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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N Dec 30. 2021

사년이라는 공백,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둘러싼 수 많은 서랍칸 중 청춘사업이라는 칸은 4년째 먼지만 가득하다. 즉 4년차 솔로라는 말이다. 내가 연애를 안 하는 이유는 여러 개가 있지만 우선 서로가 물건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기고 밀었다 하며 서로의 감정의  온도를 재는 노이즈가 낀 듯한 불투명한 선들이 불안정하다. 안 그래도 누군가의 ‘무엇’이 되는 게 불편한 사람인데 더욱 투명치 못하고 마치 이리저리 뻗친 모양새를 띄는 것 같아 둥근 네모가 되고 싶은 나는 그냥 연애라는 칸을 빈칸으로 놓아두자며 스스로에게 단단한 모양새의 말을 건넸다.


누군가를 나의 일상으로 들여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조심스럽고 세포 하나하나가 민감히 반응하듯 설레는 일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두렵고, 피곤한 일이기도하다.  내가 타인을 남성으로서 일상으로 초대할 때, 이미 나의 세상은 그로 가득 차 있을 것이고 그의 몸짓 하나 내뱉는 단어 하나에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은 점점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방어기제를 세워 나의 평온한 일상을 지켜내었다.


얼마 전 나의 평온한 일상에 균열이 일었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과거의 사람. 앞으로의 내 삶 속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이름 석 자. 반가웠고 많이 변했고 좋은 순간이었지만 이내 내 일상에서 불안정한 선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머리부터 들이미는 자동차에 제길을 열렬히 달려가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지도 못한 채 너의 머리와 나의 머리가 부딪치는 것처럼 나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렸고 오르막길에  자동차가 사이드브레이크가 풀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듯 감정 제어장치가 풀린 채 나는 정신없이 일상을 빼앗겼다. 그리고 종이를 오려내듯 일상에서 너를 오려내었다. 환절기마냥 오려낸 주위가 욱신거려 아직 네가 잔재했음을 느낀다. 그 참담함을 감추기 위해 더 바쁘고 더 아픈 곳으로 몸을 내던져 이내 나는 다시 돌아왔다. 잠깐 봄인 줄 알고 새싹이 돋아났던 나의 겨울 산은 이내 다시 눈이 내려 소복해졌다. 


여전히 내 겨울 산은 눈이 소복하다. 하지만 그 옆에 푸른모양의 싹이 존재감을 알리려 아등바등 피어나고있는 모양이다. 연애라는 틀을 벗어던지니 속이 시원하다. 사실 이성과의 그런 감정교류가 내게 그리 중요치 않았다. 남들이 하니 나도 왠지 해야할 것만 같았고 이 사람이 좋으니 일방적으로 당신도 날 좋아하길 바라서, 그 모양이 당신에게 부담스럽고 어쩌면 폭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고 그 기대는 빛바랜 실망과 다시 마음을 고이접어야 하는 모양새로 돌아왔다. 내가 누군가에게 날 사랑해주길 바라서, 내가 온전치 못해 남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그런 행동들이 그들에게는 알게모르게 부담과 폭력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온전히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은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할 수 있는 일임을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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