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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Apr 27. 2023

사랑받는 아이의 세 가지 조건

너는 이미, 있는 모습 그대로 특별하단다

  자녀를 키우며 부모는 세 가지 기대를 갖는다고 한다. 건강한 아이, 착한 아이, 똑똑한 아이. 그러나 두 손에 아무것도 갖지 않고 태어난 아이는, 커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생각보다 건강하지도 않고, 남들보다 똑똑하지도 않고 심지어 인성조차 의문스러운 순간이 오는 것이다. 자녀 또한 부모에게 신화적 모성애나 강인한 부성애를 기대하지만 내 부모가 그렇지 않다는 걸 자연스레 알아간다. 중요한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다친 마음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은 다 저만치 뛰어가는데 왜 너만 떨어지느냐 타박하는 부모의 눈초리를 마주한다. 무력한 자녀에게 분노하고, 이기적인 부모를 원망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간다.


  나도 아이를 키우며 세 가지 기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바랄 수 없는 욕심임을 깨닫는다. 첫 번째는 똑똑한 아이에 대한 기대감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잘한 사람에게 스티커를 붙여 주신다. 일기장, 독서록, 받아쓰기, 배움 노트 등에 스티커가 붙어 있으면 칭찬인 것이다. 첫 과제를 하고 노트를 냈던 날, 아이의 공책에 확인 도장만 있고 스티커가 없었다. 아이가 열심히 해 갔는데 속상하지 않을까 싶어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스티커는 그냥 스티커일 뿐이야. 내가 열심히 했으면 됐지."

  아이의 대답에 스티커를 받지 못해 속상한 건 아이가 아니라 나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는 열심히 했지만 칭찬 스티커를 받지 못했다. 학교 수학 시간에 다 풀지 못한 문제는 집에서 과제로 해가야 하는데, 아이는 자주 다 풀지 못한 문제지를 집에 가지고 왔다. 집에서 여러 번 연습해 간 받아쓰기 시험도 실수를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좀 더 열심히 하면 될 거야, 연습한 만큼 결과가 나온 다고 말했다. 그 말속엔 공부량을 좀 더 늘리길 바라는 마음, 다음엔 다 맞기를 바라는 기대, 지금은 충분하지 않다는 속뜻이 있다는 걸 아이가 모를 리 없다.

아이의 독서록. 스티커가 뭐라고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두 번째 기대는 착한 아이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공부는 못해도 애는 착하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으면 공부를 못 하면 착하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은연한 압박을 느낀다. 아이가 이제 여덟 해를 조금 넘게 살았다. 아직 아이의 공부 실력을 가늠하긴 어렵지만, 마음은 당연히 착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 맞고 온 적은 있어도 때리고 온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동생과 공방전을 벌일 때 보면 그 마음이 너무 악랄해 보일 때가 있다. 말도 잘 이해 못 하는, 다섯 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모진 말을 내뱉는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놀이 규칙을 바꾸고,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은근한 협박으로 동생을 울린다. 아이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착한 아이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자녀에 대한 기대일 뿐, 무조건 착한 아이는 없다.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지인들의 말을 들어 보면 벌써부터 그 시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마지막 기대는 건강한 아이에 대한 바람이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큰 문제없이 잘 자랐다. 크게 아프거나 다치지 않았고 넘치는 체력을 자랑했다. 주변에서 어린이 철인 삼종 경기를 권유할 만큼 튼튼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학교에서 한 신체 계측에서 시력이 매우 떨어졌다. 부모가 시력이 좋고, 아이의 시력은 우리보다 더 좋았기에 이에 대한 걱정은 한 적이 없었다. 일 년 반 사이에 아이는 안경을 고려할 만큼 시력이 떨어져 있었다. 안과에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이가 불편해하면 언제든 안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안과 병원 벽에 붙어 있는 게시판 글도 잘 안 보인다고 했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화면에 큰 글자를 띄워줘서 잘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는 아이가 자라 갈수록 시력이 더 안 좋아질 확률이 높다고 했다. 작은 얼굴에 씌워진 동그란 안경이라니. 안경 쓴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심장이 하늘에서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닥칠 불편함들이 영화의 예고편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이에게는 원하면 언제든 멋진 안경을 씌워주겠다고, 추울 때 점퍼를 입듯 자연스러운 도움을 받는 거라고 얘기했지만 두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아이가 안경을 쓰지 않고 눈이 좋아지는 방법이 있다면, 벼랑 끝에 달린 열매라도 따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아이는 바람만큼 똑똑하지도, 착하지도, 건강하지도 않다. 그게 아이의 본모습이다. 내 아이는 완벽한 이상향이 아니라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나는 그런 아이의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세상을 살면서 나를 전적으로 이해해 주고 지지해 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내가 한 아이의 엄마로 선택받은 건 그 사람이 돼주라는 부름은 아닐까? 아무것도 아닌 나약한 존재의 민낯을 보라고, 그저 그 존재로 얼마나 특별한 지 깨달으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게 부모의 자리 아닐까.


  맥스 루케이도가 쓴 <너는 특별하단다>라는 그림책이 있다. 책에는 '엘리'라는 목수가 만든, 작은 나무 사람들인 '웸믹'이 등장한다. 웸믹들은 별표와 잿빛 점표가 든 상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서로에게 붙인다. 재주가 뛰어나거나 색이 잘 칠해진 웸믹은 별표를, 나뭇결이 거칠거나 재주가 없는 웸믹은 잿빛 점표를 몸에 붙인다. 주인공 '펀치넬로'는 항상 잿빛 점표를 받았고, '난 좋은 나무 사람이 아닌가 봐'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어느 날 별표도, 점표도 없는 '루시아'를 만난다. 그리고 '나'라는 이유 만으로 특별하다는 걸 깨닫는다. 특별함은 무언가를 '특별히 잘'한다는 뜻이 아니다.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다'라고 나온다. 타인과 다른 무엇, 친구와 구분되는 부분, 한 사람이 갖는 고유한 특성 다시 말해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가 특별함이다.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든 토종 흰민들레. 길가의 흔한 노란민들레와 또다른 매력을 풍긴다.

  아이를 키우며 이 아이가 얼마나 나와 다른 사람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아이는 내가 선도하고 가르칠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란 걸 되새긴다. 아이의 신체가 다 자라지 않았고, 경제적·정신적으로 미숙하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자녀를 키울 권한이 부모에게 있는 건 아니다. 나이와 경험이 많다는 게 더 훌륭한 사람이란 걸 뜻하진 않는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내가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곳일 것이다. 헬리콥터 맘이 되어 성적 잘 나오는 학원에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부분을 지원해 주는 어른이고 싶다.


  이 아이가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로 자신의 세계를 채우고 싶어 하는 가, 어디에서 힘을 얻고 사랑을 느끼는 가가 내가 부모로서 갖는 주관심사다. 내 마음대로 아이를 바꾸지 않고, 아이의 내면이 마음껏 뻗어나가 우람한 나무가 되길 원한다. 살면서 비바람이 치고, 죽음이 생각날 정도로 괴로움이 몰려와도 굳게 뻗은 뿌리로 토양을 움켜쥐고 영양분을 빨아올리며 생명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자라길 기도한다. 부모의 기대만큼 공부 잘하고, 말 잘 듣고, 건강하지 않더라도 20년 후가 아닌 오늘이 행복한 아이, 어린 시절이 설렘으로 가득한 정원이 되길 소망한다.


아이는 요즘 한글프로그램으로 동생 놀이책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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