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민박 초보사장 성장기 4. 석 달만에 찾아온 권태기, 변화가 필요하다
부부가 함께 준비하고 연 숙소이지만 첫 시작은 남편 느린의 꿈이었다. 그런데 느린이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숙소의 모든 일은 내 몫이 되었다. 매일 청소를 하고, 새로운 손님을 위한 세팅을 하고, SNS 홍보도 하고, 예약시스템도 관리하면서 4시 이후 귀가하는 아이들까지 돌보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숙소 오픈 첫 해의 바쁜 석 달을 보내는 중에 아이들의 겨울 방학이 시작됐다.
서울에 살면서 해마다 반복되는 남편의 긴 부재와 하루가 천년같이 느리게 흘러가는 지난한 육아의 시간 속에서 나는 서서히 멍들어갔다. 간간이 들어오는 프리랜서 업무와 학업을 무리하게 병행했지만 자아실현이 번번이 좌절되고 경력 단절이 길어지며 사회에서 내 존재가 납작해지는 것만 같아 불안했다. 그런데 숙소를 운영하면서 그때의 불안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민박업도 우리에겐 엄연한 '공적' 일인데 업무의 패턴은 가사노동과 비슷하다 보니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우리 집은 대중교통이 들어오지 않는 (약간의) 산골인 데다가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자동차도 없어서 나는 집에서 꼼짝없이 고립되어 청소와 육아를 했다. 체크아웃과 체크인 사이 제한시간 내에 최선을 다해 청소를 끝내고 나면 마냥 퍼져서 쉬고 싶은데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일상. 서울에서처럼 나에게 집은 여러 가지 일들과 생활이 뒤엉키는 번잡스러운 노동의 공간이 되었다.
그 사이 느린도 회사 일에 점점 지쳐갔다. 대안학교 교사로 일할 때는 자신의 가치와 신념과 결이 맞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회사 일은 사회운동과 다른 법. 180도 달라진 업무에 적응하고 영리기업의 문화를 겪으면서 마음에 부치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당연히 바쁘기도 바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예민해지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돈이 좀 없어도 가족이 함께 자연 가까이 여유롭게 살자던 다짐 무색하게 서울에서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이 되었다.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민박 사장 3개월 차에 권태기가 찾아왔다. 감사한 손님들이 훨씬 많았지만 힘든 손님들도 숱하게 겪기 마련인 게 숙박업자의 숙명이다. 손님이 떠난 후 숙소 문을 여는 그 순간이 두렵고 막막해지는 일이 잦아졌다. 어떤 날은 몸이 버티지를 못해 일부러 예약을 닫아놓기도 했다. 예약을 닿아놓은 날들의 숙박비가 느린의 월급과 거의 비슷해지는 상황이 오자 우리 둘 다 현타가 왔다.
긴 고민 끝에 느린이 퇴사했다. 지속가능한 숙소 운영을 위해, 아니 우리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이제는 정말 둘이 함께 민박을 운영하기로 했다.
느린이 처음 청소를 같이 하던 날, 내가 만든 청소 매뉴얼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움직이느라 처음에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분명 둘이 같이 청소를 하는데 혼자 하는 것보다 손이 더 많이 가는 느낌이랄까. 그동안 숙소를 맡아왔던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느린의 업무 소화 능력(?)에 답답해질 때 나도 모르게 꼰대 상사처럼 싫은 소리가 툭 뱉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러면 서로 또 감정이 상한다. 함께 일하려면 여러모로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걸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닫고 고쳐나가는 시간이었다.
내가 외출을 해야 해서 느린 혼자서 숙소 청소와 체크인 세팅을 했던 날, 나가 있으면서도 잘하고 있나, 빠뜨린 건 없을까 노심초사하다 집에 돌아왔는데 느린이 나를 꼭 안아주면서 그동안 혼자서 고생이 많았겠다고,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한마디에 권태감이 사라지고 이 사람과 함께 더 재미나게 무언가를 만들어나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동안 나는 그냥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 한마디가 절실했었나 보다. 연말연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성수기를, 눈이 허벅지까지 쌓이는 지난한 겨울을 보내기 위한 마음의 장작을 잘 쌓아놓는 그런 시간이 우리에겐 너무도 필요했다. 왜냐면.. 겨울 진짜 힘들었거든요.. 눈물 없이 말할 수 없는 고유의 뜰 겨울나기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