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

3대째 닮은 꼴

by Bora

손바닥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맨손으로 부엌일을 하고 나면 금세 손바닥은 건조해지고 손목 주위로 작고 빨간 반점이 올라온다. 며칠 동안 아이들 도시락 반찬을 만드느라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어느새 손끝에 허연 보풀이 일어났다. 손톱은 영양분을 주지 않아도 매일 자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오늘은 맘 잡고 소파에 앉아 손톱과 발톱을 깎아 보기로 했다. 양손을 앞으로 쭉 펴 보았다. 엄마의 손을 빼닮은 나의 손이다. 40대까지만 해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손이 곱고 예쁘다는 말을 듣곤 했다. 열 손가락 중에 유난히 가운데 손가락이 엄마 손을 닮았다. 가운데 손가락은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휘였다. 손톱은 새침한 소녀처럼 왼쪽과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가 기울었다. 영락없이 엄마의 손가락이다. 내 손이 엄마의 손과 다른 곳이 있다면 오른손 엄지이다. 왼쪽 엄지와 다르게 오른손 엄지는 크기도 작고 손톱은 뭉뚱 하다. 마치 논에서 건져 올린 우렁처럼 말이다. 학생 시절에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버스를 타면 손잡이를 꽉 잡곤 했다. 혹시 누군가 내 못 생긴 엄지를 볼까 싶어서 네 개의 손가락 밑으로 슬쩍 밀어 넣었다. 남들은 전혀 신경을 안 쓰는데도 말이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손 엄지손톱이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손톱 사이로 울 엄마가 보인다. 엄마의 손은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바쁘게 움직였다. 늦은 저녁 티브를 보는 시간에는 콩을 까거나 바느질을 하셨다. 한겨울엔 차가운 물로 빨래를 헹구고는 시린 손을 아랫목에 녹이셨다. 세탁기와 핸드크림이 없던 시절, 엄마의 손끝은 늘 갈라져 있었다. 그 손으로 내 귓밥을 파기라도 하면 여린 볼에 까슬까슬함이 느껴졌다.


겨울 내내 들과 산에 쌓였던 눈이 녹으면 엄마의 손은 쉴 틈 없이 바빴다. 이른 아침부터 자식들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보내고 부리나케 집안 청소를 끝내고 산더미처럼 쌓인 옷을 빨아 널고는 과수원에 가신 아버지를 위해 점심을 준비해 산을 오르셨다. 채 녹지도 않은 땅에 부모님은 두발에 힘을 실어 삽으로 복숭아나무 주위를 파셨다. 두엄을 주기 위한 작업이었다. 과수원에 분홍꽃이 피고 지고 푸릇한 열매가 얼굴을 내밀면 또다시 과일솎기 작업을 하셨다. 신문지로 만든 네모난 봉투가 집으로 배달되면 갓난아기 주먹만 한 복숭아를 기도하는 맘으로 한 알 한 알 포장하셨다. 복숭아에 벌레가 생길까 싶어 소독을 한 날은 부모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며칠을 어지럼증으로 고생하셨다. 복숭아 수확 시즌이 끝나갈 무렵이면 엄마는 잼을 만들고 먹 자두에 맑은 소주를 부어 아버지를 위해 과일주를 만드셨다. 여름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리가 휘어져라 붉은 고추를 따고 벼를 수확하고 밭에서 콩을 거두신 엄마의 두 손.


지난여름 우리 가족은 3년 6개월 만에 한국을 입국해서 부모님 집을 방문했다. 네일아트에 취미를 붙인 15살 딸아이가 할머니 손가락에 매니큐어를 칠해 드리고 싶어 했다. 다 늙어서 손가락에 무슨 색을 칠해,라고 하셨지만 손녀에게 슬그머니 양손을 내밀었다. 손가락 마디마디는 더 굵어져 있었고 손등은 쭈글쭈글 주름이 가득했다. 할머니의 딱딱하고 짧은 손톱에 딸아이가 정성스럽게 예쁜 색을 입혔다. 언뜻 보니 딸의 손이 할머니 손을 닮았다.

딸의 가운데 손가락 사이로 15년 전에 케냐로 온 나의 모습이 보였다. 큰아이 30개월, 둘째 아이 100일을 넘기고 한국을 떠나왔다. 케냐에서 처음으로 김치를 담그고 만두를 빚고 김밥을 쌌다. 셋째를 보건소로 낳으러 가던 날은 직접 미역국을 끓여 보온병에 담았다. 남편이 콘퍼런스 참석으로 집에 없던 밤에는 무서움을 달래기 위해 아이들을 품에 끌어 앉고 아침이 빨리 오기 만을 기다렸다. 생활비가 떨어져 월말을 손꼽아 기다렸던 일 그 외에도 수많은 사연들이 손가락 사이로 지나갔다.

신기한 것은 죽을 것만 같았던 힘든 기억은 희미해졌고 나는 지금 웃고 있다는 것이다.

먼 훗날, 엄마가 미치도록 그리운 날이면 나는 딸의 손을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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