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에서 온 손님

빚진 마음

by Bora

그녀의 이름을 “캔디”라고 부르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 즐겨 보았던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만화 주인공과 닮았기 때문이다. 캔디는 눈이 크고 맑았다. 나이로비 '웨스트 게이트'라는 몰에서 구입한 움직일 때마다 달랑거리는 파란 귀걸이는 그녀의 하얀 얼굴을 더욱 빛나게 했다.

목소리가 유난히 작은 캔디의 나이는 26살이다. 그녀는 나이답지 않게 너무 어려 보였고 쑥스러움을 많이 탔다. 만약 캔디가 많은 사람들 속에 있었다면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몰랐으리라 만큼 행동과 말투가 조심스러웠다.

캔디가 손님으로 온 첫날, 그녀는 자신을 간단히 소개했다. 그녀는 캐나다 퀘벡 주에 있는 ‘몬트리올’이라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그곳은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 저녁에는 늦게까지 식당 문이 열려 있고, 길가에 편의점이 있을 뿐 아니라 밤에 걸어 다녀도 전혀 위험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출근할 때는 버스를 타고 퇴근할 때는 20분을 걸어서 집에 온다며 자신에 대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1주일에 2번 학원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한다 퀘벡 주는 불어권 지역이라는 말도 덧 붙였다.

나는 캔디가 조용한 성품이지만 무척 용감한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캔디가 외출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차를 마시며 캔디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7살 때 부모님과 동생 둘과 함께 케냐에 왔고 7년을 살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을 했다. 캔디는 중요한 말을 할 때 더욱 목소리가 작아지는 버릇이 있어서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야 만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식탁 구석 의자에 앉아 추운 듯 몸을 움츠렸기에 나는 마사이 부족들이 즐겨 덮는 빨간색과 남색이 들어간 담요를 그녀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그녀가 고맙다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저는 행운아고 특혜를 받은 사람이에요.”

말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듯한 나의 눈길에 그녀는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갔다.

"저는 미국 대학과 캐나다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어요. 지금은 대학교 때 복수 전공한 통계 쪽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요."

“캔디, 너는 왜 정치학을 공부했니?”

그녀는 조금은 괴로운 듯 한 표정을 지으며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중학교 때, 그러니깐 2007년 12월에 케냐에 대통령 재선이 있었어요. 그때 저희 가족은 마트에서 밀가루와 쌀, 우유와 식빵, 휴지, 물, 세제 그리고 많은 물건을 사다가 집안에 저장해 놓았어요. 아마도 대선이 끝나고 나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대선이 끝나자마자 큰일이 터졌어요. 폭동이 일어났는데 마치 전쟁이 난 것 같았어요. 케냐 국민들은 투표가 개표되자 부정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결과 오랫동안 케냐 정치를 주도하던 여당인 끼꾸유 부족과 맞서 싸우는 야당인 루오, 루야, 카렌진 사람들이 한 팀이 되어서 같은 동네에서 부족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는 복수전이 일어난 거예요. 그때 모든 경찰들이 그들의 싸움을 막기 위해 총동원되었는데, 빈민가 사람들은 이 틈에 외국인들이 사는 집을 털었어요. 우리 가족은 밤마다 공포에 시달리며 잠이 들곤 했어요. “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두 눈을 찔근 감아 버렸다. 나도 그때의 사건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동네와 그녀가 살았던 지역은 달랐지만 말이다. 나 역시 대낮에도 집 밖에서 들려왔던 총소리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일로 부족이 섞여 살던 동네에서 도망 나온 사람들은 제가 다니는 교회로 몰려왔어요. 케냐 목사님은 교회 마당에 수십 개의 텐트를 쳤어요. 저희 부모님도 매일 교회에 가서 피난민들을 도왔어요. 어느 날 교회에 갔다 오신 엄마가 저에게 내일은 꼭 교회에 함께 가자고 했어요. 텐트촌에 지내는 한 남자아이가 부모님을 잃고 실어증이 생겼는데 음식을 먹지도 않는다며 네가 가서 친구가 되어 주면 어떻겠냐고 말하셨죠. 엄마는 그 친구 나이가 저와 비슷하다며 저에게 친구를 위해 책을 읽어 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어차피 일요일에 교회를 가니깐 그때 친구를 만나서 책을 읽어 준다고 했어요. 다음 날 교회에서 돌아온 엄마는 그 남자아이가 텐트촌에 나갔다고 말하셨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그 친구를 돕지 못했다는 것이 수치스럽고 죄책감이 몰려왔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제 자신을 자책했어요. 내가 친구에게 가서 책을 읽어 주었다면 그는 텐트촌을 나가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저를 오래 동안 괴롭혔어요. 그 친구는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었지만, 나는 어떤 존재이기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어요. 저는 큰 행운아고 특혜를 받은 사람이지만, 그 남자아이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그녀는 또다시 자신은 행운의 사람이고 특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캔디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로 갔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미국 생활이 어려웠기에 어린아이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다시 캐나다로 가서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공부를 마친 뒤 진로를 국제 NGO라는 곳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많은 곳에 이력서를 넣고 인터뷰를 하며 국제 NGO의 고귀한 목표와 목적은 그녀가 지금까지 안고 왔던 숙제를 푸는 열쇠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그녀의 생각이 달라서 NGO에서 일하는 것을 접었다고 한다. 겉 보기에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그녀의 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캔디는 나이로비 박물관을 가고 싶다며 나뭇결 모양의 큰 귀걸이를 귀에 걸고 브라운 섀도로 살짝 눈 화장을 했다. 아이보리 브이넥 스웨 터을 입고 우버 택시를 타고 외출하는 그녀의 뒷모습이 어제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


거실에 걸려 있는 시곗바늘이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저녁 요리로 떡볶이 떡과 어묵을 자르고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국물을 우려내었다. 재료를 준비하는 시간에도 가끔씩 시계로 눈길이 갔다. 오후 4시 50분쯤 그녀가 도착했다.

그녀는 쇼핑을 했다며 이것저것 많은 것을 사 왔다. 캐나다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샀는데 홍차가 세일을 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많이 구매했다고 한다. 우리는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었고 중국에서 온 보이차를 마셨다.

그녀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신나게 꺼내 놓았다. 그런 캔디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미소가 지어졌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 싶은 그녀는 케냐에서 무엇인가 해결점을 찾고 싶었나 보다. 피난민 아이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동안 그녀의 삶을 무겁게 했나 보나 보다. 그래서 빚진 마음으로 대학과 대학원, 졸업 후 진로의 기로의 순간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돕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 었을까 싶다.


그녀가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아직도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곳을 돌아보고 싶다고 했다.

비가 오면 지저분하고 음식 섞는 냄새가 진동하던 로칼 마켓과 알록달록 색상이 강렬한 마사이 마켓, 화려한 춤 솜씨를 발휘하는 버마스 오브 케냐, 유난히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린 센터와 도시 한가운데 동물들이 모여 사는 나이로비 내셔널 파크 그리고 조모 케냐타 공항에서 한 참 떨어져 있는 타조 농장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10박 11일 휴가를 케냐에서 보내고 캐나다로 떠난 두 눈이 크고 얼굴이 하얀 캔디.

그녀와 나는 페이스 북, 인스타그램 친구도 아니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지금껏 그녀의 어깨를 짓 누리고 있었던 무거운 과제를 잘 이겨나가리라고 믿는다.

'캔디, 내가 너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고 특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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