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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May 06. 2023

어린이날 뭐 할래? 벌레 잡을래!

참되고 씩씩하며 서로 사랑하는 어린이날

  어린이날을 앞두고 많은 부모는 고민에 빠진다. 어떤 선물을 해줄까, 어디로 놀러 갈까? 어린이날을 앞두고 놀이터에서 아이 친구들과 만났다. 엄마들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어린이날 선물’로 향했다.

“이번에 뭐 준비하셨어요?”

“우리 애는 팽이 사달래요.”

“아. 팽이는 크리스마스에 이미 사줬는데. 우리 애는 닌텐도 사달래요.”

“너무 비싸네요. 하긴 다른 애는 최신 폰 사달라고 했대요.”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배포가 참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린이날이 어떤 날인가 다시금 떠올려본다.


  어린이날은 1923년 방정환을 포함한 일본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지정된 날이다.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1919년 이후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이유가 컸다. 특히 방정환은 어린이가 독립된 인격체임을 강조했다. 어린이날은 아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돕기 위한 날이다. 방정환이 첫 번째 어린이날 행사에서 말한 대로 어린이들이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되기를, 서로 사랑하며 도와주기를” 이끄는 날인 것이다. 이러한 뜻과 선물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어린이날에 선물을 사주면 씩씩하고 올바른 아이, 서로 돕고 사랑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을까?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 말고도 다양한 동화를 지었다. 그중 <진정한 친구>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휴’와 ‘한스’는 사람의 심리와 인간관계에 의문을 남기는 인물이다. 가난한 ’한스‘는 친절한 마음과 행복한 얼굴로 자신의 정원을 돌본다. 한스의 부자 친구 ‘휴’는 “진정한 친구라면 서로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해”하고 말하며 한스의 정원을 지날 때마다 꽃과 과일을 가져간다. 한편 한스는 빵 살 돈이 없어 집 안의 물품을 내다 팔면서 춥고 외로운 겨울을 보낸다. 휴는 한스에게 자신의 부서진 손수레를 주겠다며, 한스에게 과한 요구들을 한다. 한스는 어리석게도 휴에게 고마워하며 노동력과 가진 모든 것들을 착취당한다. 끝내는 생명까지 말이다.

  한스와 휴 사이에는 ‘선물’이란 매개체가 등장한다. 휴가 한스의 정원에서 가져가는 꽃, 과일, 그의 노동력과 음식은 모두 ‘선물’로 통칭된다. 한스는 아무리 선물을 많이 받아도 좋은 친구가 되지도,  선량한 사람으로 변화하지도 않는다. 선물은 한스의 욕망을 한순간 충족시켜 줄 뿐 그의 인생에 큰 보탬이 되진 않는다. 스스로 내면의 평화는 지켰지만, 한스가 말하는 대로 움직이고 그의 요구를 충족시키느라 바빴던 휴에게도 ‘선물’은 빼앗김의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어린이날, 어린이에게 선물을 줄 수는 있겠지만 선물이 전부는 아니다. 어린이가 어린이 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좋아하는 일이 끝도 없이 생각나고, 방바닥에 엉덩이 붙일새 없이 에너지를 분출하며 유치하고 즐거워야 한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는 어린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작년 어린이날에 우린 곤충 탐사를 갔다. 장소는 먼 숲 속이 아니라 매일 다니는 집 앞 공원이었다.

“어린이날 어떻게 보내고 싶어? 받고 싶은 선물이나 가고 싶은 데 있어?“

아이에게 묻자, 아이는 놀이공원이나 비싼 선물을 말하지 않았다.

“벌레 잡으러 갈래! 벌레가 어디 있는지 내가 잘 알아.“

  어렸을 때부터 곤충과 동물을 좋아하던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벌레만 보면 가던 길을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아이가 마음껏 곤충을 탐구하도록 도왔다. 다양한 곤충 책과 채집 도구를 마련해 주고, TV채널에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추가했다. 궁금해하는 건 검색해서 알려주고 자신의 세상에 푹 빠질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이번에 아이가 잡고 싶어 하는 벌레는 공벌레였다. 공벌레의 습성을 따라 공원의 어둡고 습한 구석을 찾아다니며 채집을 했다. 모래놀이 통에 흙과 젖은 나뭇잎, 돌멩이 조금을 넣고 공벌레를 이주시켰다. 아이는 공벌레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며 두 손을 번쩍 들어 통을 머리 위에 올리고 걸었다.


“이렇게 하면 공벌레가 너무 높아서 무서워서 못 나올 거야.”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아, 그렇구나. 공벌레가 자기 크기에 비하면 너무 높아서 나올 엄두도 못하겠다.”


  벌레 잡기의 끝은 달팽이, 지렁이, 공벌레, 하늘소의 달리기 경주로 끝이 났다. 어떤 벌레가 가장 먼저 저 끝까지 가는지 본다며 한 곳에 풀어놓고 이탈하는 걸 지켜보았다.

  내세울 것 없는 어린이날이었지만 아이는 행복을 만끽했다. 부지런히 뛰고 땀을 흘리며 성취감을 누렸다.

어린이날, 김밥 싸들고 집 앞 공원에 벌레 잡으러 간다.


  오스카 와일드의 또 다른 동화 <욕심쟁이 거인>에는 거인과 아이들이 등장한다. 거인의 정원에는 달콤한 열매와 아름다운 꽃이 자랐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어느 날 거인은 제멋대로인 아이들이 귀찮고 성가셔서 정원 밖으로 쫓아낸다. 거인은 자신의 정원을 독차지하지만 정원은 생기를 잃고 끝없는 겨울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없는 세상은 꽃이 피지도, 열매가 열리지도 않았다. 어디 우화 속 이야기일 뿐일까? 아이들이 미숙하다고 어른의 세계에서 추방하거나 억압하려 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꽃을 충분히 피우지 못하게 된다.


  잘 가꾸어진 정원을 지키겠다고 아이들을 몰아내서도 안되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정원에서 스스로를 몰아내게 두어서도 안 된다. “너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이런 걸 하니?”, “누구네는 이미 뭘 하고 있다더라”. 내가 듣기 싫은 말은 아이도 듣기 싫어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매일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아침 일찍 두 눈을 번쩍 뜨도록 어른들이 충분히 도울 수 있다.

  한 해 한 해 어린이날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참되고 씩씩하며 서로 돕고 사랑하는 어린이가 많아지길 꿈꾼다.


저녁에는 지구를 위해 쓰레기를 줍고 싶다며 킥보드를 타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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