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부터인가 엄마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면 왜 그리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지난번 저녁식사를 하면서 외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갑자기 울먹이는 엄마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던 너의 얼굴이 생각이 난다. 그게 아니었다고? 슬픈데 그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되어서 그렇게 바라본 것이라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다고 정리해 보고 싶구나.
외할아버지는 본인이 태어나 자란 동네에서 지금까지 그 동네를 떠나지 않고 쭈욱 살아오셨단다.
겨울이 접어드는 12월 초에는 포도나무줄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살짝 얼은 포도는 정말이지 달콤했단다. 그때는 간식이 귀해서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와 친구들은 포도밭을 꼭 들렸지. 첫서리가 내려도 아이들의 간식거리가 되었던 포도밭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구나. 포도원 앞에는 커다란 호수처럼 생긴 저수지가 있었는데 물속이 얼마나 깊었는지 겨울 내내 얼음이 얼지 않았고 물이 늘 많았던 것 같아. 가물었던 어느 여름에 저수지 물이 말라 바닥이 쩌억쩌억 갈라졌다고 하더구나. 그때는 이웃 동네 사람들이 저수지 안으로 내려가서 커다란 잉어와 우렁과 가물치를 양동이 한 가득씩 줍기도 했다고 해.
동네 어른들은 할아버지를 짠돌이, 알부자, 각시만 아는 바보, 일개미, 술 먹으면 돌변하는 사람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나이 오십 중반에도 몸무게 48킬로 밖에 안 나가던 할아버지는 삼시세끼 제시간에 밥을 꼭 드셨어. 간식이라고 드시는 건 본인 밭에 수확한 잘 익은 복숭아, 수박 그리고 옥수수가 고작이셨지. 할아버지는 그 가벼운 몸으로 복숭아, 자두, 살구, 밤, 감나무 가지를 잘도 타셨지.
돈 주고 사 먹는 과자나 닭튀김은 물론 기름이 좔좔 흐르는 부침개나 단맛이 듬뿍 나는 약과는 입에 대지도 않으셨단다. 외할머니는 겨울이면 네 명의 자식을 위해 약과를 한 다라 만들어 주셨어. 밀가루와 설탕을 넣고 반죽한 후 밀대로 정성껏 밀어서 세모꼴, 네모꼴로 썰어서 기름에 튀기어 낸 약과에 조청을 골고루 바르고 마지막에 참깨를 뿌려 주었단다. 추운 겨울 내내 3남 1녀인 자식들에게 큰 요깃거리가 되었었지.
할아버지는 나이 70십이 되어서는 천식이 시작되자 그리 좋아하시던 담배를 칼로 물 베듯이 하루 만에 끊으신 분이시다. 담배를 끊으신 뒤에는 엄마가 집에 갈 때마다 사다 드렸던 알사탕과 홍삼 냄새가 듬뿍 들어간 사탕을 잘 드시더구나.
아들아!
할아버지는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분 같아. 그것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는 1938에 태어난 분이신데 8살 나이에 친엄마가 죽으시고 새어머니가 들어오셔서 밑으로 두 아이를 낳았으니 말이다.
엄마는 말이야. 어리고 외로운 어린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릴 때 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단다. 그 시작은 엄마가 너를 임신하고 배가 불러왔을 때쯤 상담 공부를 하던 때였을 거야. 사실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 참 많았었거든. 사춘기가 되면서 할아버지를 많이 미워했고 할머니도 세 명의 오빠들도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했었던 것 같아.
아직도 그날이 기억이 나는구나. 2004년 10월 인가? 상담 공부를 하던 어느 날 밤새 잠 못 이루며 할아버지의 모습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어. 참 신기하게도 그때 후로는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이라는 감정과 용서라는 숙제를 풀 수 있었지. 외롭게 늙어가는 아버지가 너무나 불쌍했단다. 아마도 그가 지금까지 상처를 준 모든 것을 이해하기로 했던 것 같아. 그냥 그 설움과 아픔을 안고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살아오신 그 자체가 고맙고 감사했지. 그리곤 할아버지의 작은 몸을 안아 주고 싶었단다.
할아버지의 거친 말투, 돈에 대한 집착, 술 취하면 돌변하던 눈빛 그리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울부짖던 젊었던 아버지의 모습은 멍울진 한을 토해냈던 것 같았거든.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할머니만 마냥 불쌍한 분이라 생각했었다. 피해자는 할머니이고 가해자는 늘 할아버지라는 생각을 하며 한 번도 할아버지의 편이 되어 주지 못했던 거지. 자식으로 할아버지를 많이 외롭게 했던 것 같아. 엄마가 자라면서 엄마 위로 셋이나 되는 오빠들도 할아버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한 번도 못 봤던 것 같아. 늘 부엌에서 엄마하고 속닥거리는 자식들이 많이 서운하고 부인에게도 야속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번 식사 시간에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구나.
그날 너와 아빠는 한국의 군대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니 그래서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고.
할아버지가 신병 교육대를 둘째 형과 함께 갔었다고 하더라. 셋째 아들이었던 할아버지는 배움에 대한 욕심이 많으셔서 초등학교도 못 다녔지만 초등학교 교실 밖에서 한글을 깨치셨다고 해. 그리고 넷째인 남동생에게 덧셈과 뺄셈을 배웠지.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친할 어머니가 난 자식들에게는 야박하게 초등학교도 안 보내셨나 봐. 그러나 두 번째 부인에게서 난 두 아이들에게는 중학교 교육까지 마치게 하셨고. 할아버지는 다행히도 글을 읽고 쓰셨고 숫자를 조금 다룰 줄을 아셨지. 하지만 둘째 형은 욕심이 없는 너무 착한 사람이었다고 해. 둘은 같은 부대에서 신병교육을 받았다고 하더라. 할아버지는 한글과 셈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조금 편한 곳으로 보직을 받았고 둘째 할아버지는 까막눈이라서 몸으로 뛰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고 해. 신병 훈련을 마치고 헤어질 때 할아버지와 둘째 할아버지는 두 손을 잡고 '엉엉' 울었데. 동생은 착하기만 형이 안 쓰러웠겠지! 그때 둘째 할아버지는 이미 첫째 딸을 낳은 상태였지. 둘째 할아버지는 첫 번째 휴가를 다녀오고는 두 번째 휴가부터는 나오지 못하셨데. 첫 휴가를 보내고 군에 복귀하자마자 차 사고로 숨을 거두셨기 때문이란다. 고향에는 아름다운 각시와 재롱둥이 딸 그리고 아내의 뱃속에는 둘째 아기가 자라고 있었단다.
사랑하는 아들!
의지했던 착한 형이 군대에서 죽고 고향으로 혼자 돌아온 할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
8살에 엄마를 잃고 세 살 터울인 둘째 형을 의지하며 살아온 할아버지의 상실감을 말이야. 만약 정신이 약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할아버지는 다행히도 26살에 20살의 처녀를 만나 결혼 생활을 시작했단다. 마음도 몸도 건강한 부인은 열심히 일하며 사는 남편이 좋았겠지.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이 초상집에 가서 술에 잔뜩 취해 오면 이상한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된 거지. 아주 거친 사람으로 돌변하는 자신의 남편을 말이야.
할머니는 아이 넷을 낳고 살면서 보따리를 싸고 풀기를 수도 없이 했다 하니 마음이 오죽 힘들었겠나 싶다. 자식들이 아니면 벌써 아버지 곁을 떠나도 100번은 더 떠났다는 말을 자주 하셨거든. 아마 할아버지 마음을 붙들어 준 것은 자식이 아니라 마음 넉넉하고 긍정적인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 일 거야. 할머니가 떠났다면 할아버지는 아마도 술독에 빠져 폐인이 되어 벌써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었겠지.
아들아~
엄마는 문득문득 할아버지의 인생을 회상한다.
오후 3시가 되면 나이로비 시내에서 바람이 몰려오면 가을 내내 벼를 수확하고 밤늦게 집에 오셨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케냐 봉고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매연 냄새에서는 더운 여름 복숭아를 수확하시다가 소나무 밑에서 담배를 피우셨던 할아버지의 땀 냄새를 기억한다.
오늘은 담 너머에서 슬쩍 돼지 오물 냄새가 풍겨 나오는 것 있지. 문득 할아버지가 이른 봄 과수원 과일나무에 두엄을 주기 위해 지게로 수도 없이 실어 나르던 얼룩덜룩하던 반팔 러닝셔츠가 기억이 나더구나.
사계절 내내 작업복을 입으시고 봄과 가을에는 고무신을 즐겨 신고 여름에는 고무 슬리퍼를 끌고 다니시고 겨울에는 털신을 신으시던 할아버지가 요즘 많이 생각이 난다. 옷장에는 아들과 며느리가 사다준 좋은 옷은 많은데 팔십육 세가 된 할아버지는 아직도 멋스러운 옷이 불편하시기만 한가 보다. 그 모습이 할머니 눈에는 궁상맞게 보였는지 "좋은 옷은 죽어서 입을 것이냐고." 구박을 해도 굳이 좋은 옷을 꺼내 입기를 귀찮아하시지. 그런데 뭐든 공짜라면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65세가 넘어서부터 혜택 받는 버스 무인 승차표와 공짜 목욕표가 아산시에서 나왔거든. 어느 때부터인가 동네 입구까지 들어오는 버스를 40분이나 타고 나가 온양 온천 시내에 가셔서 목욕을 하시는 것 같더구나. 온양 시내를 나가시는 날은 옷장에 고이 모셔 둔 멋진 티셔츠와 바지, 금방 산 듯 한 잠바를 챙겨 입고 나가시곤 했지. 겨울 내내 집에서 보일러를 틀고 목욕 한번 안 하시던 할아버지를 보며 할머니는 "저, 늙은이는 워낙 몸에 물 닿는 것을 싫어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할아버지는 뜨끈한 온탕에 가셔서 자주 온몸을 지지시더구나.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천식이 있으신 할아버지는 조금이라도 기침이 시작되면 집 근처 가정의원을 공짜 버스를 타고 가셔서 고작 1,500원만 내어도 약을 지어주는 약국을 애용하시고 있더구나.
한국이 노인천국이라는 말이 맞긴 한가 보다. 케냐에서는 의사 한 번 보기만 해도 병원 등록비가 3만 원에서 5만 원을 하는데, 한국은 의사 만나고 약을 타도 고작 케냐 실링으로 120실링(한화 1,500원)이라니 말이야.
인생을 살아가면서 엄마는 할아버지의 그림자를 종종 만날 것 같구나. 이런 것을 보면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점점 깊어지는 것 같아. 아니면 엄마가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도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는 자주 울먹일 수 있어. 그럴 때는 엄마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오신 것 그 자체가 자랑스러워 박수를 보내고 싶거든.
케냐에서 살아가는 네가 한국에 가게 되면 외할아버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길 바란다.
엄마 같은 마음은 아니겠지만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가난한 삶 속에서 네 명의 자녀를 위해 논과 밭을 사랑하며 팔십육 세를 살아오신 할아버지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