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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N Dec 30. 2021

누군가의 '무엇'이 되는게 불편해요.

어느덧 누군가의 ‘여자친구’ 혹은 ‘애인’으로의 존재를 끝마친 지 4년차다. 4년은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그 시간 동안 유사 연애라는 썸도 있었고 누군가를 지독히도 짝사랑해보다 뒤통수도 맞는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내가 좋다는 남자들도 여럿 있었고 개중에서 나도 조금은 마음이 동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이내 어딘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고개를 불쑥 들이밀곤 했다.


나는 시간을 내서 연애하는 것보다는 남는 시간에 연애를 하는 게 좋다. 잠에서 깨면서부터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지속적인 연락은 정신을 지치게 만든다. 서로가 만나기 이전의 이어온 인간관계를 단지 ‘연인’이라는 탈을 쓰고 제지하려 들고 감정을 요구하는 그런 일련의 행동들이 불편함을 만든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혼자인 내 주변에는 끊임없는 연애를 해오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꽤 자주 물어본다. “도대체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라거나 “왜 연애를 안 해? 아니 못하는 거야? 너무 오래 혼자 있는 거 아니야?” 라고들 묻는데 위의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아직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그래.” 라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단정 짓는 말이 되돌아오곤 한다.


그저 누군가의 ‘무엇’으로 정의 내려지기 싫은 것뿐인데, 그 누군가의 ‘무엇’이라는 프레임이 숨이 막혀올 뿐이고 어딘가 주체할 수 없는 불편함이 내게 찾아올 뿐인데 단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일 거라니 너무 일차원적이고 단편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분명 그런 감정을 가지기 이전에 달의 이면처럼 무수히 많은 선이 복잡하게 이어져 있을 것이 분명함인데 하나의 선을 타고 쭉 내려가 그 결과의 모양을 짓자고 들자니 말문이 턱 막힌다.


아이유의 ‘밤 편지’는 잠 못 드는 밤이 너무 괴로워 사랑하는 당신의 밤이 평온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빚어진 노래라고 했다. 여기저기 얽히고설킨 나의 밤보다 당신의 밤이 안온하길 바라는 그 마음이 오히려 사랑에 가깝지 않나. 그려지지 않는 감정의 모양이 사랑이 아닐까. 꼭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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