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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Oct 13. 2023

학부모 공개수업이 겹친 날

엄마를 반으로 가르거라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10월은, 5월만큼이나 바쁜 달이다. 명절과 현장체험학습, 공개수업, 각종 대회들이 즐비한 달이기 때문이다. 연휴도 많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무얼 할지 고민도 필요하다. 아홉 살 첫째와 네 살 둘째를 키우는 나도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첫째는 독서 골든벨을 다녀온 뒤 태권도 격파 대회를 준비하고 있고, 둘째는 이번달에 현장학습만 세 번 가는 데다 부모참여 수업이 있다. 현장학습이야 맛있는 것만 싸 보내면 되니 그리 부담이 되진 않는데 문제는 부모참여 수업이다. 첫째와 둘째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공개수업이 잡힌 것이다. 게다가 공개수업에는 다들 멋지게 차려입고 올 텐데, 둘째의 어린이집에서는 체육 활동이 있으니 편한 옷차림으로 오라고 신신당부를 해둔 터이다. 둘 중 한 명에게로 가자니 다른 아이가 마음에 걸린다. 아빠는 휴가를 낼 수 없어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데, 둘 다 엄마가 꼭 필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의 학교는 코로나 때문에 공개수업도 줌으로 하다가 처음 현장에서 수업을 참관하는 해이다. 첫째의 교실과 수업 태도도 궁금한 데다가 공개수업에 부모들이 전원 참석하는 분위기라서 빠지기가 어렵다. 다들 부모님이 와서 보는데 자기만 안 오면 첫째의 마음이 오죽할까 싶어 걱정이다.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하는 부모참여 행사라서 보호자가 없으면 아예 참여를 못한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하는 행사라니. 여러 방안을 생각하다가 결국 내 몸을 반으로 가르기로 했다. "엄마가 반반 참여할게!"


  첫째와 둘째를 따로 불러 너를 더 생각한다며 설득했다.

  "첫둥아, 네가 첫둥이니까 엄마가 너에게 먼저 갈 거야. 수업하는 거 열심히 보고 조금만 먼저 나갈게. 첫둥이는 엄마가 안 봐도 정말 잘하겠지만 엄마가 보고 싶어서 갈게."

  첫째는 자기가 첫둥이라서 엄마가 먼저 자기에게 온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막둥아, 선생님이랑 먼저 공연 보고 있으면 엄마가 꽃꽂이하기 전에 갈게. 막둥이는 멋진 어린이니까 씩씩하게 있으면 엄마가 금방 갈 거야."

  둘째는 그저 엄마가 어린이집에 같이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나 보였다.


 어떤 장소에서도 무난하도록 옷도 반반 입었다. 위에는 블라우스와 조끼를, 밑에는 청바지를 입은 것이다. 신발을 두 켤레 챙겨가서 첫째 학교에선 단화를, 둘째 어린이집에서는 운동화를 신었다. 나중에 보니 대부분 비슷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많았다. 둘째 어린이집은 행사 시간에 맞춰 보호자와 함께 등원해야 했지만,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조금 일찍 등원을 시켰다. 둘째를 보내고 바로 첫째의 학교로 가서 공개수업에 참여했다. 첫째는 곁눈질로 내 위치를 확인하곤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이 30명이니 부모들은 30명이 넘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여 아이들의 교실을 빙 둘러쌌다. 교실 뒷 공간이 모자라 옆쪽으로까지 U자로 보호자들이 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이 대단해 보였다. 나였다면 머리가 지끈거릴 대답이나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수업을 이어나갔다. 대부분 아이들은 미숙해도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지만 몇몇 아이들은 웃기고 싶어서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얼굴을 가리는 부모를 보며 그 아이의 부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엄마를 보며 미소로 화답했다. '그 마음 이해해요. 다 똑같으니 걱정 마세요'라는 마음을 담아서.


  첫째는 열심히 손을 들고 발표했고 그 모습이 대견했다. 그러다 다른 친구가 웃긴 발표를 했는데 첫째가 물을 마시다 웃느라 그만 물을 흘리고 말았다. 첫째가 어떻게 해결할까? 걱정스레 쳐다보니 너무도 자신 있게 양팔 소매로 책상을 훔치고 있었다. 첫째의 옷 덕분에 연필 자국으로 까맸던 책상은 반들반들 빛이 났다. 사물함에 휴지가 있을 텐데 어떻게 자신의 옷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닦을 수 있는 것인가. 첫째에게 휴지를 갖다 주려던 선생님이 도착하기도 전에 첫째의 연두색 티는 초록색으로 물들어갔다. 첫째는 책상 전체를 자신의 두 팔로 휘저으며 쓱쓱 야무지게 닦아냈다. 나는 아까 얼굴을 가리던 부모가 되어 부끄러움에 움츠러들었다. 옷소매로 책상을 닦은 건 아이인데, 왜 부끄러움은 부모의 몫일까. 옆자리에 있던 엄마들이 아까 나와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에휴, 그 마음 이해해요. 우리 애도 똑같아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한강에서 뛰어놀기



  첫째의 수업이 진행될수록 둘째 생각이 났다. 한창 인형극을 보고 있을 텐데 엄마 없이 잘 있을까, 어둡고 큰 소리가 나면 무서워하는데 괜찮을까? 그렇다고 둘째에게 가자니 첫째의 수시로 확인하는 눈동자가 마음에 걸렸다. 저절로 '우산장수, 소금장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어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한 아들은 소금을 팔았고, 또 다른 아들은 우산을 팔았다. 그런데 날마다 이 어머니는 곡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이웃 사람이 가서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날이 좋으면 우산 장수 아들이 우산을 못팔테니 슬프고, 비가 오면 소금 장수 아들이 소금을 못팔테니 웁니다"하고 대답했다는 동화이다. 두 아이를 생각나며 발을 동동 구르니 내 모습이 영락없는 그 어머니 모습 같았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지금 보고 있는 이 아이에게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날의 공개수업이 전부가 아니라 평소에 내가 애정하고 품어주던 그 사랑이 이 아이들을 채워줄 것이다. 내가 다 채워주지 못하는 빈 공간에 그만큼의 성장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둘째에게 가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자 다시 전속력으로 달렸다. 평소에는 걸어서 이동하는 거리지만 시간이 촉박해 차를 탔다. 어린이집 앞이 평소와 달리 부모들의 차로 가득해서 주차하는데 시간이 지체되었다. 둘째는 어둠 속에서 빛을 이용한 인형극을 보고 있었다. 다들 부모의 품에 안겨서 보는데 실습 선생님과 보고 있는 둘째가 대견했다. 뒤로 다가가 둘째를 안으니, 뒤를 살짝 돌아보고는 나인걸 확인하고 크게 소리쳤다. "우리 엄마 왔어요! 나도 엄마 왔어요! 얘들아 내 엄마 왔어!"


  어린이집에서 아이와 함께 꽃꽂이와 에어 사다리 옮기기 시합을 했다. 틈틈이 간식도 먹고 오감수업으로 악기연주와 가을 곡식 수확놀이를 했다. 둘째는 엄마가 어린이집에 온 게 신나서 거의 날아다녔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공개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에 오자 정신이 몽롱했다. 지쳐서 얼른 눕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준비하는 사람도 아니고, 무리하게 뭘 하고 온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한 번 가는 학교와 어린이집도 이렇게 피곤한데 매일 등교하는 아이들이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무조건 잘했다고 칭찬해 줘야지, 빠지지 않고 학교와 어린이집에 가는 사실만으로도 참 대단하구나! 매일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회사로, 집으로 출근하는 모두가 참 대단하다!

둘째가 만든 꽃바구니


"나의 일기가 나의 사랑이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나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세계,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만 일기에 적고 싶다."

헨리 D. 소로우 <소로우의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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