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상을 향해
나의 세 아이 중에 첫째는 만 30개월, 둘째는 4개월에 케냐에 왔고 셋째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고 있다. 두 아이는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케냐를 떠났지만 막내는 이곳에서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큰아이는 현재 한국에서 군복무 중이며 둘째 아이는 올해 8월에 아트학부로 대학에 진학했으나 OT때 간호학과로 옮겨서 공부를 하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 다섯 명은 늘 집이라는 공간에서 지냈다. 집이 식당이요 캠프장이요 놀이터였다. 학교 가는 날엔 돈 주고 사 먹는 학교 급식이 아닌 엄마표 도시락을 싸가시고 다녔는데 아침이면 테이블 위에 도시락 가방 3개와 물병 3개가 나란히 주인을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이젠 한 개만 외롭게 그 자리에 놓여있다.
나이로비에는 복음적인 미국 선교회에서 설립한 선교사 자녀학교가 2곳이 있다. 또 다른 한 학교는 Rift Valley Academy (RVA)인데 역사가 120년이 족히 넘었으나 나이로비에서 차로 약 1시간이나 훌쩍 넘어서 걸리는 산속 외진 곳에 있다. RVA이라는 학교의 학생은 케냐 외 아프리카 다른 나라에 온 선교사 자녀들이 대부분이고 기숙사학교이다.
우리 아이 셋은 한국분이 설립한 영국식 학교에 다니다가 미국식 학교인 West Nairobi School(WNS)으로 옮겼다. 이 학교는 NICS (Network International Christian School)에 속한 단체인데 한국에는 의정부와 용산도 있어서 종종 선생님들도 교류를 한다.
케냐 WNS 교사들은 100프로 크리스천이고 선교사 마인드로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을 다해 교육한다. 선교사 자녀들에게는 학비를 35프로 또는 그 이상 디스카운트를 해주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겐 버겁기만 했기에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빨리 졸업하고 케냐를 떠나가길 바랐다.
“OO 엄마, 시간 금방 간다. 아이들이 곁에 있을 때 잘해.”
“힘들지만 아이들이랑 함께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한 거야. 빈둥지가 되면 더 힘들어.”
나보다 연배가 있으신 학부모님들이 이렇게 말할 땐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으나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부모인 우리 품을 떠나가니 실감이 난다.
케냐를 떠난 첫째와 둘째에게 약속을 받아냈다. 군대에 있는 아들에겐 한국시간 기준으로 금요일과 월요일에 통화를 하자고 했으나 최근에 들어선 한 번으로 줄었다. 그러나 둘째는 처음부터 전화 통화는 두 번이 아닌 한 번만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며칠 전에 아들과 통화를 하다가 마지막 휴가를 케냐에 오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들, 부모님이 해외에 살면 군대에서 휴가도 이쪽으로 보내준다고 하더라. 비행기 티켓도 공짜로 끊어 준다는데... J형도 케냐에 왔다 갔어."
“엄마, 저는 한국에서 자주 짧게라도 휴가를 나갈래요. 케냐에 꼭 가야 해요?”
‘그렇지, 케냐에 오면 할 것이 없지. 한국이 더 재미있고 만날 사람도 있고 할 일도 많겠지.’
둘째 아이에게는 겨울 방학에 갈 곳이 없으면 케냐에 오라고 카톡을 보냈다.
“엄마, 오늘 친구 부모님이 학교에 오셨는데 시내로 함께 베트남 국수를 먹으러 왔어요. 친구가 겨울에 갈 곳이 없으면 자기 집에 오래요.”
'그렇지. 너는 친구를 깊이 사귀는 아이지. 앞가림을 잘하고 있네.'
두 아이가 잘 살아가고 있으니 엄마인 나로서는 기특하고 고맙기는 하지만 혹시나 케냐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에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엄마, 동생이 갈 곳도 할 것도 별로 없는 케냐에서 살다가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시간이 지나면 동생도 저도 케냐가 그리울 거예요.”
정이 많고 마음이 따스한 아이들이 나를 위로한다.
'그래, 청춘들아. 잘살렴. 다른 것이 아닌 그것이 효도다.'
방글아
너의 아들과 딸처럼 너도 부모님을 떠나왔잖아. 그때 어땠니? 부모님에 대한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오롯이 너만을 위해서 서울로 튀다시피 해서 떠났고 케냐도 그렇게 왔잖아. 물론 네가 이타적인 삶을 위해서 온 케냐이지만 양가부모님은 많이 걱정하셨잖아.
기억나니? 19년 전에 너희 부부가 인천공항으로 떠나려고 짐을 싸던 날, 시어머니가 하루 종일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면서 소리 없이 울으셨잖아.
부모님들이 너희들에 선택을 존중했듯이 너 또한 세 아이들이 넓은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도록 응원하길 바라.
앞으로는 너의 삶에 더욱 집중하렴. 내가 너에게 힘을 실어 줄게. 방글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