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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Apr 23. 2023

세상이 머금은 친절만큼

주말에 다섯 살 아이와 둘이 기차를 탔다.

  주말에 다섯 살 아이와 둘이 기차를 탔다. 아이는 지금껏 지하철을 칙칙폭폭으로 알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진짜 기차를 타게 되었다. 타기 전부터 신이 나서 아침부터 혼자 세수하고 로션과 선크림을 바르고 옷을 꺼내 입었다. 작은 가방에 좋아하는 자동차 장난감과 간식 몇 가지도 챙겨 넣었다. "안아달라고 안 하고, 엄마 손 잡고 내가 걸어갈 거야." 둘이 기차 타는 걸 걱정하는 내게 몇 번이나 자신의 다짐을 말했다. 밤송이처럼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손에 캐리어 가방을 끌며 지하철과 기차를 탔다.

  지하철의 가파른 에스컬레이터와 빠르게 닫히는 개찰구와 분주한 인파 속에서 지하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이의 손을 꼬옥 쥐었다. 기차 시간에 맞추려면 시간이 빠듯했는데 다행히 아이는 잘 따라와 주었다. 토요일의 지하철엔 사람이 많았다. 간신히 발 디딜곳을 찾아 서서 가야 했다. 다리 사이에 캐리어 가방을 끼고, 손으로 흔들리는 아이 몸을 지탱해 주었다. 키가 작아 다른 사람들의 엉덩이나 팔꿈치, 가방에 쉽게 치이기 때문에 마트나 인파가 모이는 곳에서는 더욱 위험하다. 지인의 아이가 마트에 갔다가 타인의 카트 모서리에 치여서 한쪽 눈에 멍이 든 적도 있었다.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고 타는 사람은 계속 늘어났다. 아이와 조금씩 안쪽으로 끌려 들어가며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그때 어떤 중년 여성 분이 우리를 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에게 앉으라며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그 옆에 있던 중년 남성 분도 벌떡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갔다. 아무 말 없어서 내리는 가 싶었는데 몇 정거장이 지나도 내리지 않았다.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해 준 것이다. 한사코 자리를 양보해 주는 중년 여성 분께, 아이를 안고 앉으면 되니 옆에 앉으시라고 말씀드렸다. 덕분에 우리는 기차역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여섯 살 이하의 아이는 기차표를 끊지 않아도 된다. 다만 기차표를 끊지 않으면 어른과 한 좌석에 앉아 안고 가야 한다. 나는 유아 동반 좌석을 끊어 아이를 앉히고 좌석 사이에 캐리어 가방을 두려 했다. 토요일에 기차표 예매는 빠른 손놀림이 필요한데, 운 좋게 두 좌석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좌석을 확인하다가 예상치 못한 일을 발견하고 말았다. 표에 유아 동반이라고 적혀있긴 한데, 자리가 멀리 떨어진 것이다. 나는 1호차, 아이는 2호차였다. 몇 번이나 표를 확인하고 다시 표를 끊으려 했지만 이미 매진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이의 좌석이 있는 2호차로 향했다. 이젠 무인으로 이루어지는 게 많다 보니 직원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아이의 옆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옆 좌석 사람이 왔다.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 분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가슴이 떨렸다. 본인 자리를 찾아왔는데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면, 게다가 다른 칸으로 이동해야 하면 누가 기분 좋아할까. 거절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데 그분이 먼저 눈치를 채고 말을 걸었다.

  "아이고. 자리가 어디예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죄송합니다. 유아 동반 좌석을 끊었는데 자리가 떨어져 예매가 됐어요. 아이는 여기고, 저는 1호차예요."

  "걱정 말아요. 내가 거기로 가면 돼요."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멀어지는 그분을 보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덕분에 약 두 시간 정도의 여정 동안 아이와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살아온 4년 인생 최초로 기차를 탄 날!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는 처음 타는 기차에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창문에 달라붙어 숨죽이고 바깥을 구경했다. 풍경을 따라 머리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며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았다. 아이에겐 잊을 수 없는 '기차 타기' 추억이 생긴 것이다. 이제 마지막 미션은 기차에서 내리기였다. 지금까진 한 손엔 아이, 한 손에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녔는데 기차의 계단이 생각보다 가팔랐다. 기차 계단과 역 바닥 사이의 거리도 멀어서 도저히 아이 혼자 내리기엔 무리라 생각했다. 해결 방안을 찾아 머릿속이 어지러운데 짐이 많은 장년의 여성 분이 먼저 손을 내미셨다.

  "내가 짐을 들어줄 테니까 애기 안고 내려요."

  "괜찮아요. 짐도 많아 보이시는데 이 가방도 무거워요. 천천히 내려가면 돼요."

  "애기 위험해서 안 돼요. 얼른 이리 줘요."

  여성 분은 내 가방을 재빨리 가져가더니 미소를 지으셨다. 덕분에 아이를 안고 안전하게 내릴 수 있었다. 지하철과 기차를 타는 약 세네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친절을 경험했다. 나에게 직접 말을 걸고 도움을 준 사람들 말고도 아마 우리의 모습을 보고 알게 모르게 배려해 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아이를 보고 차례를 양보해 준 사람,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에서 천천히 걸어준 사람, 복잡한 지하철에서 아이가 밀리지 않도록 거리를 내어준 사람 등 많은 사랑의 빚을 졌다. 아이는 이 사랑 덕분에 온기를 머금고 따뜻함을 흘려보내며 자랄 것이다.

  

  어린아이와 함께 집 밖으로 나가면 따가운 시선을 받을 때가 많다. 노 키즈 존 앞을 지날 때나 식당에서 음식을 흘리는 아이를 보는 따가운 시선, 유모차를 끌고 카페에 갔을 때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 인터넷에 아이 엄마를 벌레에 비유하는 험담들. 심지어 외국 공항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데, 바로 뒤에 있던 젊은 한국인 커플이 내 귀에 대고 욕을 했다. "애 낳았으면 집 안에서나 데리고 있지 왜 데리고 돌아다니나 몰라. 나는 나중에 애 낳으면 절대 해외는 안 데리고 갈 거야. 완전 짜증 나. 괜히 줄만 길어지고." 나는 아기띠 안에서 잠든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우리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뒷 여자의 목소리가 칼처럼 느껴졌다. 아이와 함께 걷는 길은 아무것도 안 해도 죄인이 된 기분이 든다. 아이의 안전과 타인의 시선 속에서 긴장감이 높아진다.

  작고 연약한 사람과 동행하는 건 나도 함께 약자로 만드는 일이다. 같이 느린 걸음을 걷고 매서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 불편한 존재, 잉여의 물질이 된 기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였다. 엄마가 있는 사람들이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강하고 빠른 자만 살아가는 세상은 얼마나 끔찍하고 답답한 곳일까?


 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책을 지었다.  <일 포스티노>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이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언제나 그렇듯 천국으로 가는 기차는 완행이고, 축축하고 숨 막히는 역에서 지체하는 법이다. 오직 지옥행 열차만이 급행이다." 어린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모든 자잘한 역을 느린 속도로 정차하는 완행열차이다. 축축하고 숨 막히지만 결국엔 천국으로 향한다. 철쭉같이 빨간 입술을 삐죽 내밀어 양 볼에 뽀뽀해 주고, 찰떡 같이 작은 엉덩이를 그네에 얹고는 밀어 달라 재잘거린다. 그 미소의 기쁨을 아는 사람, 천국행 열차에 따뜻한 손을 흔드는 사람, 작은 친절을 더해 빛을 밝혀주는 사람 덕분에 이 봄에 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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