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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Sep 27. 2023

집을 사고파는 문제

우리는 이사 온 지 얼마 안돼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올해 초, 이제 갓 40대에 진입한 남편은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었다. 회사는 많은 젊은 사람들을 회사 밖으로 내몰았지만 남편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가족을 택했다.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접고 팀장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내비쳤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우리는 또다시 희망퇴직 대상자가 될 것이다. 어쩌면 '희망'이라는 말을 지우고 '통보'받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처음엔 침묵을 택했고 이제는 공유를 향해 나아간다. 이 상황과 감정을 공유할수록 확고해지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모두 퇴사를 꿈꾸지만, 한편으론 퇴사의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직장에 다니는 누구라도, 혹은 직장에 다니는 가족을 둔 누구라도 '퇴사'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지구침공을 앞둔 외계인의 계략을 눈치챘을 때처럼, 호기롭게 떠난 낯선 여행지에서 징그러운 벌레를 마주쳤을 때처럼.


  남편이 가족을 위해 직장에 몸을 다시 밀어 넣기까지 나와 남편은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어린 두 아이들을 피해 많은 대화를 나눴고, 우리에게 직장이 주는 안정감이 매우 컸음을 깨달았다.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과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젊은 나이에 찾아온 퇴직도 두렵지만, 언젠가 당도하게 될 장년 이후의 실업은 어쩔 수 없이 미래를 고민하게 한다.


  갈데르 가스텔루-우루티아 감독의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은 주인공 '고렝'이 감옥에서 눈을 뜨며 시작한다. 그러나 일반 감옥이 아니다. 아파트처럼 지어진 감옥 방에는 층마다 사람들이 수감되어 있고, 위에서부터 층마다 내려오는 플랫폼에 음식이 담겨있다. 최고의 요리사들이 만들어낸 식사는 화려하고 많은 양이 담겨있지만 상류층의 사람들이 독식한다. 상류층에 사는 사람들은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 아래층 사람들이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훼손한다. 한 달 뒤에 무작위로 층이 바뀌는 날이 올 때까지 하류층 사람들은 아사하거나 간신히 버티며 살아남는다. 마침내 주인공 '고렝'은 이 시스템의 불합리함에 반기를 든다.

  처음에 배급되는 음식의 양이 넉넉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상류층의 사람들이 독식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음식을 배분해서 먹으면 누구도 굶주리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하류층에서 살아남아 상류층에서 눈을 뜬 어느 날, 플랫폼에 뛰어들어 시스템을 바꾸고자 한다. 주먹을 꽉 쥐고 낙하를 시작한다.

영화 <더 플랫폼> . 위층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먹는 감방 동료와 고뇌하는 '고렝'의 모습



  당연한 일상을 등지고 벗어나 희망의 빛을 향해 걷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해 보이는지. 희망이란 도착지를 알 수 없는 아스라이 퍼지는 빛과 같지만 결국엔 길을 잃지 않고 망망대해에서 육지로 이끌어주는 등대이기도 한다. 남편과 나는 '퇴직'이라는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서로의 손을 맞잡기로 했다. 같이 낙하하는 플랫폼에 뛰어내려 우리의 두려움 혹은 편견과 싸우는 것이다. 남편에겐 그것이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일이었고, 나에겐 내가 생각하는 합리가 아닌 남편의 의견을 따르는 일이었다.


  남편은 언제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부담이 덜 가도록 경제적 압박을 잘라내고 싶어 했다. 남편이 생각하는 것은 이사였다. 구매한 지 얼마 안 된 집을 팔고 대출을 모두 갚은 뒤, 전세로 가거나 외곽의 저렴한 집으로 가길 원했다. 이 집은 나에겐 꿈의 집이었다. 집순이 중에서도 집순이인 나에겐 집이 거의 전부다. 집에서 글을 쓰고, 아이들을 돌보고, 운동을 하고, 음식을 만들고, 책을 읽고, 안식한다. 외출에 대한 긴장도가 높은 나로선 안정된 집이 주는 편안함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몇 번의 이사 끝에 당도하게 된 이 집은 내가 늘 바랐던 단지에 있던 아파트이다. 단지 안에 어린이집과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까지 있으며 집 바로 앞에 지하철역과 도서관, 체육문화센터, 산책로, 크고 작은 공원들이 있다. 길만 건너면 유명한 학원가와 대형 마트, 병원, 영화관, 카페 등 상점이 깔끔하게 즐비했다. 집에서 아이의 등·하굣길이 한눈에 내다보이고 학군도 우수하며, 가고 싶은 곳은 슬리퍼 신고도 어디든 금방 다녀올 수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도 가까워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도 수월하다. 어디든 장·단점이 있으니 단점을 꼽으라면 물론 또 있겠지만,  내가 가진 것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고 싶다. 이런 나에게 이사는 늘 스트레스였는데,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또다시 이사를 가고 적응을 해야 하는 게 큰 부담이었다. 게다가 초등학생인 첫째는 정이 많아서 전학을 올 때도 힘들어했는데, 또 전학을 가야 한다는 게 미안했다. 그러나 남편이 우리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평안함을 준 것처럼, 이번엔 나도 남편이 가진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남편의 생각이 불합리하고 안 좋은 선택 같아 보여도 같이 실패하고 짐을 나누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사 온 지 얼마 안돼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베란다에 짐도 채 다 풀지 못한 채 주말마다, 그리고 평일 밤이나 낮에도 수시로 사람들이 찾아왔다. 임장을 온 사람들인지 실제 구매 의사가 있는 사람들인지 알 수 없어 긴장했고 늘 정리에 대한 압박을 느꼈다. 필요한 물건이 생겨도 이삿짐이 늘까 봐 구입하지 못했다. 나는 집을 보여주면서도 집이 나갈까 봐 걱정하는 마음과 집을 보여주는 게 힘들어서 그냥 빨리 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고 얼마 전, 구매 희망자가 나타났다. 입주 희망일이 예상보다 빨라서 우리가 이사 갈 집을 급하게 알아봐야 했다. 남편은 다음 날 바로 휴가를 냈고, 남편이 미리 봐둔 집 몇 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사이 전세 가격이 갑자기 1억 이상 오르거나 인터넷에 올라온 내용과 전혀 다른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살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냄새나고 더러운 집이 그나마 가격이 가장 저렴했다. 그럼에도 나는 별로 실망스럽진 않았다. 내 목적은 지금보다 더 좋은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남편 마음의 평안함이었기에 마음을 다 비운 상태였다. 그곳에서 다시 쓸고 닦고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서 우리에게 맞는 상태로 바꿔가며 살면 된다. 어디서든 다시 감사한 부분을 찾아가며 최고가 아닌 최선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좋은 집에 살 때도, 마음에 안 드는 집에 살 때도 있지만 그 안에 거하는 우리의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든 우리의 행복한 추억으로 집을 따뜻하게 데우면 그게 가장 좋은 집 아닐까? 상사의 불합리한 말과 태도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와도, 거친 친구의 못된 말과 행동에 눈물이 찔끔 나와도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가족을 생각하면 모든 시름이 덮어지는 가정이면 족하지 않을까? 그런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라면 식탁 위에 야채를 다져 넣은 달걀말이와 두부를 송송 넣은 된장찌개 한 그릇만 있어도 살맛 나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나는 남편에게 오늘 본 집 중에서 어디로 가더라도 괜찮다고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얼마 전, 남편의 생일에 아이들이 준비한 생일 선물

 


  집을 둘러보고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와 커피 한 잔씩 내려 식탁에 마주 앉았다. 늘 그렇듯 나는 디카페인 라테, 남편은 아메리카노. 비 오는 평일에 창밖을 보며 따뜻한 라테를 마시는 일은 나에게 큰 행복감을 준다. 게다가 오늘은 이렇게 밝은 낮에 혼자가 아니라 남편까지 있으니 더 바랄 게 있을까? 남편은 얼음이 동동 띄워진 커피를 꿀꺽꿀꺽 들이켜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커피 고마워. 아무래도 그냥 여기 살아야겠다."


  가장 저렴한 집으로 갈 거라고 생각한 내 예상을 깨고 남편이 전혀 다른 말을 한다. 놀란 나는 되물었다.

  "어? 그게 무슨 말이야? 1년 동안 집을 보여줘서 이제야 나갔는데 이사를 안 간다고? 여기 집에 온다는 사람은 어떡하고. 나는 아까 그 집도 정말 괜찮아. 청소만 깨끗이 하고 들어가면 괜찮을 거야. 전세가 원래 다 그렇지."


  남편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더니 말을 잇는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근데 거기서 우리 가족이 살 생각을 하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 너무 고생할 거 같아. 여기서 사는 게 너나 애들한테도 제일 좋은 것 같아.  그리고 여기 집도 싸게 파는데 전세 가격이 생각보다 너무 올라서 중간에 이것저것 돈 나가고 할 거 생각하니까 괜히 돈만 버리는 것 같네.

  여기 온다는 사람에게는 내가 지금 바로 부동산 찾아가서 잘 말하고 올게. 내가 오늘 집 알아보고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빨리 결정해서 말해주는 게 그 사람에게도 좋을 것 같아. 이제 마음은 훨씬 편하다. 사실 여기 대출이 많은 건 아니니까 계속 여기서 살자."


  남편의 말에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동안 집을 보여주고 마음을 정리하느라 고생했던 시간들이 북받쳐 올랐다. 남편에게 다시 물었다.

  "이 집에 마음 떼느라 정말 힘들었는데……. 다시 애들한테 이사 안 가도 된다고 말해줘야겠네. 그래도 이 집에 계속 살 수 있다니까 좋긴 한데……. 근데 이 결정은 언제까지 유효한 거야? 이러고 다시 집 내놓는 거 아니지?"


  남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앞으로 일 년은 안 내놓을게. 아, 이제야 엄청 후련하다. 내 마음 이해해 줘서 고마워."

  우리의 이사는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앞으로 일 년간은.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계획을 짜도, 뜻대로 되는 일보다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더 많은 게 인생이란 걸 배워간다. 우리가 내년에 또다시 희망퇴직 대상자에 오를지라도 서로의 마음에 힘이 되어주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길 원한다. 아니,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또다시 희망퇴직 대상자에 오를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역사가, 법학자인 자크 엘륄은 그의 저서 <존재의 이유>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성찰한다.


  "환상이나 궤변으로 도피함 없이, 내일이면 훨씬 나아지리라는 희망 없이,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기대하지 않은 뜻밖의 완벽한 행복을 만들어내려는 추구 없이 행복해야 한다. 이 순간을 절정으로 삼아라. 내일 불행이 찾아올 것이다. 내일을 염려하지 마라."


  내일 불행이 찾아올 것 알면서도 오늘을 절정으로 행복하게 살라고 말한다. 더 좋아질 것에 대한 기대나 맹목적인 환상이나 도피 없이 오늘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요즘 네 살 둘째가 작은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넘어질 걸 알면서도 헬멧과 보호대를 착용하고 두 발을 안장 위에 올리고 힘껏 굴러 앞으로 나간다. 넘어지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넘어져야 덜 다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처럼 자전거가 기우뚱하면 얼른 덜 다치는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는 다시 벌떡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슬금슬금 앞으로 나간다. 조그만 입이 헤 벌어지고 두 손으로 브레이크까지 잡아가며 자전거의 묘미를 즐긴다. 나는 아이의 안장을 뒤에서 잡아주다가 조금씩 손을 떼가며 아이를 응원한다.


  "잘하고 있어. 아이구 대견하다. 넘어지는 것도 잘하네. 다시 일어나서 타는 것도 정말 용감하고 멋져!"

그리고 그 말을 다시 일어나 걷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참 잘하고 있어요, 너무 멋져요, 다리가 떨려와도 버티려 애쓰는 사람이 용감한 거예요. 넘어져도 괜찮아요.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은 이미 특별하고 귀중한 사람이에요.


자전거 타는 우리 집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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