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꿀 수 있는 자유
케냐에서 살 때는 흰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 족히 한 달에 한 번은 뿌리 염색을 했다. 한국에 오면 외모에 더 신경을 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머리숱이 많다는 핑계로 염색을 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 싶다. 한국에 재 정착하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에 쿠팡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산모와 아기를 돌보는 일도 하고 양가의 노부모님을 돌보기도 하고 가끔씩 선교회 기도모임에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80세 이상의 성도님들을 위해 무료상담을 하고 있다. 그사이에 나의 세 자녀들은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을 다니기도 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도 있다. 그리고 나는 꾸준히 글쓰기를 한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단편소설을 종이책으로 출간했다. 7편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썼던 것이고 5편은 한국에서 썼다. 케냐에서 소설을 쓸 때는 '한국에서 글을 썼더라면 좋았을 걸'이라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막상 한국에서 글을 쓸 때는 '아프리카'를 그리워한다.
소설 속엔 나의 삶에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무엇보다도 케냐의 이야기는 향수 그 자체다.
나의 인생 제3막에서 그토록 간절한 던 소망을 이루었다.
나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는 말 그대로 나를 위한 글이다. 글을 쓰는 내내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하고 싶었다. 내가 나를 기억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로하고 나를 존중하고 싶었다. 꼭 그래야지만 될 것 같았다.
“이제는 이타적인 삶을 살지 않아도 괜찮아. 충분했어”
“속 빈 강정처럼 퍼주고 퍼주는 삶이 아니라 이젠 너를 채워가는 삶을 살아가도 돼."
“이기적이면 어때, 괜찮아. 그렇게 해도 돼”
어쩌면 이 말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타인으로부터 듣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지인이 진심으로 이 말을 건네었을지라도 나는 쑥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몰랐을 거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마음껏 사랑을 고백하며 자가 치유를 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를 나는, 오늘도 꿈꾼다. 꿈꾸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또 어떠랴. 꿈이란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이기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환희를 경험하고 가슴 설레는 기쁨을 누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몫을 한 것이다.
오늘도 꿈꿀 수 있는 그 자유로움으로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71년생 방글이의 인생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에세이에 짧은 사랑의 고백을 얹어 편지글입니다.
5주간 1주일에 3편의 글을 쓰고 발행하는 작업이 조금은 버거웠으나 글을 완성해 보니 이것으로 수고에 대한 보상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글 16편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케냐 사람들이 좋아하는 축복의 인사를 올립니다.
'뭉구 아쿠 바리키,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