 달래는데 주먹 아이와 어머니가 왔다. 어머니는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았는데, 분위기가 주먹 아이와 연관이 있어 보이자 주먹 아이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따라 하게 시켰다. 주먹 아이는 그 말의 뜻도 알지 못하면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꽃동이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고개를 돌려 내 품에 파고들었다.


  치아가 흔들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입술이 조금 터져서 피가 나는 거라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토닥였다. 하지만 흘러내리던 피에 투명한 액체가 함께 섞여 나오기 시작했고 지혈이 잘 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아이 상처를 치료해 주는 성형외과가 거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주변 지역의 다친 아이들이 모두 몰려오는 병원으로 갔다. 긴 대기 끝에 진료를 보니, 아이 상처가 크고 깊다고 했다. 조금 있으면 진물이 차고 고름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셨다. 꽃동이는 약을 바르고 오메가 광선 치료를 받았다. 4시간마다 먹어야 하는 냉장보관용 약도 처방받았고, 앞으로도 매일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염증이 터지거나 찢어진 상처가 더 벌어지거나 예휴가 좋지 않으면 입술을 꿰매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올해 2월에 턱을 꿰매고 아직도 흉터 치료를 다니고 있는데, 또 입술을 꿰맬지도 모른다는 말에 정신이 무너져 내렸다. 마음에 박힌 말뚝 하나가 가슴을 도려내고, 흘러내리지 못하는 눈물이 목 안에 갇혀 숨이 막혔다. 턱을 꿰맬 때, 수술실에서 보았던 미라처럼 감긴 아이의 몸과 "살려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쉬지 않고 외치던 아이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되살아 났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심장이 쿵쾅거려 잠이 오지 않는데, 더군다나 입술이라니. 아이의 벌어진 입술로 들어갈 날카로운 바늘과 실, 가위가 떠올라 몸이 후들거렸다. 다시 매일같이 다녀야 하는 엄청난 인파의 병원 진료도, 4시간마다 먹여야 하는 약도, 꿰매야 할지도 모를 불안한 예후도 모두 나의 몫이기에 눈앞이 캄캄했다. 의사는 힘주어 강조했다. "엄마가 하기 나름이에요."


4시간마다 먹어야 하는 약. 아이스팩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먹인다.



  엄마가 하기 나름이다. 나는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아이의 턱에 흉터 재생 연고를 발라주고 몇 시간마다 선크림으로 자외선을 차단해 준다. 자기 전에는 작게 자른 실리콘 밴드를 붙여준다. 이제야 매일 가던 병원을 3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다니다가 격주에 한 번으로 늘어났는데 다시 매일 가야 한다. 당연히 턱 흉터 치료는 뒤로 밀려났다. 아이가 입술이 아프다고 계속 통증을 호소했다. 물을 마실 때도, 양치를 하거나 밥을 먹을 때도, 자려고 옆으로 누웠을 때도 편하게 지내지 못했다. 내가 그때 주먹 아이와 떼놓았다면, 놀이터에서 놀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도 없이 후회했다. 어린이집에 이 사실을 알리니, 어린이집 방과 후에 일어난 일이라 보험처리는 어렵고 주먹 아이 어머니와 전화 연결을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주먹 아이 어머니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바라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를 탓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리고, 어머니를 탓하기엔 한국 생활이 익숙지 않아 왕따 당할까 두렵다는 말이 생각났다. 결국 내 아이가 다친 일이기에 어쨌든 나의 몫이고 내가 좀 더 바짝 붙어서 잘 돌보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었다. 어린이집 원장님을 통해 더 이상 주먹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다치게 하지 않게 철저한 교육과 아이를 위한 한국어 교육을 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리고 꽃동이에겐 진심으로 사과해 주면 충분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주먹 아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과하려고 어려운 전화를 걸었나 보다 짐작하고 상냥하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 주셔서 고맙다고 전했다. 그런데 주먹 아이 어머니는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우리 둘째도 다쳤어요. 꽃동이가 손을 뻗어서 동생을 밀쳐서 넘어지게 했어요.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그런데 사과도 안 하고 그냥 갔어요. 우리 둘째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혀서 울었는데 알면서 그런 것 같더라고요. 둘째가 머리가 벌게져서 어린 게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얼마나 아팠겠어요."


  주먹 아이 어머니는 막장 드라마 같은 대사를 읊었다. 어떻게 자기 아이 아픈 건 속상해하면서 다른 아이가 다친 건 안중에도 없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상황을 제대로 모르나 싶어 내가 대답했다.

  "그러셨군요. 둘째 머리가 넘어져서 다친 줄 몰랐어요. 진짜 아프고 속상하셨겠어요. 그런데 저희 꽃동이가 일부러 넘어지라고 민 게 아니라, 주먹 아이가 꽃동이를 밀어서 넘어졌어요. 그전부터 꽃동이가 주먹 아이에게 쫓기고 있었고요. 다른 어머니도 이 상황을 보셨고, 꽃동이와 그 어머니가 말하는 게 일치해요. 원장님이 CCTV까지 확인하셨대요."


  그러자 주먹 아이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내가 봤어요. 우리 아이는 말할 때마다 다르게 말하고 횡설수설해서 모르겠고, 꽃동이는 분명 일부러 동생을 손으로 건드려서 넘어뜨렸어요."


  주먹 아이 어머니는 사과하려고 전화한 게 아니라 사과를 받으려고 전화한 거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꽃동이가 다친 건 미안한데 어쩌겠어요. 요즘 애들이 왜 이렇게 서로 밀어 당기고 드세게 노는지, 애들 노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나는 이건 아니다 싶어서 상황을 다시 정확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그런데 요즘 아이들 그렇게 놀지 않아요. 밀고 잡아당기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하고, 아무리 어려도 다른 친구를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워야 해요."


  그러자 그 어머니가 말을 빼앗듯이 이었다.

  "충분히 집에서 그러고 있어요. 그러니까 꽃동이도 집에서 동생 다치게 하지 말라고 가르쳐야죠. 지금 병원에서는 무슨 치료받아요? 연고 발라요? 얼마예요? 수술 안 하면 좋겠지만 만약에 하게 되면 제가 50% 댈 테니까 말씀하세요. 우리 둘째도 머리 다쳐서 얼마나 아파하는지, 제가 볼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파요.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어요. 앞으로 서로 웃으면서 인사도 잘하고 놀이터에서 보면 반갑게 잘 놀아요."


  주먹 아이 어머니와 말을 할수록 깨달았다. 이 분은 나에게 사과를 받으려고 전화를 했다는 것과 사실 관계에 아무 상관없이 자기 입장만 합리화하기 바쁘다는 것이다. 보통은 다른 친구를 내 아이가 다치게 하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납작 엎드려 사과를 구한다. 내 아이를 위해서 보호자로서 책임을 진다. 어떤 보호자가 마치 보험 사정사처럼, 내 아이가 잘못했으나 그쪽도 내 아이를 넘어뜨렸으니 50%의 치료비를 내겠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자신의 아이가 밀고 잡아당기며 애초에 모든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말이다.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는 이런 것이었다.

주먹 아이 어머니 : "꽃동이를 다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치료비라도 드릴게요."

나 :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리니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치료비는 안 주셔도 됩니다. 괜찮아요."

  예상을 뒤집는 주먹 아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대로 통화가 더 지속되다간 싸움 밖에 안 되겠다 싶었다. 십 여분 간의 통화로 전화가 끝났지만 긴 여운이 남았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불리는 <리어왕>은 늙은 왕 리어와 그의 세 딸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다. 리어 왕은 나이가 들어 딸들에게 국토를 나누어주기 위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묻는다. 딸 고너릴과 리간은 과장하여 입에 발린 말을, 막내딸 코딜리아는 진실한 대답만을 한다. 그러자 리어왕은 코딜리아를 프랑스 왕에게 추방시키듯 시집보내고 다른 두 딸에게만 국토를 나누어 준다. 재산을 차지한 두 딸은 아버지를 냉대하고 쫓아낼 계략을 세운다. 코딜리아가 프랑스 왕에게 시집가고, 재산을 모두 차지한 두 딸이 아버지 리어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고너릴 : 동생. 우리 둘과 직접 관련되는 일로 내가 해야 될 말이 적지 않아. 내 생각에 우리 아버진 오늘 저녁 여기를 떠날 거야.


리간 : 그건 아주 분명해. 언니와 함께 가지. 다음 달엔 우리와 함께 가고.


고너릴 : 늙은이 변덕이 얼마나 심한지 봤지. 우리가 그걸 관찰한 것만 해도 적지 않아. 아버지는 언제나 동생을 가장 사랑했어. 그런데 이제 얼마나 서투른 판단력으로 걔를 내쫓았는지가 너무 빤히 드러났어.


리간 : 늙어서 망령이 든 거야. 하기는, 전에도 아버지는 자신을 조금밖에 알지 못했어.


고너릴 : 최고로 건강했던 시절에도 아버지는 성급하기만 했지. 그러니까 그의 노년에 우리는 오랫동안 몸에 밴 기질상의 결함뿐만 아니라 여러 해에 걸친 허약함과 목마름 때문에 생기는 완고한 변덕까지도 예상해야지 돼.


리간 : 켄트 추방과 같은 갑작스러운 발작증을 우리에게도 보일 것 같다.


고너릴 : 그와 프랑스 왕 사이에 작별 인사가 더 있어. 부탁인데, 우리 같이 움직이자. 우리 아버지가 지금 성미 그대로 권한을 행사하고 다닌다면, 최근에 그걸 포기한 건 우리에게 해가 될 뿐이야.


리간 : 그건 좀 더 생각해 보자.


고너릴 : 우린 뭔가 해야 돼. 단김에 말이다.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받은 두 딸은 아버지를 쫓아내고 모함한다. 리어왕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를 헤매다 광란(狂亂)한다. 주먹 아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리어왕의 심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리어왕이 감언이설을 사랑으로 착각하긴 했지만, 딸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심이었을 텐데 그 대가로 냉대만을 받았으니 말이다. 주먹 아이 어머니는 타인이 베푸는 배려와 친절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더 받길 원하고, 자신과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사람인가 보다. 자신의 어린 자녀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양보받길 원하는 주먹 아이 어머니께, 성형외과 의사에게 들은 말을 전해주고 싶다. "엄마가 하기 나름이에요"


  주먹 아이 어머니에게 결국 내가 사과하고 끝이 나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사정을 털어놓으니 엄마는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씀을 반복하신다.

  "잘했어. 사과하고 그냥 빨리 끝내는 게 나아. 배고플 텐데 저녁 어서 먹고, 예부터 어른들이 말씀하시잖니. 아이랑 짐승 키우는 사람들은 눈, 코만 빠지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아이고, 순딩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도 애 키우는 사람은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해. 내 애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싸우지 말고 좋게 넘어가."

  엄마의 조언대로 오늘 한 명의 적을 만들지 않고 넘어갔다. 덕분에 다시 내면에 평화를 얻었고 타인의 언행으로부터 견고한 성벽을 쌓은 기분이다. 20세기 독일의 대표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젊은 습작 시인에게 쓴 편지를 보며 마음에 위안을 더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당신에게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당신의 가슴 속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고 대하라는 것과 그 문제들 자체를 굳게 닫힌 방이나 지극히 낯선 말로 적힌 책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당신은 당신의 가슴 속에 삶을 특별히 행복하고 순수하게 짓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쪽을 향해 매진하십시오. 그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커다란 신뢰로 맞아들이도록 하세요. 그것들이 당신의 의지에서 나올 때, 즉 당신의 내면의 어떤 욕구에서 나올 때에는 그것들을 미워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   _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떨어진 꽃잎을 모으며 꽃동이가 말한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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