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45년 지기 우정

by Bora

온양에서 탕정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은행나무가 줄지어 심겨 있었다. 기억 속의 길은 인도가 없었던 차도뿐이었다. 한 번도 이 길을 걸어 본 적은 없었고 버스로만 다녔던 길이다.

버스 안에서 만 바라보았던 길은 봄이면 은행나무가 연두색 새싹을 튀었고 가뭄에는 흙먼지가 잎사귀마다 뽀얗게 내려앉고 가을이면 온통 노란색으로 뒤덮였다. 떨어진 낙엽 위로 늦은 가을비와 이른 겨울비가 내리면 왠지 모를 허전함이 휘몰아쳤다.

길을 처음으로 H와 함께 걸었다. 초록이 무성한 6월 날씨는 습하고 더웠다. 반면 초록으로 무성한 은행나무 길은 시원했다. 바닥은 걷기 좋게 나무가 깔려 있었고 버스 창 밖 너머로만 스쳤던 은행나무는 허리가 굵어져 있었다. 길을 걸으며 코끼리 피부처럼 울퉁불퉁한 나무껍질을 살며시 만져 보았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평일 오후 은행나무 그늘 아래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간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온 부부의 모습이 평온해 보였다. 오후 햇살이 강처럼 물이 많은 냇가로 쏟아져 내렸다.


H와 나는 같은 초등학교를 6년 동안 함께 다녔다. 학교 뒤와 앞에는 산이 있었고 정문 앞으로는 논이 펼쳐져있었다. 반은 한 학년에 두 반뿐이었고 한 반에 45여 명쯤 되었다. 내가 이 친구를 기억하는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일 때부터다. 초등학교 5학년 반이 그대로 6학년으로 올라갔으니 꼬박 2년을 한 반에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불릴 만큼 엄하고 가르치는 일에 열정이 넘쳤다. 그는 2년 연속 담임선생님이 된 것이다. 나는 무서운 선생님을 다시 만난 것이 그리 편하지 않았지만 반 친구들끼리는 결속력이 강했고 대부분 아이들은 선생님을 존경했다.

H와 나는 한 동네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추억은 없지만 착하고 공부를 잘하던 아이로 기억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온양 시내에 있는 4곳 학교로 흩어졌다. H와 나의 학교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우리 반 친구들과 그쪽 학교 친구들이 미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 후 교실에서 H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느 날부터 기독교인 학생 몇몇이 모였는데 그곳에서 H의 얼굴을 가끔씩 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서울로 올라왔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신학을 공부하며 교회 사역과 선교회 활동을 했다. 개신교 사역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2007년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 위해 모교회에서 파송예배를 하게 되었다. 그날 H의 부부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서 예배에 참석을 했다.



카톡이 생긴 이후 H와 소식을 주고받았다. 친구는 정이 참 많다. 그는 케냐에 있는 나와 캄보디아에 있는 친구를 위해 기도하며 후원을 하는 믿음의 동역자다. 우리의 우정은 추억으로 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신앙의 힘이 크다.

H는 초등학교 친구이며 같은 교회 친구와 결혼을 했다. 나 또한 그의 아내와도 친구이기도 하다. 부부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고 고향에서 나름 자리를 잡고 잘 살아가고 있다. 요즘은 우리 가족은 그네들의 4층 집에서 지내고 있다. 때마침 집이 비어 있어서 2달 반 동안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에도 코로나 펜데믹으로 하늘 길이 막혔던 네팔 선교사님 가정이 11개월을 머물렀다고 한다.

이번에는 케냐에서 온 우리 가족을 위해 기꺼이 숙소를 제공했다.


인천공항에서 미리 예약해 둔 콜벤으로 지중해 마을에 도착했다. 차에서 짐을 내려 4층으로 옮긴 후 집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주문했다. 물론 탕수육도 시켰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H를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물론 케냐에서 아이들에게 H에 대해 몇 번 말한 적은 있었다.

"엄마, 초등학교 친구야."

"엄마 남자 친구?"

"친구야. 친구~"

H는 나의 아이들과 남편에게 엄마와 아내의 남자 친구가 된 셈이다.

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자 행복이다. 특별히 H의 아내이며 나의 친구인 M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나는 소중한 맘으로 친구의 가정을 응원할 것이다.

숙소가 있는 지중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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