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유 Apr 26. 2024

두근두근 첫 손님

시골민박 초보사장 성장기 1


첫 예약이 성사되었다! 


 아직 어떤 숙박 플랫폼에도 등록하지 않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만 열었을 때, 한 손님이 민박 블로그를 우연히 발견하고 직접 문자로 예약을 문의하셨다. 첫 직장의 입사 합격 통지를 받은 것 마냥 기쁘고 신기하면서도 믿기지 않고 괜한 불안이 꿈틀댔다. 그리고 '와 이제 공은 던져졌구나,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에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혹여나 문자에 마음 상할 문장이나 뉘앙스는 없는지, 맞춤법은 다 맞는지 취재기자로 일하면서 기사를 송고할 때보다 더 마음이 조여 오는 긴장감이었다. 문자 하나에 우리 가족에 생계가 달렸다는 과한 비장함은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딘가 모르게 안쓰럽기까지 하다. 나는 평소에 쓰지 않던 이모티콘을 이것저것 넣었다 뺐다 하며 조금이라도 더 친절한 뉘앙스를 풍기려고, 그러면서도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도록 '적당한' 문구를 만들어내려고 고군분투했다. 그 어렵다는 '적당함'을 찾기 위해 애면글면하는 초보 사장의 지난한 글쓰기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첫 숙박 예약이 드디어 성사되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진짜 예약이 된 건가. 친구가 모르는 번호로 장난치는 건 아니겠지. 신종 사기도 아니겠지'라며 사장이 오만가지 의심을 화수분처럼 창조해 내는 동안 뜰지기 느린은 콧노래를 부르며 그저 이 상황을 신기해하며 내게 말했다. 


 "이 순간을 즐겨, 즐기는 거야"


하지만 바야흐로 손님이 오시기 전날 밤. 유유자적하던 느린도 긴장모드가 되었다. 느린과 나는 새집 냄새가 코 끝을 0.1초라도 스치지 않도록, 먼지 한 톨 눈에 띄지 않도록 무균실 방역 수준의 청소를 하고 웰컴 푸드와 엽서, 음악, 조도 등을 무대감독의 마음으로 세팅하느라 몸이 축나는지도 모르고 밤샘작업을 했다. 노동만 고된 게 아니라 손님이 왔을 때 벌어질만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렸다 지웠다 하느라 작업 막바지에 내 멘탈은 쿠크다스가 되었다.  

첫 손님 오시기 전날 밤, 청소하다 넋이 나간 고유사장


초보사장의 첫 업무


  2023년 9월 1일 금요일. 체크인 시간이 넘어가는데 감감무소식.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소리,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 


 "사장님, 저희 도착했는데요. 고유의 뜰이 안 보이네요"


분명히 내비게이션 상에는 도착했다고 떴다는데 내 눈앞에는 아무도 그 누구도 보이지가 않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빠른 상황판단과 직접행동이다. 


 "손님, 일단은 큰길 쪽으로 다시 나오실 수 있을까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우사인볼트의 스피드로 뛰어나갔다. 윗 골목에서 차를 돌려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달려갔다. 저 멀리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드는 우리의 첫 손님을 향해 나는 달렸다. 그의 인간 내비게이션이 되어 숙소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일. 시골 민박 사장의 첫 미션을 완수했다. 어렵게 만나면 더욱 반가운 법. 뿌듯했다.


고유의 뜰에 정식으로 첫 손님이 오셨다. 나와 문자를 주고받았던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사람이 약속된 날짜에 정말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 신비로움이란, 전날 밤늦은 시간까지 세팅하는데 진을 빼느라 달아나버린 넋이 손님 등장과 함께 뿅! 하고 돌아오는 막강한 힘이었다. 


"고유의 뜰에 오신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손님이 남겨주신 방명록(좌)과 따로 보내주신 문자(우)

이전 07화 고유하고 느린 사장의 속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