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지윤서 Jul 28. 2024

<봉우리>를 노래한 음유시인의 명복을 빌며

 SBS 8시 뉴스를 보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김민기가 별세했다네."

"뭐!?"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TV 앞으로 달려갔다. 소극장 '학전'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듯한데 돌아가시다니... 앞치마를 두르고 선 채로 뉴스를 보았다.


뉴스에서는 그가 암 투병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할 만큼 다했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했다. 마음이 숙연해졌다. 향년 73세.


사회는 그를 노래로 저항한 음악인이라 평하지만, 내게 그는 철학자이자 음유시인으로 남아 있다.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목소리로 시작하는 노래 <봉우리> 때문이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 생각지를 않았어 /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 혼자였지 /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 오르고 있었던 거야 /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 고함도 치면서 /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 허나 내가 오른 곳은 /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야 /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하면서 /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 혹시라도 어쩌다가 /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 봉우리란 그저 /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 우리 땀 흘리며 가는 /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봉우리는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며 '바로 지금'이 우리가 오를 봉우리라는 가사는 내게 그 어떤 철학서보다 울림이 컸다. 


이 노래는 1984년 LA 올림픽에 참가했으나 메달을 따지 못하고 조기 귀국한 선수들을 위해 MBC에서 특별기획으로 <내일을 향해 달려라>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며 탄생한 곡이다. <주간한국> 2001년 2월 28일 자 기사('김민기의 노래모음')에 따르면, 드라마 <모래시계>의 대본을 쓴 송지나 작가가 이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김민기 선생에게 주제음악을 의뢰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이 곡은 어떤 식으로든 탄생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가 노래 가사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 학부라고도 불리는 서울대를 나왔다. 말하자면 학창시절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봉우리에 올라서서 세상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를 보았다. 작은 배들이 오고 가고 수많은 생명을 품은 바다.


그는 한때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는데 그때 함께 일했던 동료이자 당시 소년공이었던 곽기종씨는 그가 스쳐 지나가듯 한 말, 즉 "계산적으로 살지 말고 느끼는 대로 살아라"라는 그 한 마디를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관련 기사: "시청률 1위 해도 빚진 마음... '김민기 다큐'는 아직 안 끝났습니다" https://omn.kr/29e41 ).


기사를 읽으며 자신이 뱉었던 말 그대로 살다 간 그의 면모에 다시금 경외심이 솟았다.


<봉우리>라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나무등걸에 걸터앉아 세상 풍경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두루두루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나는 예수와 부처를 본다.      


늦게나마 선생의 영면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


https://youtu.be/yyEOyD0FIEY?si=CI3YJ5-cR9CqFn3C



작가의 이전글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