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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 May 17. 2024

평범하고 다정한 일상을 위해

시골민박 초보사장 성장기 3


어린이날 '흐림'


  주말과 휴일은 늘 예약이 차있다. 연박이면 조금 여유가 있지만 주말 내내 1박으로 채워져 있으면 평소보다 두 배로 정신이 없다. 아이들이 집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구 하나 아프기까지 하면 정말 난감하다.


첫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린이날에는 비가 내렸다. 새벽같이 깬 아이를 돌보기 위해 누가 먼저 일어나는가 눈치싸움하는 부부의 미묘한 긴장과 풀리지 않은 피로로 하루가 시작됐다. 아침을 대충 때우고 교회에 다녀와서 아이들 각자 좋아하는 만화를 틀어준 뒤 나와 느린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숙소 청소를 했다. 오후에는 집돌이 첫째를 어르고 구슬려서 아이 둘 차에 태우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저녁 뭐 먹을지 메뉴 걱정만 한 시간 넘게 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외식을 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대형마트에서 장난감을 사주는 (내가 별로 선호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집에 와서는 얼른 씻기고 얼른 재우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 속도에 발맞추지 않는 당연한 아이들의 시간을 계속 재촉하며 결국 짜증을 냈다.


운 좋게도 5일부터 들어오신 손님이 3박 일정이셔서 다음 날은 여유가 있었다. 아이들 데리고 설악자생식물원에 가서 뛰어놀고, 부엉이 박물관도 가보고, 맛있는 밥도 먹었다. 비 온 뒤 맑음이라더니 날씨가 좋았다. 습기 없는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코 끝을 건드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보노보노 같은 얇은 구름이 물결처럼 퍼져있었다. 중간중간 뭉게구름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제 곧 여름이구나, 싶었다. 이렇게 시간이 빠르고, 아이들도 훌쩍 커버리는데 이 소중한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겨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엉이 박물관에서


가정의 달이라며...


  부처님 생신 이틀 전부터 둘째 아이가 아팠다. 해열제로도 열이 잡히질 않고 컹컹대는 기침도 심했다. 첫날은 아이가 기운이 없어 거의 약기운에 잠만 잤다. 둘째 날부터는 기침은 여전하지만 기운이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자기가 놀고 싶은 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떼쓰고 보채고 울고 짜증 내며 혼을 쏙 빼놓았다. 14일에는 첫째의 운동회여서 나와 남편 둘 다 체력을 불사르고 왔다. 입실과 퇴실이 매일 있던 석탄일 연휴 기간, 아이들 돌보랴 숙소 세팅하랴 정신이 없는 와중에 비바람도 불어와서 야외 바비큐 불가 문제로 (미리 공지했음에도) 컴플레인도 들어오고, 하루는 숙소 이불이 찢겨 있고 유리컵도 금이 가고, 오픈 이래 최악의 숙소 상태를 목격하는 등의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픈 둘찌

체력과 면역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내 모든 정신력과 체력을 끌어모아 연휴를 치르고 나니 내가 병이 도졌다. 입안이 헐고, 목이 까끌거리는 인후통이 시작됐다. 귀가 간지럽고, 등에 두드러기도 생겨났다. 처음엔 대상포진인가 긴장이 되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지치다 보니 가정의 달 무색하게 우리 가족은 별로 즐겁지 못했던 것 같다.


오늘은 오후에 둘째 아이와 마당에 앉아 모래놀이를 했다. 그새 참 많이 컸다. 어떨 때는 하루가 천년같이 길다가도 돌아보면 야속할 만큼 빨리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마음의 다정함을 지키는 일이 쉽지가 않다.  손님을 맞이할 때는 한없이 친절하다가도 정작 아이들에게 다정하지 못한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할 때면 어린 시절 생계를 책임지느라 늘 바빴던 모부의 빈자리로 외로웠던 내 모습이 떠올라 아이들에게 더욱 미안해지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내가 느꼈던 결핍을 아이들은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죄책감으로 돌아온다.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다정한 가족의 모습은 평범한 게 아니라 노력이 필요한 종류의 것이다. 다정한 삶은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환경, 사람, 공간, 자원 모든 것들이 함께 돌아갈 때 조금 더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상은 그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져 굴러가기가 쉽지 않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는데 우리는 시간도 돈도 없는 생계형 자영업자다 보니 더 그렇다.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갈 수 있을까. 숙소일은 연휴, 주말, 아이들 방학 때가 가장 바쁜데, 이 시간들을 아이들과 더 잘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아진다. 그래도 지난밤 첫째 아이가 "엄마 오늘 행복했어"라고 말해주는데 고마움과 미안함이 올라와 울컥했다. 숙소 사장이기 전에 좀 더 다정한 엄마가 되기 위해,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좀 더 아이들에게 다정한 세상이 되기 위해 나와 맞물린 세상의 문제들을 좀 더 세밀하게 살피고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겠다는 조금은 거창한 생각도 따라온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운동회, 행복한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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