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숙소 만들기 3단계 마당 정원 가꾸기
지난겨울 땅 속 깊이 심어 둔 튤립 구근이 추운 날씨를 이겨내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함께 심은 무스카리와 수선화도 얼굴을 쏙 내밀었다.
고유의 뜰을 열고, 아니 고성으로 이주 후 첫겨울을 보냈다. 강원도의 바람과 눈, 추위에 적응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동파방지와 제설장비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한파로 숙소에 온수가 제대로 안 나올 때도 있었고, 눈이 무릎까지 쌓여서 도저히 차가 들어올 수 없어 손님께 취소를 요구하고 환불을 해드린 일도 있었다. 하루하루가 긴장감이 도는 겨울이었다.
내 어깨까지 올라오는 눈벽을 직접 만들어 본 것도 처음이다. 안쪽 마을까지 올라와주신 제설차 기사님과 포크레인을 끌고 우리 집 마당의 눈을 치워주신 앞집 아저씨 덕분에 그래도 무사히 겨울을 보냈다. 삽을 들고 끙차끙차 눈 치우고 있을 때 이웃의 삼촌들이 제설 장비 들고 등장할 때마다 가슴 설레고 반해버렸다.
3월 춘분에도 눈이 내렸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과연 구근들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나 걱정했는데 해가 길어지고, 바람이 따뜻해지니 놀랍게도 꽃들이 자라났다. 아직 잔디는 누렇고, 남천 잎은 폭설에 다 떨어진 채로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데 자기만의 속도와 고유한 방법으로 자라난 꽃을 보니 겨우내 무력해진 마음에도 벅찬 감동이 문을 두드렸다.
집 앞마당에는 틀밭을 직접 만들어 다양한 채소 모종을 심었다. 마당 가장자리에는 손바닥 만한 에메랄드그린을 묘목을 심고, 화단에는 꽃씨를 뿌렸다. 기다림 속에서 식물들이 자라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며. 하지만 숙소 앞마당은 사정이 다르다. 첫 손님을 받기 전까지 '뜰'의 느낌이 확 드러나도록 잘 갖춰진 정원을 만들어야 했다. '기다림'은 사치였다. 큰 나무와 그라스, 푸른 잔디를 잔뜩 구매했다. 나무가 자라나는 시간을 돈으로 산 셈이다.
숙소와 길가의 경계에는 1.5m 블루엔젤을 약 0.5m 간격으로 10그루를, 살림집과 숙소의 경계에는 그보다는 작은 1m짜리를 10그루 심었다. 숙소 통창에서 바라보는 야외테이블 존에는 1.2m 에메랄드그린 다섯 그루, 숙소 데크 앞에는 내 키만 한 그라스 4주와 작은 그라스, 수국 등을 심었다. 마당 입구에는 2m가 넘는 큰 배롱나무 한 그루와 라일락, 셀렉스가 한 그루씩, 그리고 홍가시 15주가 자리 잡았다. 여기까지가 다 구매한 것들이다. 조경수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쓸 줄 누가 알았나..
정원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고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 보였다. 가득 채운 것 같아도 휑~해 보여서 마음에 안 찼다. 하지만 나무를 더 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돈을 써버렸다. 결국엔 시간이 뜰의 빈 곳을 채워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가 조금은 낙심했을 때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익산에 사는 모부가 차로 5시간을 이동해서 우리 집까지 왔다. 아빠가 5년 넘게 키운 남천 30그루를 차에 가득 싣고서. 150평 텃밭을 두 손으로 일구고 벽돌 하나하나 쌓아서 화단을 만드는, 직접 용접해서 온실을 만들고 드릴 하나로 무엇이든 고치는 시골 맥가이버 아빠의 등장은 나에게 메시아의 임재의 순간이었다. 前 꽃집 사장 20년 차 부부의 쿵~짝!으로 가드닝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여름날의 남천은 무성한 초록이었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아빠는 새로 이사 온 식물들에게 물을 흠뻑 주었다. 물줄기를 따라 무지개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당이 정말 고유한 뜰이 되었다. 그 모습을 엄마와 평상에 나란히 앉아서 바라보았다. 가을에 남천이 붉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겨울에 붉은 남천열매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이 얼마나 예쁜지 말해주는 엄마의 목소리가 무지개처럼 빛나서 그 순간만큼은 엄마가 아닌 열일곱 소녀 계순과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다 큰 것처럼 보이는 정원의 나무들도 계절에 따라 계속 달라지겠지. 돈으로 큰 나무는 살 수 있어도, 날씨와 시간에 따라 또 다른 모습으로 생동하는 식물의 변화는, 그러니까 기다림이 주는 선물은 살 수 없을 것이다.
모부가 떠나고 이틀 뒤 잔디 200장이 왔다.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느린은 직장으로 다 보낸 뒤 홀로 잔디를 깔기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시작했는데 느린이 퇴근할 때까지도 마무리하지는 못했다.
잔디 한 장 우습게 봤는데 생각보다 무거워서 옮기는 일이 만만치가 않았다. 간격을 잘 유지하면서 깔아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라 시간이 들기도 했다. 옛날 농담에 '잔디 깔고 대학 들어왔냐'는 말이 있는데, 어쩌면 그게 실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고된 노동을 마쳤다. 뜰이 마음에 쏙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