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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Jul 05. 2023

전업주부는 아이들이 없는 낮시간에 무얼 할까?

오늘도 최선을 다해 ‘엄마’였다

아침이면 등교 전쟁을 시작한다. 첫둥이를 깨워 잘 잤는지, 몸과 마음의 컨디션은 어떤지 확인한 뒤 오늘의 일정과 지금 시간,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말해준다.

  "첫둥아, 지금 7시 35분이야. 세수하고 로션이랑 선크림 바르고 아침 먹어. 학교에 가기까지 시간이 남으면 하고 싶을 일을 해도 좋아."

  첫둥이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라 부지런히 아침 활동을 하고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첫둥이에게 아침을 먹여 8시 30분에 엘리베이터를 태워 보낸 뒤,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베란다에서 아이를 지켜본다. 아파트 단지 안에 초등학교가 있어 아이의 동선이 보인다. 친구를 만나서 갈 때는 느리 적 느리 적, 늦었을 때는 쏜살같이 뛰어간다. 아이가 학교 현관을 통과하면 휴대폰 어플로 도착 알림이 울린다.

 "첫둥이 어린이가 8시 35분에 교문을 통과하였습니다."

첫둥이가 좋아하는 종이접기. 위부터 차례대로 불도저, 너클크레인, 포클레인, 아파토사우르스를 만들었다.



   이제 막둥이를 깨울시간이다. 막둥이는 첫둥이가 아침 먹는 시간에 혼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간혹 일어나지 못한 날엔 온몸을 마사지하며 깨운다. 복숭아처럼 동그랗고 보들보들한 엉덩이와 배를 통통 두드리며 온몸에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막둥이는 눈은 껌벅이며 동동 걸어가 소변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막둥이에게도 해야 할 일을 말한다.

 "막둥아 세수하고 로션 발라. 그럼 엄마가 턱에 약 바르고 선크림 발라줄게."

  막둥이는 올 겨울에 턱을 다쳐 꿰맸는데 아직도 흉터 때문에 매주 병원 치료를 다니고 있다. 집에서는 매일 하루 두 번 약을 발라주고 잠자기 전에 실리콘 밴드를 붙이고 잔다. 낮에는 수시로 선크림을 발라 자외선 차단을 해줘야 한다.

 "엄마는 매일 세수하고 로션 바르라고 하고. 엄마랑 안 놀아."

  네 살 막둥이는 수시로 삐지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엄마랑 안 논다'며 엄포를 놓는다. 엄마랑 안 놀면 아쉬운 건 자기면서.

 "엄마는 막둥이랑 놀고 싶은데. 같이 놀자. 엄마가 막둥이가 좋아하는 돈가스 구워 놨어. 아침 먹자."

 "치. 엄마는 맨날 아침 먹으라고 하고. 엄마랑 안 놀아."

 


  막둥이를 살살 달래고 혼내기도 하면서 고난도의 아침 준비를 마친다. 씻고 옷 갈아입히고 밥 먹이고 대변본 엉덩이를 물로 닦아주고 나면 한 시간 반이 훌쩍 흐른다. 그래도 엄마의 희망은 아직 남아있다. 막둥이까지 어린이집에 가면 비로소 집에 혼자 남겨진다는 것!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막둥이가 묻는다.

 "엄마, 엄마는 내가 어린이집에 가면 뭐 해?"

 자기 없이 엄마가 혼자 있는 꼴을 보는 게 싫은 건지,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매번 타이르듯 대답해 준다.

  "엄마도 집에서 할 일이 있어."

막둥이 등원길

  가정주부가 낮 시간이 무얼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심지어 같은 가정 주부인 사람들도 묻는다. 아이들을 보내고 낮 시간에 무얼 하는지. 나도 다른 사람들이 무얼 하는지 궁금하다. 전에는 이런 질문에 주저리주저리 답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분명 바쁘고 시간이 금방 가는데, 무엇을 하며 보내는지 딱히 말할 게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내 하루가 어떤지 관찰해 보기로 했다. 매일 다른 하루를 보내지만 오늘 하루는 어땠는가, 하고 말이다.


  아이들을 다 보내고 난 시간은 오전 열 시. 아파트 단지 산책로를 빙빙 돌며 걸었다. 날이 더워 30분 정도 걸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빨래를 돌린다. 매일 같이 4인 가족이 벗어젖히는 겉옷 네 벌, 속옷 네 벌, 내복 두 벌, 수건 여덟 개 등. 색깔별, 종류별로 빨래를 돌리려면 하루에 두 번 내지 세 번 정도 세탁기를 돌린다. 방마다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집어던진 빨랫감을 찾아 두리번 거린다. 빨래 돌리고 널고, 돌리고 널고, 마른빨래는 걷어서 갠 뒤 제자리에 갖다 둔다. 2주에 한 번 정도는 이불과 베개도 빤다. 이게 가장 고난도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나도 늦은 아침을 먹는다.  


  거실과 방에 아이들이 놀고먹고 치우지 않은 흔적을 찾아 청소를 한다. 오늘은 비가 오는 김에 창틀 먼지를 닦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물에 손이 붓고, 손 끝이 얼얼하다. 소파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쐬며 휴대폰을 집어 든다. 주로 아이들과 남편에게 필요한 준비물이나 옷, 식재료, 생필품 등을 검색하고 주문하는데 인터넷으로 구매하려니 눈이 빠질 것 같다. 정말 필요한 건지, 대체할 품목이 집에 있진 않은 지,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과소비하는 건 아닌지 몇 번이나 고민하고 신중을 기한다.


  점심은 밖에 나가 사 먹었다. 보통 집에서 간단히 먹는데 오늘은 점심까지 해 먹으면 오후를 살아 낼 힘이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밥만 먹고 들어와 아이 학교에서 온 인터넷 공문들을 확인하고 홈트를 했다. 근력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기력이 없어서 천천히 늘려갈 생각으로 간단하게 시작했다. 첫둥이가 부탁한 조립 로봇을 해체하고 박스에 담아두었다. 첫둥이가 방과 후 수업 끝나고 집에 올 시간인데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혼자 오게 해 자립심을 길려줘야 할지, 그래도 나가봐야 할지 베란다에서 학교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거리다가 결국 우산을 들고 학교 앞으로 갔다. 들고 간 장화로 신발을 갈아 신기고 집으로 오는데 언뜻 뒤에 아이가 신발주머니를 머리에 쓰고 걷는 게 보인다. 모르는 아이지만 마음이 쓰였다. 우산을 씌워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왔다. 첫둥이가 아는 사이냐고 물어본다.

"엄마, 아까 그 6학년 누나랑 아는 사이야?"

"아니. 엄마도 모르지."

"근데 왜 우산 씌워서 집까지 바래다 준거야? 엄마 어깨가 다 젖었어."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가는데 딱하잖아. 나중에 우리 첫둥이가 우산도 없이 비 맞고 걸어갈 때 엄마가 베푼 친절이 첫둥이에게 돌아갈 수도 있어. 사람은 서로 돕고 사는 거란다. 사랑은 흘러 흘러서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거야."


  집에 와서 첫둥이가 좋아하는 과일인 망고를 깎아줬다. 방과 후 수업을 하나 더 들으러 가야 해서 로봇 박스를 가방에 담아 다시 학교로 보냈다. 이제 막둥이가 하원할 시간이라 우산 두 개를 챙겨 어린이집으로 갔다. 왜 차를 안 가지고 왔냐고, 비 맞기 싫다는 막둥이는 오늘 낮잠을 안 자서 괜한 생트집을 잡는다. 장화 신고 첨벙 거리며 고지랑물 튀기며 노는 걸 좋아하면서 엄살이다. 또다시 "치. 엄마랑 안 놀아." 하는 아이에게 지렁이를 찾아보자, 나뭇잎에 튕기는 빗물을 구경하자며 살살 달래고 손에 사탕 하나를 쥐어줬다. 막둥이는 이내 해실거리며 뚜벅뚜벅 걷는다.


  첫둥이도 방과 후 수업이 끝날 시간이 다가온다. 비가 와서 우산을 써야 하는 데다 코딩을 이용한 로봇 수업이라 짐이 무거워 들어주러 다시 학교로 갔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간식을 준다. 오늘은 골드 키위와 군만두, 아이스크림이다. 첫둥이는 태권도 학원에 갈 시간이라 다시 챙겨 보내고, 저녁을 준비한다. 냉동 오징어 두 마리를 꺼내 한 마리 반은 매콤하게, 반 마리는 간장으로 조렸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빨간 오징어 위에 참기름을 뿌린다.


  저녁 설거지는 고맙게도 남편이 한다. 남편이 설거지를 마치고 수영장으로 떠나면 두 아들을 차례로 씻긴다. 첫둥이는 수영 학원에 다닐 때 샤워하는 법을 배워서 혼자 샤워하고, 막둥이는 내가 씻겨준다. 씻고 나면 또 출출해하는 우리 아들들. 푸딩과 우유로 간단히 간식을 해결한다.


  막둥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도구인 세이펜과 책을 쥐어주고, 첫둥이의 숙제와 공부를 봐준다. 둘 다 관심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가장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막둥이는 막둥이대로, 첫둥이는 첫둥이대로 엄마가 자기에게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오늘은 글이 쓰고 싶은 마음에 첫둥이가 문제를 푸는 동안, 막둥이에게 풍선카를 꺼내주었다. 풍선이 달린 자동차에 버튼을 누르면 풍선에 바람이 빠지며 자동차가 앞으로 발사되는 장난감이다. 이제 남은 건 첫둥이 문제집 채점과 두 아이들 치실과 양치질, 막둥이의 실리콘 밴드 부착과 재우기 미션이다.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어 준다. 하는 게 없어 보여도, 무어라 딱히 뭘 했는지 말하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오늘도 최선을 다해 엄마로서 살아남아 가정을 살리고 살아냈다.


오징어 볶음 2종에 미리 만들어둔 새콤달콤 피클을 내었다. 언제쯤 다 같이 빨간 오징어 볶음을 먹는 날이 올까?


<비에도 지지 않고>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과 욕심 없는 마음으로

결코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음 짓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내 잇속을 따지지 않고

사람들을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가 있다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다면 가서 볏짐을 날라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다면 가서 두려움을 달래주고

북쪽에 다툼이나 소송이 있다면 의미 없는 일이니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고

추운 여름이면 걱정하며 걷고

모두에게 바보라 불려도, 칭찬에도 미움에도 휘둘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_미야자와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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