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돋을볕 Apr 16. 2023

친밀하고 부담스런 엄마 모임

아이의 탄생과 함께 처음 만난 세계

아이의 탄생과 함께 처음 만난 세계가 있다. 바로 엄마들의 모임이다. 아이를 낳은 뒤 갔던 산후조리원에서 하루이틀 차이로 출산을 경험한 여성들을 만났다. 아이를 자연분만하면 2박 3일, 제왕절개하면 일주일 정도 산부인과에 있다가 대부분 산후조리원으로 간다. 대게 2주일 머무는 것이 기본이다. 아이를 낳은 뒤 바로 집으로 가면 넘치는 집안일과 신생아에 대한 전무한 지식, 출산 후 회복되지 못한 몸 상태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비싼 돈을 주고라도 산후조리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처음 아이의 친구가 생기고 엄마도 육아 동지를 만나게 된다. 여러 군데를 방문하며 예약해 둔 산후조리원에서 나는 신기한 일들을 많이 경험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아이의 출생 연도가 같다는 이유로 친구가 되는 것이다. 고3 시절을 함께 보낸 뜨거운 동지처럼, 가장 초췌하고 힘들고 괴로운 고비를 넘긴 엄마들은 수유실에서 금세 친구가 된다. 아기 돌보는 법부터 아기 이름 짓기, 시댁과의 갈등, 남편과의 관계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게 된다. 새벽에 뜬 눈으로 꾸벅꾸벅 졸아가며 수유를 하다가도 동지가 있단 생각에 혼자가 아님을 실감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땐 암암리에 지정석이 있었다. 학창 시절 소풍 갈 때 뒷자리를 점유했던 친구들처럼 기가 센 엄마들의 무리부터, 조용한 엄마들의 무리까지 다양한 무리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 모임이 그대로 이어져 산후조리원을 나온 이후에도 조리원 동기 모임, 일명 '조동 모임'이 생긴다.


  내가 경험한 조동 모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리니 대부분 서로의 집에서 돌아가며 모였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집안 상황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비교가 시작되었다. 아기 물품부터 육아 용품, 전집까지 공동구매가 이루어졌고 점차 사교육에 대한 정보로 확대되었다. 시댁의 재력과 남편의 능력, 아기 발달 정도 등 마음을 어지럽히는 이야기들에 마음이 무거웠다. 무리 내에서도 더 친한 사람과 덜 친한 사람으로 나뉘고 뒷말이 돌기도 했다. 이 모임을 포기해도 될까, 고민이 되었지만 결국 모임에서 제일 먼저 나왔다. 필요한 정보는 산부인과 육아 상담실과 육아 서적, 친한 언니들의 도움을 받았다. 모임을 나오자 시간도 여유롭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선물 받은 타이완 블랙티. 혼자 차 마시는 행복한 시간


  두 번째 경험한 엄마 모임은 어린이집에서 생겼다.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하원 시간이 비슷한 엄마들끼리 자연스레 놀이터 모임이 생겼다.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육아 고충을 나누며 친구가 되었다. 이 모임은 이사를 가거나 기관을 옮기거나 졸업을 하면서 점차 관계가 옅어졌다.


  지금, 세 번째 엄마들의 모임을 경험 중이다. 지금까지 접한 모임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학부모 모임이다. 이제는 아이의 성별과 다니는 학원, 엄마의 전업 여부, 부모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모임이 결성되었다 사라지고, 친해졌다 멀어지는 다양한 관계를 본다. 나는 일대일 관계를 선호하고, 소통이 잘 되는 겸손하고 정직한 엄마가 좋다. 아직 아이의 성향은 부모의 양육 태도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따뜻한 성품을 지닐 수밖에 없다. 아이가 같은 년도에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친구가 될 수는 없다. 나이가 같지 않아도 상호작용이 잘 되는 아이와 편안한 관계를 맺고 건강한 사회성을 길러 가길 바란다.


  많은 양육자들이 돈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을 보고 듣는다. 돈을 많이 내는 기관에 다니고, 돈을 많이 쓰는 장소에 가고, 아이에게 돈을 많이 쓰면 좋은 양육자가 되고 관리받는 아이인 것처럼 말한다. 돈을 많이 버는 부모가 능력 있다고 치부한다. 무료인 놀이터에 가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지만 고가의 키즈카페에 입장하면 경험을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무료인 가정 학습은 한계가 있지만, 고가의 학원에 다니면 아이가 공부를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정보를 교류하는 엄마 모임이 있다. 엄마 모임에는 대표 격인 엄마가 있고 그 규칙을 따르며 소식을 나르는 엄마들이 있다. 그 모임에 끼려면 대표 엄마의 허락과 구성원들의 투표가 있어야 하며 그 모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외부인으로 치부한다. 그 모임의 아이들끼리 친하길 바라고 학원이나 과외, 축구나 천체 관찰 모임 등을 짠다.


  엄마들의 모임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숨이 막힐 때가 더 많다. 만나면 친밀하게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집에 오면 불안하고 조급해지고 두려워진다. 내 아이만 뒤쳐지고 있는 것 같고 남편이 부족해 보이고 내가 엄마로서 자격미달이라 느껴진다. 다른 엄마들의 눈이 지켜보는 기분이 들고 아이를 더 달달 볶게 되는 것이다. 시간의 주도권을 모임에 뺏겨서 자유롭게 무언가를 하기도 힘들다. 결국 엄마들 모임을 이탈하기로 했다.


  지금 나는 특정한 모임을 하고 있지 않다. 학군지의 이단아랄까. 학원가의 외톨이랄까.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땐 육아 선배들이나 담임 선생님, 언니들의 도움을 받는다. 아이에게 축구 모임을 짜주지 못해 불안할 때도 있지만 이건 내 불안이지 아이의 필요는 아니다. 아이의 필요가 무엇인지는 다른 엄마들이 아니라 내 아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두려워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이미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발견해 가며 하루하루를 만족과 평안으로 채우길 원한다.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만큼, 엄마로서 채워줄 수 있는 만큼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다.


  "엄마, 친구들이 말하는 학원 지옥에 보내지 않아 줘서 고마워. 방과 후 수업 때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다 하게 해 주고 맛있는 것도 잔뜩 해줘서 고마워."

  아이가 말하는 메시지 속에 아이가 느끼는 사랑의 언어가 있다고 믿는다. 가기 싫은 학원엔 보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해 주고, 맛있는 음식을 통해 아이가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비싼 옷을 사주거나 엄마 모임을 통해 정보를 얻거나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어 마음껏 누리길 원한다. 물론 나는 옆에서 기본 학습을 도와주고 발달에 맞는 정보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엄마는 바쁘지만, 아이는 자기 시간을 풍성히 갖는다. 그 시간을 통해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지를 스스로 발견한다. 만들기와 코딩, 로봇 조작과 책 읽기를 사랑하는 아이. 생물을 키우며 관찰하고 요리를 좋아하는 아이. 태권도와 물놀이를 애정하는 아이. 나와 전혀 다른 이 아이를 발견해 가는 기쁨이 상당하다.

 

  김훈 작가는 나무의 생명력은 무위에서 온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식물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 밑동에서 살아있는 부분은 지름의 10 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바깥쪽이고, 그 안쪽은 대부분 생명의 기능을 소멸한 상태라고 한다 동심원의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있고, 이 중심부는 나무가 사는 일에 간여하지 않는다. 이 중심부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버티어 준다. 존재 전체가 수직으로 서지 못하면 나무는 죽는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나무의 무위가 사람의 어린 시절과 같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는 비어있는 시간, 자기 멋대로 굴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이 다울 수 있는 시간, 마음껏 움직이고 만들고 흥미로움을 따라 여러 신발을 바꿔 신어 볼 여유 말이다. 어른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무언가로 채워 넣고 싶어도 큰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무위와 적막이 필요하다. 이 적막이 아이 스스로 존재의 뼈대를 올려 세울 수 있게 도울 것이다.

아이가 지어 준 놀이터 밥상. 가운데 갈색 활엽수 낙엽은 닭다리, 나뭇가지는 젓가락이다.

  요즘엔 엄마들의 모임은 없지만 친한 엄마들을 따로 만난다. 서로 안부를 묻고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로 만난 한 개인의 만남을 지속한다. 한 아이의 엄마라는 명칭 너머에 홀로 서 있는 존재를 마주하고 서로의 온기를 전한다. 내 앞가림도 하기 힘든 세상에, 한 생명의 책임자가 되어 돌보며 지키며 살아가느라 애쓴다고 서로의 부족함에 반창고를 붙인다.

이전 04화 전업주부는 아이들이 없는 낮시간에 무얼 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