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향연

할머니와의 추억

by Bora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거 보셔요. 병아리 떼 뿅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 났어요.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 났어요."

한국의 봄이 시작 무렵이었다. 냉이를 캐러 들에 다녀온 친정 엄마와 통화를 했다. 이 동요가 왜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일주일 내내 입가를 떠나지 않으며 흥얼거렸다. 콧노래를 부르며 집안 방향제로 사용하는 로즈메리 잔가지를 꺾다가 문득 수줍게 돋아 난 쑥 무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 기억 한 자리에 남아 있는 할머니와 나물 여행을 한 봄날이 떠올랐다. 할머니와 나는 건조한 바람이 불던 이른 봄에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들판으로 나갔다. 들에는 온통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그날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방글아, 방글아?"

아랫동네에 사시는 할머니가 윗동네에 사는 우리 집에 오셨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꼭대기 집으로 불렀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자주 오시지 않는데 웬일이신지 먼 걸음을 하셨다. 나의 별명을 부르시는 소리에 방문 작은 유리 창문을 통해 할머니를 확인하고는 후딱 나갔다. 할머니 손에는 소쿠리가 들려 있었고 그 안에는 호미가 담겨 있었다.

"나물 캐러 가자"

"할머니, 무슨 나물을 캐러 가고 싶은데, 냉이? 미나리? 쑥?"

"돌미나리 캐러 가자?"

"할머니 어디로 미나리를 캐러 가고 싶어?"

"깨끗한 곳으로 가자"

봄이 시작되는 산과 들은 겨울 내내 꽁꽁 얼었던 땅이 녹으며 아지랑이가 이슬비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쯤 나는 워낙 나물을 캐는 것을 좋아했다. 봄이 오면 들로 다니며 나물 캐는 재미가 솔솔 했는데, 마치 흙 속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것처럼 기뻤다.

봄이면 우리 집 반찬은 향긋한 냉이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집간장과 고추장, 파,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치거나 가끔 식초를 추가하기도 했다. 단 음식을 절대 안 드시는 아버지의 입맛에 따라 설탕은 음식에 넣을 수 없는 중요한 요리 철칙이 되었다. 어떤 때는 집된장을 넣고 무치기도 했지만 고추장이든 된장이든 냉이무침은 나른한 봄에 입맛 돋우기에는 최고의 나물반찬이었다.

냉장고가 없었던 나의 유년기에는 지금처럼 흔한 두부는 먹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니 충분히 불린 대두를 맷돌에 갈아 큰 가마솥에 끓여 간수를 넣고 몽글몽글한 순두부에 파와 참기름, 깨소금을 넣은 간장을 넣고 호호 불며 먹던 그 맛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겨울에는 찬물에 두부를 넣어 놓으면 그 위에 살짝 살얼음이 냉장고 역할을 했다. 부엌 한쪽에 놓고 먹는 두부는 한 겨울 온 가족에게 단백질 보충제가 되기도 했다.

이른 봄에는 집된장을 푼 구수한 국물에 두부와 냉이를 넣고 한소끔 끓어오르면 비료부대에서 노랗게 자란 대파로 듬뿍 고명을 얹으면 최고의 밥상이 되곤 했다.

어느 해부터 인가는 친정엄마는 봄나물은 냉이와 쑥을 삶아서 냉동고에 저장을 하기 시작했다. 쑥개떡은 한 겨울에 냉잇국은 한 여름에도 먹을 수 있게 해 주셨던 것이다.

케냐 살이를 하는 우리 가족이 한국에 나갈 때면 엄마는 빨갛게 양념한 돼지고기를 볶다가 냉동고에서 냉이를 꺼내 아낌없이 넣어 요리를 하셨다. 돼지고기와 냉이의 조화는 정말 환상적인 맛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었을 것이다. 온 식구들이 냉이와 돌미나리 반찬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나는 봄이면 들과 도랑을 다니며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냉이와 돌미나리를 캐러 다녔다.

할머니는 그런 나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지 어린 나와 들로 나가기로 작정하셨던 것 같다. 아마 그때쯤 할머니 연세는 65세쯤 되셨고 내 나이는 10살쯤이었을 것이다.

새싹이 돋아 나는 길을 걸으며 할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 는 지 전혀 기억은 없다. 난 마냥 할머니가 편하고 좋았고 길가에 이름 모를 작은 봄꽃에게 마음이 빼앗겼던 것 같다. 저 멀리 산 허리에 분홍빛 진달래가 피어올랐고 과수원에는 복숭아, 살구, 자두꽃이 향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여름이면 물이 많았던 도랑 옆에는 버들강아지가 반들반들 햇빛을 머금고 있었다.

한참을 걷고 걷자 바다처럼 넓은 큰 냇가에 도착을 했다. 한여름에 부모님을 따라 냇가 건너편에 모래가 많던 땅콩밭을 가곤 했던 곳이었다. 여름이면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던 냇가였는데 깊은데 만 물이 흘렀다. 모래와 덤블 사이에 연초록 들풀과 연두색 미나리가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호미로 살짝 깊게 뿌리 쪽을 캐어 내니 뿌리는 여린 미나리가 쑥쑥 따라 올라왔다. 모래 속에서 자라는 미나리는 캐기도 편하고 깨끗해서 손질할 때도 좋다. 차가운 봄바람에 손과 볼이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나와 할머니는 한참을 나물 캐기에 몰입을 하고 있었다. 시계도 없었으니 몇 시쯤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배꼽시계는 점심시간을 훨씬 넘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나와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도랑에 파란 싹이 올라온 미나리 눈에 아른거려 발걸음이 쉽게 떼지 질 않았다.


할머니가 늦은 점심을 차리는 동안 나는 할머니 댁 안방 아랫목에서 몸을 데우고 있었다. 할머니 방에서 오래 안 앉아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할아버지는 다정다감한 분이 아니셨 한 동네에 자식들이 2남 1녀가 살고 있었고 거기에다 손자 손녀가 도합 열일곱 명이나 되으니 많이도 피곤하셨을 것이다. 많은 손주들 중에서 할아버지가 누굴 가장 예뻐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할아버지 품에 한 번도 안겨 본 기억이 없다.

할머니가 늦은 점심으로 보리밥에 미지근한 시래기 된장국과 양념 된장을 내 오셨다. 내 기억으로 보리밥이 차가웠던 것 같았다. 그 당시는 가스레인지와 전자 랜즈가 없었기에 밥을 데우기 힘들었을 것이고 아침밥에 밥을 하고 부뚜막에 옆에 놓았던 것 같았다. 배가 너무 고팠기에 보리밥에 된장을 넣고 '스싹, 스싹' 비벼 입으로 밀어 넣었다. 입 안에서 미끈거리는 보리밥이 잘 씹히질 않았고 밥알이 목으로 넘어 가질 않았으나 너무 배가 고픈 터라 찬 보리밥과 미지근한 된장국을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 온 몸이 노근 노곤 해지면서 스르륵 잠이다. 미지근한 아랫목에서 한숨을 자고 나니 몸은 한결 가벼웠지만 속이 더부룩한 것이 소화가 안 되는 었다. 급하게 먹었던 늦은 점인 꽁보리밥의 체기는 며칠 동안이나.


날 후로 나는 보리밥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호되게 체한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입안에서 미끈거리던 보리밥의 그 느낌은 지금까지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 있다.

할머니가 낳으신 자식은 막내 작은아버지와 고모뿐 인 것을 성인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우리 할머니는 우리 아버지를 낳아 주신 친할머니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할머니는 첫 번째 시집을 간 곳에서 아기를 낳지 못하셨고 친정에 와 있다가 아들 셋을 낳고 홀아비가 된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와서는 자식을 둘을 낳았다고 한다. 나는 자라면서 할머니를 한 번도 새 할머니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할머니는 천상 현모양처셨고 큰 소리를 잘 치시는 할아버지 앞에서도 한 번도 말싸움을 하신 적이 없으신 마음이 여린 분이셨다. 시집온 동네에서 다른 집으로 마실도 잘 안 가시고 할아버지와 자식을 뒷바라지하시는 할머니는 우리 엄마와 나를 참 예뻐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보리밥은 아마도 할머니가 혼자 식사하실 때 만 드셨던 점심 밥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할아버지가 외출을 하면 홀로 드셨던 그녀 만의 식사였을 것이다. 흰쌀 한 톨 안 들어 간 꽁보리밥을 어린 손녀의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해 급히 차려 왔으리라.


까맣게 잊고 지냈던 보리밥에 대한 그리움이 케냐 살이 12년 만에 떠올랐다.

할머니와 함께 갔던 봄나들이가 가슴 벅차게 되살아 났다. 쳐다보기도 싫었던 보리밥이 먹고 싶어 지니 참, 신기 노릇이었다.

나이로비 여러 마트에서 곡류 파는 곳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보리를 찾을 수 없었다. 유럽에서 온 오가닉 코너에서 만 보리를 발견했는데 양이 너무 적고 값이 비 샀다. 일반 마트에서는 보리 자체를 구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차려주셨던 차갑고 미끈미끈한 보리밥 그것을 꼭 먹어야만 될 것 같았다.

어느 날 곡류 코너에서 우연히 통밀을 발견했다. 가격을 보니 아주 저렴했다. 통밀을 불려 압력밥솥에 밥을 지어 보았다. 따스한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통밀 밥에 강된장을 넣고 비며 된장국과 함께 시식을 해 보았다. 밥알이 입속에서 톡톡 터지는 맛이 제법 보리밥 보다 나았다.

케냐에는 냉이와 돌미나리는 없다. 그 향긋함을 대신할 나물을 찾는 중에 한국분의 농장에서 수확되는 참나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반들반들 이나는 참나물로 겉절이 하듯 양념을 해 보았다. 흰쌀에 통밀을 섞어 밥을 지어 보았다. 밥을 비벼 한 숟가락을 먹어 보니 그 옛날 할머니와 함께 거닐던 봄날이 다시 생생하게 다가왔다.

할머니와 봄나물을 캐러 갔던 그날이 그리울 때면 통밀 밥과 참나물로 마음을 달랠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거 보셔요. 병아리 떼 뿅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 났어요.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 났어요."

다시 콧노래를 불러 본다.


흰쌀에 통밀을 넣어 밥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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