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내 삶은 도망의 연속이었다. 알 수 없는 미래가 무서워 도망치기도 했고, 때론 앵무새처럼 명문고와 명문대만을 외치던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기도 했고, 또 때론 그런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도망치기도 했다. 도망자의 삶에는 언제나 약간의 불안함과 약간의 찝찝함과 약간의 공허함이 함께했다. 그렇지만 우습게도 그는 열심히 살았고, 명문고에 진학했다. 그렇게 그는 왜 가야 하는지 근원적인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럴듯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명분 뒤에 숨어 속절없이 10년, 그 이상의 시간을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연소시켰다.
열심히 노력한 자의 운이 나쁜 결말인지 도망자의 필연적인 숙명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대학에 누군가 정해준 전공으로 입학을 했다. 그 후 6개월 정도를 다니다 또 도망치듯 군대에 입대를 했다.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는 출처 모를 어떤 말처럼 거기서도 원치 않게 취사병이 되었다.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루라도 빨리 세상이 사라지길 바라며 또 도망치는 것이었다.
입대 후 약간의 시간이 흘러 운이 좋게도 간부식당에 스카우트되었고, 생활관에서 사는 것이 아닌 식당 안 3평 남짓한 쪽방에서 홀로 사는 숙직병이 되었다. 퇴근 후에 항상 혼자 있게 되면서 자연스레 나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혼자 있다 보니 자연스레 나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도 많아졌다. 사고의 초점이 내게 맞춰지다 보니 시선도 나, 스스로에게 집중되면서 하나, 둘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들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별을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내가 xx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러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점들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 못하는 것 가릴 거 없이 모조리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항상 수첩을 앞치마에 넣고 다니며 그런 점이 생각나면 일단 적었다. 그렇게 새로 발견한 나의 특성이 더 이상 적을게 없어졌을 때쯤부터는 기존의 나, 사회에서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을 더듬어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생각보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고, 다 적었거니 하다가도 어느 날 불쑥불쑥 생각이 났다. 그것마저도 이젠 적을게 없어졌을 때쯤 그동안 적은 것들을 쭉 읽으며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 이게 '나'구나!' 하면서 당당히 거울에 악수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 실제로 썼던 기록-
그제야 생후 20여 년 만에 '나'는 '나'를 인정할 수 있었다.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말이다. 일을 하면서도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하니 훨씬 일을 잘할 수 있었다. 시간조절을 하기도 좋았고, 내가 못하는 부분이 명확하니 발전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며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만 생각하던 도망자의 중심이 본인 스스로로 바뀐 순간이었다.
그렇게 도망자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도망칠 이유가 사라졌다. 무서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고, 실패해도, 성공해도, 기뻐도, 슬퍼도, 불안해도, 모두 ‘나’라는 사실은 변치 않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그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족한 게 있으면 채우면 되고 할 게 없으면 좋아하는 걸 하면 되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 약간의 불안함과 약간의 찝찝함과 약간의 공허함은 약간의 기대감과 약간의 책임감과 약간의 욕심으로 탈바꿈되었다.
그러나 뭔가를 하기엔 군대는 자유가 없는 곳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었다. 전역을 앞두고선 사회에 나가서 하고 싶은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강사이고 하나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가르침에서 오는 뿌듯함을 즐기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회에 나와 약 2년 정도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강사를 했고, 지금 현재 브런치의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나에 대한 공부는 사회에 나와서도 복학을 하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나에 대한 공부는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보지 않은 새로운 분야가 있다는 건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있다는 것. 그렇게 복학 후 이것, 저것을 내 몸에 가져다 대보며 내게 맞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았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현재의 전공을 접했고, 그렇게 내게도 하고 싶은, 좋아하는 분야가 생겼다. 그 후 진로를 바꾸겠다 마음을 먹고 열심히 공부하여 높은 성적으로 전과에 성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전역 후의 그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주변에서 반대하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다. 왜 전과를 하느냐. 왜 대학생이 돈을 버느냐. 왜 구태여 독립을 해서 힘든 길을 자초하냐 등등 말이다. 응원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뭐라 해도 상관없었다. 누가 뭐래도 내가 좋아서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니까. 후에 일이 잘못되어도 그건 '나'이고, 그걸 양분 삼아 한층 단단해져 더 나은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물론 현재 나의 선택이 다 최고의 결과를 낳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난 완벽하지 않으니까. 난 여전히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으니까. 이 또한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아니겠는가. 이 길을 택한 후로 아쉬움이 남을 때는 있을지언정 단 한 번도 후회가 남거나 시간을 돌리고 싶은 순간은 없었다. 그 당시 나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좋다. 부끄럽지만 이 말을 하기까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가 뭐래도 나는 지금 그 자체로 ‘아름다운 봄’이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 일부분을 적으며 글을 마친다.
내가 눈 떴을 때,
때는 바야흐로 봄이었다.
대지는 척박하고 바람은 거칠었다.
뿌리를 잘못 내린 듯 아무도 축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봄은 아름다웠다.
이번 글의 추천 곡은 뮤지컬 '팬레터' 中 '내가 죽었을 때'입니다. 독자분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