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적응기, 둘
케냐에서 나름 열심히 적응하던 2008년 초에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그해 11월에 현지 가톨릭 보건소에서 출산을 한다. 간호사는 이태리에 온 노수녀님이 한분이 계셨고 두 분은 케냐분이었다. 한국병원과는 달리 분만실에서 아기를 낳자마자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전날 나와 남편은 나이로비 시내에서 사무실 계약을 하고 둘째 아이 예방접종을 위해 방문한 가톨릭 보건소에서 우연찮게 한국인 수녀님을 만난다. 그녀는 출산을 앞둔 내가, 나이로비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가기 어려운 형편임을 알아채고는 본인이 전에 일하던 현지 보건소를 소개해 주었다.
"전에 내가 일하던 보건소는 병실까지 있어서 산모들이 많이 왔어요. 응급상황이 생기면 엠블란스를 불러주고 종합병원으로 이송도 한답니다."
다행히도 보건소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내친김에 당일날, 그곳을 정탐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방문을 한다. 그때는 나이로비 시내 도로가 좋지 않았다. 한국 수녀님이 소개한 보건소는 메인도로에서 차로 비포장 길을 약 10분을 가야 했으니 울퉁불퉁한 흙길 때문에 아기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만 같았다. 환경은 현지 보건소지만 깨끗했고 친절한 직원분이 분만실과 딱 한 개 밖에 없는 특실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생활이 녹록지 않은 우리에게 병원비와 특실 비용이 한화로 6만 원 밖에 안되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현지 보건소에 출산을 하시다니 대단하세요."
"무슨요. 어쩔 수가 없었죠."
그렇게 셋째 아이는 메이드 인 케냐 즉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프리카 케냐가 된 것이다.
다른 문화에서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전투적으로 살아온 세월이 벌써 19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때론 생활비를 아끼려고 나이로비보다 400미터나 더 높은 해발 2,200미터에 있는 로칼시장에 가서 고기와 야채를 사고 산등선 이를 깎아 만든 구제품 시장터에서 아이들에게 신길 신발과 옷을 사 입혔으나 이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다.
우리 가족이 니므로 시장에 가면 꼭 들린 곳이 있는데 시장 입구 반대편에 있는 작은 쇼핑 몰 2층 코너에 자리 잡은 식당이다. 작은 식당에서는 별의별 음식이 다 만 들어졌는데 뜨거울 때 먹으면 맛있는 인도식 '바지야'라는 감자튀김이 있었고 어지럼증으로 고생하던 나는, 천엽으로 요리한 '마툽보'라는 음식을 먹곤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혹시라도 여유시간이 있을 때는 미국 남침례교단에서 설립한 '고사리 숲'이라는 센터에 들려 아이들에게 그네와 시소를 태우기도 했다. 한국과 비교하면 문화시설이 거의 없다시피 한 와일드한 나라에서, 아이들은 푸른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과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장난감이었다.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으나 참으로 행복했다.
"케냐에서 몇 년째 살고 계세요?"
"19년 째요."
"와우, 그렇게나 오래 사셨어요?"
"그런가요.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네요."
케냐는 우리 부부의 제2의 고향이자 아이들의 고향인 셈이다. 어른인 우리는 한국이라는 문화를 이미 알고 있어서 구정이나 추석이 되면 고국이 그리워진다. 그러나 아이들은 한국인이라 자긍심보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부모님의 나라요 조부모님과 친지들이 살고 있는 장소적인 의미가 클 것이다.
부모님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케냐사람들이고 본인들은 미국기독교 단체에서 설립한 학교에서 미국역사를 배우고 친구들은 대부분이 다민족 아이들이다. 물론 한글학교를 다니면서 한국말을 배우고 설날행사와 추석행사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야."
"BTS와 블랙핑크도 우리나라의 아이돌이야."
"삼성전자 알아? 그거 한국회사야."
이런 식으로 어렸을 때부터 타국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한국인이라며 자부심을 가지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국인 부모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입맛은 전형적인 토종에 가깝다.
첫째는 아들이다 보니 고기 종류를 좋아한다. 어떤 때는 정체 모를 음식을 만들었음에도 맛있다며 잘도 먹지만 한국에 가면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엄마, 저는 국밥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아요."
둘째 아이는 입맛이 없을 땐 생뚱맞은 음식을 찾는다.
"엄마, 민들레 김치 없어요?"
막내는 주기적으로 한국음식을 먹고 싶다고 주문처럼 말한다.
"엄마, 한국 치킨이랑 물냉면이 먹고 싶어요."
물론 셋다 김치볶음밥에 계란후라이드 하나만 얹어줘도 맛있게 잘 먹는다.
방글아
누군가 물었지? 캐나다에서 왔다고요? 네가 늘 케냐라고 말을 해도 사람들은 캐나다라고 말하곤 했어. 아프리카 케냐에 네가 산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아님 생소해서 그런지 말이야. 그런 케냐에서 생활적으로 녹록지 않았음에도 이웃을 사랑하고 세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어.
여러 힘든 사건들 속에서 잘 이겨내고 씩씩하게 살아온 너를, 나는 참으로 존경한다.
그런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고생 많았다. 나의 영원한 사랑, 방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