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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N Dec 30. 2021

몸 안의 밤

숨이 턱 막혀온다. 내 발자취와 이어져 있는 인연들의 인스타그램 소식과 사진들 사이사이 보이는 과거의 파편들이 목을 옥죄어 온다. 호텔에서 일할 당시 선배가 내게 위로라며 건넸다. "그래도 추억이 될 거야." 라고. 제빙기에서 얼음 퍼내고 있던 내게 웃으며 건네던 말에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 추억이 아니라 악몽이겠죠...'. 1년 먼저 퇴사한 선배가 얼마전 그때를 회상하며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라는 명언도 있다며 소주 한 잔과 함께 읖조렸지만 내게는 경험조차 될 수 없는, 추악함과 끔찍함으로 점칠 된 악몽이다. 단순 꿈으로 치부하고 싶을 만큼.


이제는 그 곳에 있는게 아니라며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는 그 공간의 파편들에 여전히 흠칫 놀란다. 이어서 그 시간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무조건 반사처럼  "끔찍해"라는 말을 내뱉는 입술의 움직을 느낀다. 여전히 끔찍하다. 그곳에서 보냈던 나의 시간이, 스스로를 절벽으로 몰아붙이던 나 자신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게 끔 만들던 그들과 그런 나를 실패자로 꼴사납다며 매몰찬 취급하던 또 다른 이들을 떠올리자면 어지러운 색들 위 두껍게 덧칠한 검은색을 손톱으로 긁어내 억지로 마주하는 듯한 끔찍함이다. 금하나 그어진 깨진 거울의 균열처럼 순식간에, 마치 톡 하고 건들면 부스러질 것처럼 번져나가는 나의 악몽들이 소름끼친다.


여전히 과자봉지 속 부스러기들을 끄집어내듯 기억을 뒤져보다 보면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몰려온다.  위안이 되었던 것은 3년 전 같이 일했던 선배도 아직까지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때의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만이 그때의 감정들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3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유일한 위로였다. 그 선배는 나와 같이 퇴사 후 아무 회사에도 다닐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당시에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니 회사는 다녀야 하지 않을까 했으나 나는 이제서야 그 마음이 이해되는 것을 보면 선배는 나보다 더 일찍 자신을 마주하고 자신을 달래고 돌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를 마주하고 있다. 달래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끔찍한 악몽으로 자리잡혀있는 나의 파편들은 무수히도 많은 밤을 잡아먹어 버렸다. 누구나 제각기 제 몸 안의 밤이 있다. 그 밤들이 모여 깨어나기 어려운 깜깜한 어둠을 만들어내지만 가까운 미래에 더 단단해진 당신의 낮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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