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의 공백기를 끝내고 누군가를 만나서 1년 연애를 하고 사랑을 했다. 그리고 뜨겁게 데였고 3개월간은 내 온몸이 찢어지는 경험을 했다. 철들고 후부터 남자문제로 이렇게도 세상이 무너지는가를 배웠다.
그와 함께했던 날들 중 어느날은 친한 커플이 다정히 서로 이름을 부르는걸 보니까 부러워서 그사람에게 “나도 이름 불러줘!” 했었는데. “자기 이름을 부를땐 헤어질때 아닐까?“ 라더라. 정말 헤어질때 되서야 내 이름을 불렀다. 본인이 준 사랑이 내 인생에 가장 작은 사랑이었길 바라겠다면서.
헤어진 날은 출장 다녀와 지쳐있는 내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전화를 걸었고 바로 단호히 통보했다. “헤어지자. 그게 맞는거 같아. 네게 마음이 식었어. 지금 연애할 상황이 아니야.”라고 말했을땐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붙잡지도 않았고 오히려 화만냈고 "네가 나에게 감히"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건 무례한거야. 예의가 없잖아. 이별에도 시간이 필요한데 이렇게 무작정 통보하고 더 할말 없으면 끊겠다니. 네가 헤어지는걸 정했으면 적어도 내 얘기를 들어. 넌 그럴 의무가 있어. 이 전화의 끝은 내가 정해.” 라고 잔뜩 가시돋힌 말만 내뱉었다.
후회했다. 나를 만난 후 시작된 그의 갑작스런 고시원 생활과 여의치 않았던 그의 지갑사정으로 데이트때마다 내게 기대야했던 그의 무너지던 자존심도. 당장 다가온 시험과 회사의 야근에 지치고 힘들고 피곤하다던 그의 말에 이해한다 말했지만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일찍 겪었던 사회생활들이라 내게는 다 지나간 감정들이었고 다 견디고 버텨냈기에 당연히 그도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부모로부터 물질적인 사랑은 받아봤어도 정서적인 사랑을 받아보질 못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고 직장생활도 악으로 깡으로 혼자서 버텨낸 시간이 많았기에 서투른 내 위로와 충고 그리고 잔소리 그리고 그의 자격지심은 우리의 관계에 크레바스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만나면서 그를 잃어갔고 그를 만나면서 나는 나를 잃어갔다.
“바다 보고 싶다.” 라는 말은 “나 너무 힘들어. 도망가고싶어.” 라는 뜻이고, 사랑하는 이에게 “너로인해 날 잃었어.” 라는 말을 내뱉는건 ‘ 내 마음을 다해 온전히 널 사랑하지 못했기에 나를 잃었다.' 라는 고해성사에 가깝다. 남녀관계에 돈문제가 생기면 자연스레 갑을이 생긴다. 그러면 갑은 당연히 을에게 "네가 나에게 감히" 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라고 그것이 무의식중에 태도에 묻어나온다.
너무 오랜만에 했던 연애와 늘 나에게 당연히 결혼할 것 처럼 미래만 말하던 그의 태도들이 어느새 변한 것을 붙잡고 싶어만 했던 내가 있었고 돌이켜보면 그를 사랑했다기보단 그 말에 설레하던 내 감정과 나 자신이 예뻐보여서 붙잡고싶었다. 오랜만에 내 스스로가 행복해보였던 걸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했던 날들 중 3개월을 행복했고 9개월은 지옥이었다. 여자문제로 돈문제로 다음에는 말투로 꼬투리를 잡아가면 참 많이도 서로를 상처내고 서로의 밑바닥을 보이며 싸웠다. 그 경험이 이제는 누군가와의 연애할때 마지막을 어떻게 끝내야할지를 알려주는 좋은 지표가되었다.
그와 보냈던 시간들이 재밌었다기 보다는 남자친구라서, 그저 감정이 좋아서 보냈던 의미가 더욱 컸고 그가 나를 사랑하고 예뻐해주는 그 순간의 설렘이 '내가 누군가에게 오랜만에 사랑받는다'라는 생각에 만족감으로 느꼈다. 난 그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사랑받고있는 나를 사랑했던 거였다.
그와의 이별의 아픔이 추후 다른 이성을 만날때 여전히 트라우마처럼 내 앞을 가로막고는 한다. 다시 또 그렇게 아프면 어떡하지라는 그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내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시작은 해본다. 그사람과 내가 써내려갈 서사는 또 다르니까. 그리고 그를 통해 나는 또 다른 트라우마와 공생을 시작했고 내 세상은 더욱 견고해졌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늘 그래왔듯 잘 공생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