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인 중에 자존감이 낮은 친구들이 종종있다. 나도 자존감이 선천적으로 높은 타입은 아니고 무수히 많은 좌절 속에서 스스로 터득한 거라 종종 그런 친구들을 보면 이전의 내 모습이 생각난다.
특히 나는 나보다 나이많은 사람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편이라 진진짜라 유니버스라고 세계관을 형성해서 노는 편인데 내가 제일 막내지만 제일 우두머리역할이다. 때문에 소문도, 상담도 나에게 온다. 그러다 어쩌다보니 그들의 개인사를 많이 알고있고 그중 한 친구의 가정사를 듣게되었다. 그는 삶의 주체가 본인이 아닌 타인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애정 결핍이었다.
내가 던진 가장 행복했던 떄가 언제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연애했을때..?" 라는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당시 누가봐도 본인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만나서 짧은 연애기간동안 매우 고통스러워했고 상처받아 슬퍼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단지 본인 생각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있다는 사실이 자기자신을 행복하게했다는 말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물었다. "오빠, 오빠는 뭘 할때 제일 재밌어?" , "오빠는 언제 제일 행복해?"," 오빠는 10년뒤에 그리고있는 오빠 모습이 어때?" 그의 대답은 모두가 다 타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나: "오빠는 스스로를 온전히 지탱하고있다는 느낌 느껴본적있어? 오빠 스스로를 되게 안쓰럽고 연민을 느끼고 사랑스럽다고 느껴본적 없지?"
친구: 그런 생각을 어떻게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야? 나 그런거 해본적 없는데 ...
나: 오빠 오빠가 스스로를 온전히 지탱해봐야 알 수 있어. 그래야 오빠 자신이 존재 자체로 충만해져. 지난 날의 오빠를 돌보고 안쓰러워하고 안아줄사람은 오빠밖에 없어. 그게 힘들면 그렇게 될 때 까지 내가 오빠를 지탱할께. 날 믿고, 앞으로 우리 같이 지탱해보자. 잘 살아가자. 내가 뒤에 있을께. 그러면 오빠 해방이와. 속시끄러운 머리가 어느새 평온해. 새로운 세상이 열릴거야.
친구는 그자리에서 울었다. 자기에게 온전히 누가 지탱해준다고 한 적은 처음이라고.
내가 처음 나에게서 해방되었다고 느꼈던것은 25살이었다. 가족과의 불화, 스무살 부터 학교와 병행하며 시작된 회사의 폭력 이런 것들을 힘들다고 아프다고 표현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족들은 "네 얘기 내게 하지마" 라고 했고 친구들은 한창 학교만 다닐때라 내 이야기는 공감할 수 없었고, 그들의 가족은 우리가족과는 달랐기에 가족이야기도 공감할 수 없었고 내가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사실, 난 어디에도 받아들여질 수 없구나, 나는 가족에게 조차 거부당했구나. 나는 결국 나만이 구원할 수 있구나. 세상 끝에 세상이 무너져도 내 편은 오로지 나 하나이기에 내가 이겨내야한다. 무조건 버티자, 견디자. 이걸 이겨내면 난 더 강해질거고 더 단단해질거니까. 강해지면 상처안받아도되니까. 그러니까 이겨내자. " 라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아왔다.
이 힘은 늘 나늘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 됬고 지금까지 나를 살아가게하는 원동력이다. 일을 하는 모든 순간의 책임감이 버거울때 저 말이 나를 각성시킨다. 날 온전히 지탱할 수 있다는 저 자유로움은 어느새 내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날 어두운 구석에 숨어 웅크린 나를 찾아 토닥여주고 안쓰러워 달래주고 같이 울어주며 내가 마치 나의 엄마인 것처럼 달래며 공생해오고 있다. 내가 누구에게 얾매이지 않아도된다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점점 나를 해방시킨다.
해방은 내가 날 온전히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때 시작된다. 비로소 머리가 뻥 뚫린듯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될 것이고 사랑스러운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모두 해방의 낮을 그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