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 19가 시작되던 그해 9월, 케냐 한인 벼룩시장이라는 카톡방에 짤막한 광고 글이 올라왔다. 다른 때와는 달리 나의 두 눈이 카톡방에 오래 머물렀다. '독서토론과 글쓰기'에 대한 큰 제목이 눈에 띈 것이다. 초대 글을 올린 이름이 낯설어서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으나 책 읽기는 좋아하지만 글쓰기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던 터라 이 참에 뭔가 배워보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 일렁거렸다.
글모임에 나온 분은 인도자와 나를 포함해서 세 명뿐이었지만 우린 12주 동안 집중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기로 다짐한다. 글모임은 1주일에 한번 꼴로 가졌는데 모임을 시작하면 3시간은 기본이었다. 나는 이 작은 글모임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인도자가 글에 대한 주제를 주기라도 하면 그동안에 꾹꾹 누르고 눌렀던 감정과 말들이 손가락을 통해 글로 쏟아져 나왔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세상이 또다시 조금은 달라 보였으며 종이 여백에 연필이든 펜이든 잡히는 걸로 수다쟁이처럼 글을 써내려 갔다. 시시때때로 번득 떠오르는 생각이 나면 내 카톡과 메모장에 검지 손가락으로 또각또각 타이핑을 치고 노트북을 열면 hwp 파일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양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가며 한글 자판이 뚫어질 것처럼 '따다닥 따다락'거리며 타이핑을 쳤다. 나름 고등학교 때 한글 타자와 영문 타자 자격증 1급을 딴 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머릿속에서 글감이 떠오르거나 마음에서 감정이 올라오면 빠른 속도로 기록을 한다. 물론 문장도 엉성하고 단어에 오타가 많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글을 쓴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몰입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
어느 날은 오롯이 나의 이야기 만을, 어느 날은 가족의 이야기를, 어느 날은 친구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연들이 봇물이 터진 것처럼 손가락 끝으로 흘러나왔다.
그 시간이 벌써 6년째다.
글을 쓰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나 자신과 세상을 향해 참으로 많았다. 힘에 넘치도록 타인을 위해서 이타적으로 살아온 내 지친 모습이 보였으며 부당한 사회를 향해 정의를 외치고 싶었고 억울한 상황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던 상처받은 내가 보였고 나를 이용한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못한 내 안에 '참을 인'이 쌓여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 그래서 글로나마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글은 내 마음을 만져주었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20대 초반부터 지금껏 M선교회에 몸을 담고 있지만 그곳에 선배도 아닌 어느 상담가도 아닌 내가 쓴 글이 살아서 나에게 '뚜벅뚜벅' 걸어와 나의 지친 어깨를 감싸 안아준 것이다.
'그대, 열심히 살아왔어요. 그러니 이젠 자신을 위해서 살아요.'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글이 나에게 따스하고 포근하게 말을 걸어왔고 친구가 되어 주었다.
6년 전에 글쓰기 모임을 인도한 P는 케냐를 떠난 지 오래다.
"보라님, 제가 보석을 발견했어요. 이 모임이 끝나도 글을 계속 쓰세요."
P는 내가 글쓰기에 진심인 것을 알아채고는 칭찬을 했겠으나 그녀의 그 한마디가 어쩌면 지금껏 꾸준히 글쓰기를 할 수 있는 힘이 된 지도 모른다. 또한 이 시간은 나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글쓰기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나지만 도전정신이 불끈 솟아나는 바람에 해외에서 신청할 수 있는 문학상을 기웃거리다가 재외동포청 문학상과 동서문학상에 도전을 해 보았다. 아직 문단에 등록한 실력파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씩 작은 상을 받으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러나 상을 받기 위함이나 문단에 등록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오늘도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이 나에게 준 위로라는 선물이 컸기에 글에게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한 발자국씩 앞으로 걸어 나갈 뿐이다.
방글아
너를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20대 초반에 신학교에 입학을 하고부터는 넌 줄곧 너를 위한 삶보다는 지극히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삶을 살았잖아.
신학공부와 상담공부, 리더십 공부와 각종 훈련들 그리고 크고 작은 봉사뿐 아니라 케냐에 온 것도 너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남을 우선시했던 것이었어. 정말 열심히 살았고 고생했어. 이젠 네가 이기적으로 산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혹여나 있다고 할지라도 뭐, 어때. 그렇게 살아도 괜찮아. 내가 너를 받아 줄 거고. 내가 너의 편이 돼 줄게. 용기를 내. 나의 사랑 방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