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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여자

75일

by Bora

어젯밤에 잠을 푹 자고 났더니 기분이 산뜻하다. 가벼운 몸으로 일어나서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마음도 몸도 컨디션이 좋은 아침이다. 둘째 아이는 스스로 도시락을 싼다. 내가 재료만 준비해 놓으면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도시락통에 넣는다. 오늘은 토마토와 당근, 상추, 사과, 후라이드 계란 그리고 삶아서 구워 놓은 닭가슴살과 햄을 넣은 볶은 김치를 조금씩 도시락 통에 넣곤 비스킷 3조각과 민트 사탕 한 개를 챙겼다. 셋째 아이의 도시락은 햄김치볶음밥에 계란후라이드를 밥 위에 올려주고 귤 1개 그리고 간식으로 비스킷을 가방에 넣어 주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간단하게 밥을 먹고 카푸치노 한잔을 마시면서 부엌으로 매일 찾아오는 작은 파리들을 전기파리채로 잡기 시작했다. 나는 유난히 작은 파리를 보면 죽이고 말겠다는 사명감이 끓어오른다. 전기 파리채를 한번 잡기 시작하면 파리가 한 마리도 안 보일 때까지 잡아야지 만이 직성이 풀린다. 한번 전기채에 '타 다탁' 파리나 모기가 죽어나가면 희열감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천정을 향해 최대한 목을 뒤로 젖히고는 밝은 브라운색 서랍장에 까만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파리를 향해 온 힘을 실어서 파리채를 휘두른다. 부엌에서 시작한 파리 잡기는 거실과 방과 현관까지 이어진다. 어느 때는 벌레 죽이기 기에 왜 이리도 몰입을 하나 싶은 것이 아무래도 미물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못 되는 것 같다.


5월 27일(월), 감사일기

1. 어제저녁에 냉동고에서 아롱사태 소고기를 꺼내어서 냉장고로 옮겨 놓았다. 오늘은 고기를 반절로 잘라서 생강과 매운 고추, 통후추와 물을 넣고 가스용 압력밥솥에서 삶아 냈다. 아이들이 불고기 양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양념이 안된 소고기 수육을 저녁으로 먹기로 했다. 소스는 참기름과 소금이다.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어 준 딸들과 남편에게 감사.

2. 남편은 사흘 째 발로 옷을 빨았다. 탈수 기능이 아직 살아있는 세탁기 안에서 옷들이 돌아가면서 물을 짜낸다. 빨랫줄에 널려있는 옷들이 유난히 예뻐 보인다. 오늘도 수고한 남편에게 감사.

3 오랜만에 J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의 폰에 내 전화번호가 저장이 안 되어 있을 정도로 통화를 안 했던 것이다.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에서 신중함이 감지된다.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함이 섞여 있는 일에 대해서 중간 역할로 잘할 수 있어서 감사.

4. 홈메이드 토마토 파스타 소스를 만들었다. 마늘과 양파를 볶다가 소고기를 넣고 그 위에 후춧가루와 소금, 마늘가루, 약간의 설탕과 월계수잎 2장 그리고 파슬리 가루를 넣었다. 깜빡했던 송이버섯을 잽싸게 잘라 넣고 냉동고에서 얼려놓았던 치즈와 토마토 페이스트, 파스타 소스, 냉장고 안쪽에 잘 모셔놓았던 일회용 케첩과 마지막으로 물을 넣어 섞었다. 가스 압력밥솥에 추가 한참이 돌아갈 때까지 끓여주면 제각기 맛을 내던 재료가 뭉그러지면서 맛 좋은 파스타 소스가 만들어진다. 내일 아침 식사와 아이들 도시락까지 해결이 되어서 감사.

5. WNS 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감기가 돌고 있다. 딸들도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약을 먹었다. 종강을 앞두고 시험을 보는 기간이다. 아이들이 한 학기 동안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해서 감사.


파리(확대)와 전기파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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