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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 Apr 19. 2024

고유하고 느린 사장의 속도

시골숙소 만들기 4단계. 영업신고와 성수기


"돈도 많이 들었는데 성수기 장사로 재미 좀 봐야지 않겠어?"


  6월 말이 되자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숙박업은 7-8월 여름휴가철이 성수기다. 이때 바짝 벌어서 1년을 산다는 여러 숙박업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집을 새로 짓는 일은 아주 사소한 변수들로 계획된 예산에 지각변동이 생기기 마련인데, 내 생각보다 더 크게 마지노선을 훌쩍 넘어 버리는 일이었다. 새 집에 물건이 채워질 때마다 대출금도 쌓여가는 형편이었으니 성수기 장사에 마음이 매달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손님이 물 밀듯 이 지역으로 들어올 때 '고유의 뜰'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는 주변인들의 충고 역시 누가 봐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 성수기 오픈, 하자고 들면 못할 일도 아니었다. 공간 정리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가열차게 예약을 받으면 될 일이었다. 해답은 아주 간단했다.


문제는 이 숙소의 사장 '고유'는 과도하게 진지하고 복잡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설상가상 사장 남편의 이름은 '느린'이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 붙인 이름으로 삶의 지향과 자신의 성정이 모두 농축된 개명이다. 우리의 숙소 프로젝트는 애당초 복잡하고 진지하고 느리게 진행될 운명을 타고났다.

 

먼저 '느리게' 편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좀 빠른' 사장이 숙박업 신고를 하러 갔더니 '좀 느린' 사장 남편이 건물 등기를 아직 안 했다는 사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좀 빠른'이 부랴부랴 등기를 치고 다시 보건소로 가서 숙박업 신고를 하려고 보니 건물이 숙박시설이 아니라 일반주택으로 되어있어 영업신고를 못한다는 황당무계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좀 느린'과 건축사가 민박으로 갈지, 숙박시설로 갈지 대화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자'는 마음이었는지 어찌 되었든 정리가 확실하게 안되었던 것이다. '좀 빠른'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당일에 모든 것을 해결해 보자는 일념으로 '좀 느린'과 함께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게 되고 며칠간의 현장 실사 끝에 '고유의 뜰'은 농어촌 민박 허가를 받게 된다. 느릴 뿐만 아니라 복잡했다.


다음으로 '진지하고 복잡한' 편에서 보자면 우리 민박 이름이 '고유의 뜰'인데 우리는 정말 고유한가, 돈이 없는 건 맞지만 무리하게 성수기를 굴리는 게 맞는가, 우리 아들래미 인생 첫 초등학교 여름방학인데 맨날 청소만 하면서 보내는 게 타당한 일인가, 우리는 과연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게 확실한가 고유한 사장과 느린 뜰지기는 (사장 남편은 뜰지기로 자신의 직분을 명명했다) 밤샘 토론을 이어갔다. 정신 차려보니 이미 7월이었다. 아니 이건 복잡할 뿐 아니라 '느리게' 편이 아닌가.    


고유하고 느리게 우리만의 속도로

  고유, 라는 말은 사전에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타고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성질'이라고 적혀있다. 고유하게 살아가는 일이 어찌나 어려운 세상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 세상의 잣대에 나를 세워두면서 나만의 색을 잃어가고 있는 순간을 숱하게 마주했다. 가족 안에서, 학교에서, 대학에서, 직장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만든 좁은 틀에 타인을 끌고 들어와 판단하는 부끄러운 자신을 당혹스럽게 발견하기도 했다.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이제는 조금 숨 트고 살고 싶어서 서울을 떠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느린도.


스스로를 고유라고 이름 지은 것은 나 자신도 타인도 재단하지 않고 사랑하고 싶다는 소망이자 다짐이다. 고유의 뜰도 그런 마음으로 공간을 채우고 싶었다. 하루를 머물더라도 머문 이가 충만하게 그 시간과 공간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어릴 적 우리 집은 1년에 한 번 이상 이사를 다녔다. 더 좁은 집으로, 학교와 더 먼 곳으로 옮겨 다녔다. 언젠가는 더 좋은 집에 가게 될 거라는 희미한 희망을 데리고. ‘나중에 더 큰 집에 가면’, ‘나중에 더 좋은 집에 가면’이라는 마음은 지금 내게 필요한 많은 것들을 유보하도록 만든다.


다행히도 나의 모부는 잠시 살 곳이라도, 아무리 허름한 집이라도 좀 더 나아지도록 손수 공을 들였다. 버려진 주인집 뒷마당을 텃밭으로 가꾸고 단칸방이지만 오래된 가구들을 잘 배치해서 언니와 내가 서로 독립된 공간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등 사랑이 묻은 기억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엄마는 청소의 신이었고, 아빠는 유지보수공사의 달인이자 맥가이버였다.


신혼 초 서울의 아파트값이 하늘로 치솟을 때, 빛이 제대로 들지 않는, 오래된 빌라에 곰팡이와 벗하며 살았다. 그마저 전세사기를 당해 언제 이사를 가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신세였지만 모부님께 배운 게 있어서인지 공간 구석구석 나와 느린의 색깔로 품과 마음을 들였다. 그 공간을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다.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my Place, my Favorite)를 쓴 최고요 작가는 "집을 가꾼다는 것은, 우리의 생활을 돌본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고유의 뜰도 손님이 머무는 동안 일상의 고단함과 염려를 내려놓고, 오롯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돌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우리에게는 조금 더 세심하게 살피고 채워갈 시간과 여유가 필요했다. 7월 중순의 어느 날,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찬 내게 느린이 말했다.


  "사장님, 우리 가을에 엽시다!"

 

아주 오랜만에 마음에 초록 바람이 불었다. 홀가분하고, 경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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