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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제3막을 위해서

용기가 필요해

by Bora

신학교에 입학을 하고부터 줄곧 약 35년 간 봉사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에 개신교 교회와 선교회에 속해 다양한 일을 하며 배움을 가졌다. 유초등부, 중고등부, 대학청년부를 위한 교육을 담당하며 선교활동, 제자양육, 상담을 했지만 영아, 유치, 장년 그리고 노년에게도 관심이 많다.

우리 부부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18년 전에 인생 제2막을 시작했다. M선교회에서 나이로비로 파송을 받은 후 지속적으로 대학생 선교활동을 하고 있지만 선교는 단순히 성경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구제와 교육이 포함되어 있으니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인내와 수용뿐 아니라 갈등과 용서, 긍휼, 자비, 친절등 끊임없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선교활동과 생활비에 대한 재정은 오롯이 개인이 모금을 해서 운영해야 한다. 그로 인해 우리에 후원자 중에는 친정 부모님이 가장 큰 액수를 지원하고 오빠들뿐만 아니라 시누이, 친구, 선후배와 제자들도 있다. 가족들에 후원이 없었으면 우린 아마도 선교활동뿐 아니라 생존자체가 안되었으므로 벌써 케냐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지금껏 교회라는 큰 틀 안에서 선교, 봉사, 교육에 관련된 일만 해왔던 터라 한국사회에 복귀하면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한마디로 사회적으로 완벽하리만큼 '경단녀'가 된 것이다. 어느 해는 그로 인해 무력감과 우울감으로 몇 개월은 마음이 불안했을 정도였다.


"얘, 한국에 나오면 뭐라도 못하겠니? 할 게 없으면 쿠팡에 가서 아르바이트하면 돼."

"그렇지. 나도 쿠팡 아르바이트하고 싶어."

"너, 아이들 좋아하지? 아기 보는 일도 하면 되지."

"그렇지. 나는 아기들을 엄청 좋아하지."

그렇지만...


나와 달리 남편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컴퓨터 쪽으로 관련된 공부를 했고 직장 경험과 벤처사업도 해본 사람이다. 해외 선교를 위해 신학공부까지 했으니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공부한 년수를 계산한다면 21년을 한셈이다. 그러나 그 또한 결코 젊지 않은 69년생이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해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지인들은 우리가 선교회에서 오래도록 선교활동을 했기에 한국에 돌아가면 당연히 목회를 하거나 그에 관련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편은 나와 다르게 전혀 그쪽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2년 후에 '아웃 오브 케냐'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때쯤이면 케냐에서 선교활동을 한지도20년이 된다. 그렇게 결정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몸이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고산지역인 나이로비에서 기력이 달리고 어지러움증과 허리디스크로 고생이 심하다. 한국에서부터 고질병인 허리로 고생을 했지만 젊었을 때는 통증이 오래가질 않았는데 최근 몇 년 전부터는 허리디스크가 재발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나 또한 일에 과부하가 오거나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생기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의 케냐 선교역사는 선배네 시작으로 앞으로 2년을 합산하면 26년이 된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우리가 이곳을 떠나도 현지인들이 이 사역을 이끌어 가도록 지도를 해 왔다. 우리가 힘을 빼고 현지인들에게 리더십을 이양하는 게 우리의 최종 목표다.

몇 해 전부터 남편은 떠나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떠나야지만 현지인들이 자립을 할 수 있어.”

“나는 케냐가 좋은데,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하지.”

“뭐래도 못하겠어.”

나는 독백처럼 조용하게 말하는 남편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뭐든 빠르고 세련된 한국이라는 나라로 되돌아가면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남편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나 또한 그의 결정에 99프로는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어느 날은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할까'라는 생각에 몰두하면 재밌기도 하다. 남편은 공대출신답게 공장에 가서 지게차를 운전한다고 한다.

나는 대학교 앞에 고시원이나 원룸을 렌트해서 하숙집을 운영해 보면 어떨까, 그러다가 한적한 등산로 입구에서 김밥과 커피만 팔아 볼까, 아니면 산속에 가서 살면 어떨까, 때론 복잡한 서울도시에서 나라는 존재를 감추며 살아가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이다.

“선교사를 사직하면 다른 계획이 있으세요?”

“없어요. 그림이 그려지질 않네요.”

“부모님에게 상속받은 재산이 많으신가 봐요?”

“무슨 말씀, 선교회에서 퇴직금으로 조금 나오는 건 선교활동으로 빚진 돈을 갚고 나면 끝인걸요.”


방글아

지금까지 너와 가족이 굶지 않고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녹록지 않은 삶이 될지라도 너무 걱정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길이 열리는 데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가면 돼. 넌 네가 잘하는 게 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잖아. 그런 방향으로 너에 인생 제3막을 준비하면 좋을 것 같아.

케냐에서 남은 2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하길 바란다.

사랑한다. 방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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