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 살얼음, 아궁이, 함박눈, 입김
삼십 대 중반의 정석은 다섯 살인 딸을 위해서 가을 내내 거둔 땔감 중에서 제일 잘 마른 장작을 한 아름 골랐다. 신문지를 비벼서 솔가지와 섞어서 아궁이 안에 불을 붙인다. 뽀얀 연기와 함께 솔가지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뱀 혓바닥처럼 잔가지로 날름날름 불을 붙여간다. 정석은 오전 내내 소리 없어 내려앉은 함박눈이 소복이 쌓인 앞마당을 건너다보았다. 처마 끝엔 맑고 투명한 고드름이 줄지어 뾰족뾰족 매달려 있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은 빨랫줄엔 정석의 노모가 정성스럽게 빨아 넌 옷들이 살얼음이 끼어서 꾸덕꾸덕 마른오징어처럼 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다섯 날 난 딸아이는 정석이 숯불에서 구워낸 속이 노란 고구마를 작은 입으로 쪼물쪼물 씹었다. 아이가 한참을 입김을 불어서 식혀 먹는 고구마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딸아이가 크게 숨을 몰아 내 쉴 때마다 입 밖으로 나오는 하얀 입김이 마당에 쌓인 함박눈처럼 포근해 보인다.
정석은 빨간 불덩이가 가득한 아궁이를 한참이나 깊은 눈빛으로 들여다봤다.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불꽃이 마치 아내가 붉은 피를 토해내던 마지막 모습 같아서 정석은 끝내 고개를 돌려 고드름처럼 투명하고 맑은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인생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 긴긴 겨울을 지나 초록 생명을 알리는 봄이 오기 전에 그는 그 답을 꼭 찾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