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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 May 10. 2024

극 내향형 사장은 언제쯤 안 불안할까

시골민박 초보사장 성장기 2

  두근두근 첫 손님이 다녀가신 후에도 '첫' 손님은 계속되었다. 처음으로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손님,  첫 평일 숙박 손님, 첫 비 오는 날의 손님, 첫 연박 손님 등 끊임없이 도래하는 처음으로 가득한 9월이었다. 첫날은 처음이라 긴장, 처음 플랫폼으로 예약받은 후엔 리뷰가 어떨지 긴장, 2박 이상에는 무리가 없는지 또 긴장. 소심하고 겁 많은 내향형 인간인 나는 몇 날 며칠을 긴장상태로 지내다 두통과 소화불량이 생겼다.


민박 개업 후 처음으로 비가 왔던 날에는 이른 새벽부터 걱정이 산더미였다. 비 오는 걸 좋아하는 나도 여행 때만큼은 맑고 화창한 날씨가 기다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비 오는 날의 손님을 떠올리며 마음이 계속 쓰였다. 산과 바다가 참 멋진 고성인데, 야외 정원이 아늑하고 쉬기 좋은 고유의 뜰인데 이런 것들을 누리지 못하게 되어 이번 여행이 아쉽고 서운하시진 않을까 작은 염려가 떠나질 않았다.


걱정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나는 평소보다 좀 더 실내공간을 세심하게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부터 동분서주하며 마트와 동네 서점, 카페를 돌아다니며 집 안에서 즐거움을 더 누릴 수 있는 요소들을 물색해 사 왔다. 맛있는 디저트, 컬러링 북과 예쁜 엽서들, 스마트폰 삼각대(셀카봉), 꽃을 사 와 적절한 공간에 배치했다. 야외 바비큐를 포기할 수 없어 부랴부랴 타프를 사 와서 난생처음 타프를 설치해보기도 했다. '초보자도 할 수 있는 타프 치는 법' 영상을 틀어놓고 비 맞아가며 두 시간을 애면글면하면서 '과연 오늘 안에 칠 수 있는 건가' 회의감도 몰려왔지만 포기하지 않고 첫 타프 설치를 성공시켰다. 그야말로 성공시대..! 들인 마음만큼 손님맞이 엽서를 쓰는데 평소보다 글이 길어지기도 했다.


비를 뚫고 도착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후다닥 집으로 들어온 내향형 초보 사장. 행여나 부담스러우실까 차마 가까이 다가가진 못하면서도 잘 지내고 있는 건지 궁금한 마음에 정원 너머의 숙소 외벽을 바라보며 노심초사했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그럴 거면 그냥 들어가서 물어봐"라며 농을 던졌다.


11월 결혼식을 앞두고 우왕좌왕 정신없이 한 주 한주를 보내는 중에 "힐링하러 가자! 바다 가서 사진도 찍고 쉬고 오자"하고 온 1박 2일인데 출발 전부터 쏟아지는 비 때문에 속상했거든요. 사진도 못 찍고 그냥 숙소로 바로 가자! 하고 왔는데, 멀리서 보일 때부터 "와... 저거다" 진짜 예쁘다 감탄하고 사장님의 밝은 환영에 흐뭇했고 숙소 들어와서 속상했던 기분이 싹 다 풀렸어요.


비 오는 날 오신 손님이 남겨주신 방명록

  비 오는 날 오셔서 비 오는 날 떠나신 예비부부 손님, 내 걱정을 무색하게 한 엽서 내용에 긴 안도의 한숨이 흘렀다. 그 뒤로 천천히, 마음에 뿌듯함이 수채화 물감이 물에 퍼지듯 스며들었다.  


숙소 일이란 게 손님이 객실로 들어가시는 순간 어느 부분은 내 손을 떠나는 것 같다. 카페에서 일할 때는 일일이 손님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고,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즉각적으로 행동을 취할 수 있어서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이 불안과 초조는 친절과 배려라는 단어로 포장할 수 없는 '통제욕구'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더 많은 손님들을 만나고, 상대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었다.


손님이 머무는 시간 동안은 그분들이 나를 먼저 찾지 않으시는 이상 굳이 다가가지 않고 그들만의 시간을 온전히, 오롯이 내어드리는 것이 호스트의 덕목 중 하나인 것 같다. 물론 이건 내가 내향형이어서 이런 덕목을 추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 통제를 벗어난 그 시간 동안 상대방이 어떤 기분과 감정을 느끼는지 섣불리 상상하고 초조해하는 건 정말 건강하지 못한 일이다.


숙박 경험은 주인장이 기획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이가 자신의 존재대로 고유하게 만들어 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들만의 이야기와 경험으로 채워나가는 곳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알아가는 중이다. 누군가가 공간에 머무는 동안 나는 그들을 잘 서포트하면 되는 것일 뿐.  


아, 언제쯤 나는 프로페셔널 사장이 될 수 있을까. 모든 게 처음이어서, 늘 처음의 마음 가짐으로 손님을 오늘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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