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돋을볕 Oct 06. 2023

"할머니, 우리 엄마는 아침밥도 안 해줘요"

너는 엄마를 배신하여도, 엄마는 너를 위해 아침밥을 짓는다

  이상한 날씨다. 햇볕은 뜨거워서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든데 체감 온도는 쌀쌀해서 긴 옷 위에 살짝 도톰한 잠바 하나를 걸쳐야 한다.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땀을 흘리는데 나는 코끝이 시리고 입술이 파래진다. 나는 전기장판에 포근한 이불까지 감싸고 자는데 아이들은 답답하다며 얇은 이불마저 걷어차버린다. 아침에 학교와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들 가방에 따뜻하게 끓인 작두콩차를 미지근하게 식혀서 보온병에 넣어줬더니 엄마가 더운물을 줘서 마시지도 못했다며 성화다. 노란 물 말고 하얀 물 달라며 정수기를 가리킨다. 가을바람이 차기도 햇볕이 뜨겁기도 한 것처럼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


오랜만에 저녁밥 대신 치킨을 시켜 먹자며 금요일 밤의 평화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큰 가방을 메고 우리 집 앞 살림을 살피는 그분의 얼굴을 인식하기까지 정적이 흘렀다. 실거주 확인을 하러 온 통장이나 인테리어 동의서를 받으러 온 업자로만 생각하다가 시어머니임을 알아본 순간 치킨부터 취소했다. 부랴부랴 밥을 안치고 야채와 고기를 구웠다. 긴 여행의 종지부로 우리 집에 들르신 것인데 알려주신 날짜보다 하루 일찍 오신 것이다.


  연락도 없이 온 시어머니의 방문이 당황스러웠지만 만약 친정 엄마가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 엄마가 연락 없이 우리 집에 온다고 내가 화가 날까? 놀라긴 해도 화가 나진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시어머니는 미리 음식하고 부담 가질까 봐 마음을 쓰신 것일 수도 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나와 다른 가정 문화를 가졌기 때문일 거라 이해했다. 아마 시어머니도 나의 부족함이나 다름을 덮어주고 넘어간 게 많으실 것이다.


  오냐오냐 예뻐해 주는 할머니의 등장에 아이들은 신이 났다. 서로 할머니 옆에서 자겠다며 실랑이를 벌이고 할머니를 가운데 둔 채 장난치며 뒹군다. 시어머니도 아이들의 재롱에 웃음 만발이다. 그러나 평소 일찍 주무시는 탓에 벌써 눈이 반쯤 감기셨다.


  "할머니 피곤 하시니까 얼른 자자. 일찍 자야 또 내일 일찍 일어나서 할머니랑 놀 수 있어."

  내 말에 첫째는 눈치껏 할머니 옆에 드러눕는다. 그러나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둘째는 치솟는 도파민을 주체할 수 없다. 결국 아빠에게 크게 혼이 나서 방에서 쫓겨난 둘째는 서러움에 눈물을 뚝뚝 흘린다. 화를 잘 내지 않는 아빠에게 혼 난 둘째는 놀람과 두려움에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둘째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가서 토닥여 재우고 나니 벌써 열두 시가 넘었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 토요일인데 이번 주말은 그럴 수 없었다. 나름 일찍 일어난다고 알람을 맞춰 일어났는데 밤에 늦게 잔 탓인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런데 거실에는 벌써 시어머니가 일어나 앉아 계신다. 시어머니는 아침에 해보다 일찍 기상하신다. 시어머니의 뒤척임에 같이 눈을 뜬 첫째는 냉동실에서 미니 핫도그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있다. 시어머니는 첫째의 야무진 손길에 놀라 말을 건다.

"어머. 우리 첫둥이는 혼자서 전자레인지도 돌리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미니 핫도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라 가끔 오후 간식으로 출출할 때 꺼내 준다. 그런데 첫째는 엉뚱한 대답을 한다.

  "저는 원래 혼자 꺼내서 돌려 먹어요. 아침마다 이렇게 혼자 밥 해 먹고 학교 가요."


  순간 뒷목이 뻣뻣해진다. 시어머니는 남편과 아이들이 빵 먹는 걸 질색하시는 데, 아침에 엄마가 밥을 안 해줘서 혼자 빵을 데워먹는다고 말하다니. 만으로 아홉 살인 첫 째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새벽에 알람을 맞춰 놓고 일어나 숙제를 할 때가 있다. 새벽에 그날 해야 할 공부를 미리 마쳐놓고 방과 후엔 계속 친구랑 놀기 위해서다. 첫째는 무엇이든 직접, 스스로 하는 걸 좋아한다. 핫도그 데워 먹는 걸 가르쳐 달라길래 가르쳐줬더니 제법 잘했다. 바로 어제 첫째는 새벽에 일어나 핫도그를 돌려 먹었고,  방금 첫째는 그게 매일 있는 일인 것처럼 말했다. 그 어투가 황당해 내가 물었다.

"무슨 소리야. 아침에 엄마가 밥을 안 해주고 네가 혼자 핫도그 돌려 먹고 학교에 간다고?"


첫째는 할머니 옆에 붙어서 황당함을 추가한다.

"할머니 저는 아침에 혼자 밥 해 먹어요. 이게 제 밥이에요."

시어머니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첫째를 껴안는다.


  아침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학교에서 배고플 새라 매일 다른 식단을 고민하며 따뜻한 밥을 해 먹였더니 저렇게 배신을 하다니.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야채를 다졌다. 너는 엄마를 배신하여도, 엄마는 너를 위해 아침밥을 짓는다.


  주말 내내 부엌에 서서 음식을 만들었다. 어른과 아이들이 선호하는 음식이 달라서 여러 가지를 만들어야 했다. 시금치나물, 오이 부추 무침, 순두부찌개, 어묵탕, 달걀말이, 잡채, 도토리묵무침, 샐러드 등. 며칠 뒤 시어머니가 가신 뒤에도 일주일을 피곤에 절어 살았다. 선한 마음으로 대접하려 했지만 답답함 가슴과 지친 육체는 쌓여서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아들인, 남편에게 향했다.

요리는 잘 못해도 대접은 잘 하고 싶다


  왜 이렇게 남편에게 화가 날까, 짜증이 나고 심술이 날까.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미워 보일까? 나는 남편을 배려하고 싶지 않았다. 시어머니게 하지 못한 대항을 남편에게 하고 싶었으리라. 남편이 저녁에 퇴근하고 와도 밥을 해놓지 않았다. 아침에 벗어놓고 간 옷도 정리해 주지 않았고 칭찬하거나 마음을 읽어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지쳐 보이는 게 역력해도 도와주지 않았다. 외롭고 고립 돼보여도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어제 남편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아빠도 너무 힘들어. 회사를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 모르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못다한 평가 보고서도 만들어야 해."


  아이들은 아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았지만, 나는 속내를 파악했다. 요즘 남편이 회사에서 무슨 일로 바쁜지,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연말 평가 기간인 것은 몰랐다.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일 년 간의 자기 성과를 쓰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 기간은 고슴도치의 가시가 더욱 거칠게 솟는 시기였다. 순간 내 옹졸한 말과 행동이 깨달아지며 부끄러웠다. 남편이 희망퇴직 대상자에 올랐지만 하지 않고 회사에 계속 다니면서, 나도 남편에게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게 불과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여전히 변한 게 없다. 나만 생각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독화살을 내뿜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엔 분노했고 받은 만큼 되돌려주고 싶어 한다. 내 편협한 생각과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은데도 내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이해하려 한다. 남편을 수영장에 등록시키고, 여러 모임에 들여보내고, 시간을 떼어 주더라도 본질적으로 내가 바뀌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펄럭이는 흰 깃발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때에, 할 수있는 만큼만 빈자리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고 불편한 생각과 마음이 들어도 나를 비우고 내려놓아야 타인이 들어와 쉴 수 있다.


  정신과 의사이자 사상가인 모건 스콧 펙은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한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렇게 정의내린다.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인간 존재는 가장 황홀하고, 영구적이고, 확고하며 무한한 인생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삶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죽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이란 단순한 신체적 정지 상태가 아니다. 죽기까지 자신을 비우고 포기하며 더 확장된 기쁨을 누리는 상태를 뜻한다. 스콧 펙은 죽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비워야 사랑을 완성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즉,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보다 많이 얻는다. 자기 훈육이란 자기 확장의 과정이다. 포기의 고통이란 죽음의 고통이고, 옛것의 죽음이란 새것의 탄생이다." 나 스스로를 절제하고 훈육시킬 때 포기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내가 죽으면 나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포기하는 것은 죽음과 같은 고통이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옹졸한 나를 벗어나 진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남편은 일 년 간 자기가 한 일을 적어 상사에게 평가받고 그게 연봉에 반영이 된다. 상대평가이기에 상사에게 잘 보인 몇 명은 회사가 원하는 인재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희망퇴직 대상자에 오른다. 본인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 위에서 시키는 일을 했음에도 해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보고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늘 평가받는 삶을 사는 것도 얼마나 처절한가. 이미 상사의 머릿속에선 평가가 끝났다 하더라도 아직 평가 기간이기에, 이 기간엔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것이다.


  나도 나름의 씨름을 벌이고 있다. 다음 주엔 아이들의 학교와 어린이집 공개 수업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이루어지는데 남편은 연차를 쓰기 어려운 때이니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남편 없이 혼자 외롭긴 하겠지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시간을 쪼개어 절반씩 참여하면 된다. 또한 이제 곧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내년도 입학 설명회와 접수가 시작된다. 내년엔 둘째가 어린이집과 유치원 중 어디로 갈지 선택을 해야 하는데, 유치원이 어린이집보다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스무 배 이상까지 비용이 많이 든다. 주변에선 어린이집은 보육 위주이고 유치원은 교육 중심이라 유치원에 꼭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어찌 그리 이분법으로 나눠지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우리에게 적당한 기관으로 정하려 한다. 가정 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고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를 교육하고 보살펴 줄 곳으로 말이다. 결국엔 보육이든 교육이든 엄마의 역할이니까.


  남편의 성과 평가 결과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벌써부터 한숨과 우울한 감정이 이따금 밀려온다. 남편은 일이 많아 몸살이 났다. 남편이 또다시 희망퇴직 명단에 올라 퇴직을 한다 하더라도 흔쾌히 동의하고 그동안 애썼다고 등을 토닥여주는 아내가 되고 싶다. 돌고 돌아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좌절하지만, 뱅글뱅글 돌아 제자리에 굳건히 박히는 나사처럼 내 존재가 '사랑'이 되기까지 부단히 부딪혀보련다.


이전 08화 집을 사고파는 문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